
공동화로 ‘도심속의 시골마을’
어린이들 낡은 놀이터서 놀아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곳 필요”
지역사회 요청에 이벤트 시작
작년 3~4학년 78명 대상 진행
장애아동도 함께 즐거운 시간
참가자 전원 “다시 참여할 것”
하반기 프로그램 문의 줄이어
“모든 어린이는 자신의 나이와 발달에 적합한 놀이와 여가를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1989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유엔 아동권리 협약’ 제31조다.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쉬고 자신의 나이에 맞게 자유롭게 ‘놀 권리’가 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30년이 흘렀지만, 한국의 어린이들은 놀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고 있지 않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하고, 학교에 입학해서는 대학입시라는 목표를 위해 노는 것보다는 공부에 집중한다. 이른 나이부터 학원이나 과외 등 과도한 사교육에 노출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가족, 친구들과 놀며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관계적 결핍’에 시달린다. 보건복지부의 ‘2018년 아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동이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고작 하루 48분에 불과하다.
놀 거리와 놀이 장소가 부족한 취약 지역 아이들의 상황은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전국 7개 사회복지관을 통해 아이들에게 ‘놀 권리’ 교육을 하고, 참여형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이유다.
전북종합사회복지관의 경우 지난해부터 인근 지역 아동을 대상으로 ‘오늘은 뭐 하고 놀지’라는 이름의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장소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지역사회의 요청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실제 이 지역은 ‘흑석골’이라 불릴 만큼 외진 곳이다.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도심 속 시골 마을’로도 통한다. 버스가 하루 15회밖에 다니지 않는 종점 지역이어서, 다른 버스를 타려면 15∼2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주로 오래된 놀이터나 아파트 단지 공터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첫해부터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16번에 걸쳐 3∼4학년 78명을 대상으로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참여자 전원이 “다시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담당자인 강태희 사회복지사는 “아이들이 쉬는 시간을 건너뛰고 싶어 했을 만큼 적극적이고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아이들이 직접 놀이 종류와 규칙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성취감을 높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모든 놀이는 ‘아동참여형’으로 진행됐다. 교사가 기존 놀이방식을 설명해 주면, 아이들이 놀이를 진행하며 ‘게임의 룰’을 바꾸거나 추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자극해 아이들이 스스로 새로운 놀이 방식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참여 학생들이 남긴 소감을 봐도 이런 성과가 나타난다. 한 참여 학생은 “제가 놀이를 새롭게 만들 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엄마, 아빠는 만날 공부하라고 하는데 쉴 수 있어서 좋았다”며 “다음에도 이렇게 즐겁게 놀고 싶다”고 말했다. “게임을 통해 새 친구도 만나고 재밌게 놀 수 있어서 즐거웠다”며 “다음에는 친구들과 캠프도 가고 싶다”고 말한 학생도 있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친구를 배려하고 각자 다른 의견을 조율해 가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지난해는 또래보다 학습 능력과 사회성이 떨어지는 장애 아동인 김하정(여·10) 양도 함께 어울리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 사회복지사는 “하정이는 혼자서는 놀이 활동을 하기 어려워 특별히 교사들의 관심을 받았는데, 이를 두고 처음에는 아이들이 ‘왜 하정이만 도와주나요’라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먼저 하정이를 도우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하정이는 특별하잖아”라며 하정이를 위해 놀이 규칙을 바꾸거나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하정이 역시 처음에는 대답을 회피하거나 눈을 마주치기 어려워했는데, 놀이가 진행될수록 먼저 인사하거나 의사 표현을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올해에도 전북종합사회복지관은 상·하반기로 나눠 ‘오늘은 뭐 하고 놀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강 사회복지사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을 학부모님들도 잘 알기에 만족도가 높다”며 “9월 하반기에 프로그램이 시작되는데 문의가 많이 온다”고 말했다.
◇유엔 아동권리 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18세 미만 아동의 모든 권리를 담은 국제적인 약속으로 1989년 11월 20일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196개국(2019년 현재)이 동참하고 있으며, 이 세상 어린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생존·보호·발달·참여 등 4대 권리를 담고 있다. 아동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존엄성과 권리의 주체로 보는 계기가 됐다. 특히 이 가운데 발달의 권리(Right To Development)는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한 △교육받을 권리 △여가를 즐길 권리 △문화생활을 하고 정보를 얻을 권리 △생각과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 등을 포함하고 있다. 아동권리협약은 전문과 54개 조항으로 구성되며 1조부터 40조까지 실제적인 아동권리 내용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윤정아 기자 jayo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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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는 문화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공동기획으로 진행하는 연중캠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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