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 정치이득 노려 경제보복
경제 희생양 삼으면 시장 역풍
文도 무리한 총력전으론 한계
與野 초당적 대응 합의한 만큼
입법 통해 사법충돌 해소 가능
경제전쟁, 必勝만 노리면 必敗
1967년 이집트 선공으로 벌어진 ‘6일전쟁’은 이스라엘 압승으로 끝났지만, 새 비극의 시작점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외교장관으로 중재했던 온건파 아바 에반(1915∼2002)은 이스라엘이 차지한 예루살렘이 ‘화약고’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사람들이나 국가는 다른 모든 대안을 소진한 뒤에야 현명하게 행동한다.” 최근 3주째 대척점에 서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도 환기되는 경구일 것이다. 아베 총리는 수교 이래 처음으로 총성 없는 전쟁을 개시했고, 문 대통령은 ‘중대한 도전’으로 규정하면서 국민 총력전에 나섰다. 두 사람 모두 대안 없이, 번지수도 틀린 전장에서 강대강(强對强)의 ‘이기려는 싸움’으로 충돌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대(對) 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한 건 명백한 경제보복이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이 직접적 이유다. 그걸 부정하면서 “안전보장 목적” 운운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유일하게 인정해주는 조항의 근거 쌓기용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정치적 이득을 보려 경제를 수단 삼았다는 얘기다. 이게 경제 이득을 우선으로 촉발된 미·중 무역전쟁과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다. 아베 총리도 국제 분업 구조에서 일방의 공격이 쌍방에 타격을 준다는 걸 모를 리 없을 터다. 그런데도 야바위 같은 싸움을 건 것은 경제 회생이 ‘뒷배’였다. 2012년 2기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장기 호황을 지속하고 있다. 내수 덕에 완만한 성장세다. 소비세 증세, 법인세 감세를 단행했는데도 순항 중이다. 청년층 노동시장은 거의 완전고용 상태다. ‘잃어버린 20년’을 되찾자는 아베노믹스가 먹혔다는 의미다.
하지만 경제를 희생양 삼으면 필시 ‘시장의 반란’을 부른다. 수출기업 부담, 글로벌 무역체계 혼란이 일본을 압박할 것이다. 가장 큰 역풍의 진앙은 들썩이는 엔화 가치가 될 것이다. 아베노믹스를 이끌어온 건 엔저 덕을 본 기업들이었다. 미·중 무역전쟁의 행로가 불확실한데, 한·일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금융시장으로 이어지면 불안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무리수를 둬서라도 밀리지 않는다는 모양새를 보이려 한다. 외교로 야기된 일에 경제로 대응하는 논법도 똑같다. 여당에서는 이참에 무슨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양 나서며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조짐까지 있다. 신각수 전 일본 대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일본의 노림수는 ‘한국의 경제 성장을 꺾으려는’ 경제 이득이 최우선에 있지 않다. 외교관계가 꼬일 대로 꼬여서 벌어진 일이란 걸 알 만한 국민은, 기업들은 다 안다.
설령 성난 여론이 견제력이 된다 해도, 그 전제인 우리의 국민통합과 경제응집력은 어떠한가. 2년 전 현 정부 출범 당시 세계 경제 호황기에 집권한 게 ‘천운’이라고 했던 사람들은 입을 닫았다. 2011년 이후 ‘저성장 늪’에 빠진 건 한국이다. 추세가 이러한데 정부는 시장 자율보다 타율 규제, 통합보다 과거 헤집기와 편 가르기로 일관했다. 엉터리 정책들을 밀어붙였다가 곳곳에서 사달이 나서 나랏돈으로 임시 땜질을 하고 있다. 갈라지고 상처 난 국민더러 이제 와 ‘함께 앞서달라’는 건 참 민망한 일이지 않은가.
우리가 이기려는 게임만 하면 필패다. 무력(武力)전쟁에선 승자독식이지만, 경제가 결합된 전쟁은 다르다. 많이 얻는 것보다 덜 손해보는 것이 중요할 때도 많다. 주권의 영토와 달리 경제의 영토는 얼마든지 바뀌는 까닭이다. 1925년 금본위제부터 지금의 미·중 무역전쟁까지 숱한 현대의 경제전쟁사가 가르쳐준 교훈이다. 뒷배도, 빼 들 칼도 시원치 않다면 남은 길은 외교담판이다.
일본이 테이블로 나올 지렛대부터 찾아야 한다. 북한이 됐건 미국이 됐건, 동북아의 정치 역학에서 일본이 꿈쩍할 묘책을 세우는 게 정부의 일이다. 아베 총리도 시장의 역풍과 더불어 부담이 큰 외교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 양자 협상에서 삼권분립에 근거한 대법원 판결이 문제라면, 대통령의 권한(법안제출)으로 입법을 통해 사법과의 충돌을 해소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여야 5당 대표들이 위기 대처에는 뜻을 모은 마당이다. 피해자들의 반발이 있다면 설득할 수도 있어야 한다. ‘불편한 양보’라도 할 수 있어야 진정 약속을 지키는 리더십이 된다. 모든 대안을 소진한 뒤에 하면 때늦다. 국민이, 기업이 피를 흘리고 쓰러진 뒤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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