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 노동계와 경영계가 손잡고 국가 위기를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네덜란드는 과도한 사회 보장 지출과 인플레이션, 석유파동 등의 여파로 실업률은 12% 이상으로 오르고 파산 기업은 급증하는 등 심각한 사회·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재정적자만 해도 국내총생산(GDP)의 7%에 육박했고 정부는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이때 노사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총연맹’과 ‘경영자연합’ 대표들이 헤이그 인근의 바세나르에서 장시간 마라톤협상 끝에 이른바 ‘바세나르 협약’을 맺게 된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동결 등을 받아들이는 대신 근로시간 단축, 세금 감면 및 사회보장 확대 등을 얻어 냈다.
결과는 어땠을까. 네덜란드는 수출 경쟁력과 생산성 회복, 일자리 증가, 재정적자 축소 등의 선순환 구조를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회적 대타협의 성공 경험은 위기가 올 때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1993년 독일 통일 등으로 인한 화폐 절상 여파로 실업률이 6% 이상으로 급등하면서 네덜란드 경제는 다시 휘청이기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1996년 ‘유연안정성 협약(Flexibility & Security Agreement)’을 맺었다. 저임금·임시직 고용 추세를 인정하되, 24개월 이상 일하면 각종 연금 혜택 자격을 부여하게 하고 해고 절차 등도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도록 요구했다. 1998년에는 유연안정성법을 제정했다. 노동계는 2013년에는 임시직과 파견 근로자의 처우를 2020년까지 점진적으로 정규직과 동등한 수준으로 높이는 데 합의했다. 한국 정부가 조바심을 내고 있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 문제에 대해서도 무려 24년의 과도기를 둔 셈이다.
2019년 위기의 한국은 과연 한국판 ‘바세나르 협약’을 만들 준비가 돼 있는가. 일본의 경제 보복 위협과 미·중 무역전쟁의 불확실성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소상공인·자영업자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조선·자동차 등 주력 수출 산업은 중국의 추격에 맥을 추지 못한 채 침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정부와 사회 각계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회적 대타협’ 대신 ‘사회적 총파업’을 강행해 빈축을 사고 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 조절과 탄력근로제 논의에 반발해 최저임금위원회 전원 사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 등으로 맞서며 사회적 대화도 거부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오는 25일에는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8월 총파업 계획을 논의하기로 하는 등 오는 11월까지 파업 국면을 몰아갈 태세다. 이 같은 행보에 대해 “기득권에만 집착한 채 눈이 멀어 국가 위기를 직시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권 창출의 1등 공신을 자처하고, 이제는 조합원 100만 시대를 맞을 정도로 엄청난 외형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이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노동계 안팎에서조차 부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오죽했으면 기자와 만난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의 노동계 원로 인사가 사석에서 “파업을 잠시 중단하고 위기 극복에 동참하겠다고 했다면 다들 박수를 쳤을 것”이라면서 혀를 찼을까.
frog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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