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녹지영리병원 허가 여부
“시민 반대 회피 정치적 의도”
신고리 원전 5·6호기 재개
“공약·현실 간극 돌파 목적”
외압차단 위해 최소 준칙 필요
공론조사가 구상 단계부터 정부 또는 공공기관의 정략적 활용 의도가 들어가고 공신력 있는 정보 제공, 충분한 숙의 없이 결론이 도출되는 문제점은 기존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공론포럼은 공론장을 보호하고 외부 세력에 의한 왜곡과 압력을 차단하기 위해 공론조사의 최소 준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2일 한국공론포럼에 따르면, 2022년 대입제도 개편 공론조사의 경우 무리한 공론화로 인해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국가적 혼란이 초래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로 지목됐다. 공론화 결과는 수능전형(정시)을 45%까지 확대하는 의제1이 3.40점을 받았으나, 의제2(수능 절대평가 확대)가 3.27점으로 오차범위 내여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사안을 표결에 의한 승패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어 사회 통합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포럼은 자료집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정책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공론화가 진행됐다”며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스스로 수습하지 못하고 공론화를 명분으로 의사결정에 국민을 활용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재개 또는 중단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공론조사는 핵심 동기가 국민을 동원해 대통령 공약과 현실 간 간극을 돌파하려는 것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진행의 완성도 및 절차에서 신뢰성을 높이기는 했으나, 공론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불분명하거나 부재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찬반 결과의 양적 차이를 의사결정의 핵심 근거로 사용했는데, 이 과정 어디서도 찬반을 넘은 사회통합에 대한 고려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울러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조사에 탈원전 여부를 끼워 넣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제주 녹지영리병원 개업 허가 여부에 대한 공론조사는 시민의 반대를 회피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가 강했고, 이해 관계자가 뚜렷한 상태에서 공론화 결과가 ‘불허’로 나올 경우 수용 가능성이 낮을 것이 이미 예상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포럼은 기존 공론조사의 문제점으로 적절하지 않은 사안이 공론화로 추진됐고, 현실에 부합하지 않게 공론화가 설계됐으며 부족한 시간과 불충분한 논의를 통해 변별력이 없는 결론이 나온 경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주민 삶과 무관한 논의 주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공론조사 설계 △공신력 있는 정보 부족 △부족한 시간과 불충분한 논의 △변별력 없는 결론 △공공기관의 논의 결과 불수용 등이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박태순 한국공론포럼 상임대표는 이날 통화에서 “지금까지 공론화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이 없었다”며 “100명의 시민이 함께 모여 3시간 동안 체계적인 논의를 통해 공론화에 대한 최소 준칙을 정한 후 이를 국회의장에게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형성되는 공론장은 쉽게 망가질 수 있는 취약한 구조이고, 국가나 공공기관은 공론장이 자신의 이해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언제라도 공익을 명분으로 공론장을 왜곡하고 변형·파괴할 수 있어 준칙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포럼은 최소 준칙에 △‘시민이 주인’ 원칙 △동등한 참여 기회 △공공기관의 중립성·공정성 유지 △충분한 정보와 자료 제공 등을 담을 계획이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공론장 최소준칙 100인 원탁회의’에 참여한 시민은 사전학습과 준비, 설문 등을 통해 최소 준칙 정립을 위한 숙의 과정을 거쳤다.
조성진·나주예 기자 threeme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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