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에 이어 한국을 아예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해 규제 대상을 전면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난데없이 정부에서 ‘대기업 책임론’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부산에서 열린 오찬 간담회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인 불화수소를 언급하면서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일본의 협력에 안주하고 변화를 적극 추구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같은 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충남 금산의 한 중소업체 사례를 언급하면서, 수십조 원을 버는 반도체 대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의 설비투자 비용을 외면해 일본의 경제 보복을 초래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초정밀 반도체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백지상태라고밖에 할 수 없는 한심한 인식이다. 수백 개 공정을 거치는 메모리 웨이퍼는 재료 선택 하나만 잘못해도 치명적이다. 실제로 세계1위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는 최근 PR라는 화학물질 하나를 잘못 써서 수조 원의 손실을 봤다. 아무리 사소한 리스크 요인도 최소화해야 하고, 특히 고(高)기술 고리스크 품목은 신뢰성 높고 검증된 기업 제품을 사용해야 세계 1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글로벌 분업 구조에서 비교우위에 있는 제품을 선택해 최적의 조합을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게 글로벌 경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한국 기업의 1960년대 이후 산업발전사(史)는 ‘극일(克日)의 역사’다. 일본 기업들의 온갖 모욕과 하청업체 굴욕을 감수하고 밤낮으로 땀 흘린 끝에 일본도 두려워하는 제조업 6대 강국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이처럼 극일을 가장 훌륭하게 해낸 분야가 기업이다. 국민과 문 대통령이 외국에서 받는 ‘대접’도 기업 덕분이다. 그런데도 대기업들이 잇속만 채우느라 일본 경제 보복의 타격을 초래했다는 식으로 공격하는 것은 총체적 무지(無知) 아니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