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장소 / 레이 올든버그 지음, 김보영 옮김 / 풀빛

책을 읽는 내내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에서의 정희네 술집 가게가 생각났다. 정희네 가게는 극 중 주인공인 아저씨 삼 형제가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소주 몇 잔에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씻어내는 장소다. 가게를 운영하는 정희도 이웃으로 섞이며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눈다.

이 책은 또한 어린 시절 고향 마을의 모정(茅亭)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마을 어른들은 농한기에 모정에 모여서 한담을 주고받았고, 때로 윷판을 벌였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가고 없을 때 그 자리에서 각종 놀이를 하며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책에 따르면, 정희네 가게나 마을 모정은 제3의 장소다. 제1의 장소인 가정, 제2의 장소인 일터 혹은 학교와 달리 목적 없이 다양한 사람이 어울리는 곳이다. 저자는 사람이 가정이나 일터에서 주어지는 사회적 역할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제1장소와 2장소 밖에서 이웃과 교류 활동을 하면서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지역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만족감을 누리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 ‘라거 비어 가든 ’ ‘태번’, 영국 ‘펍’, 프랑스 ‘카페’, 오스트리아 ‘커피하우스’ 등이 그런 역할을 했다.

미국 사회학자인 저자는 2차 세계대전 후 자국의 도시 계획이 수익과 효율을 앞세운 나머지 제3의 공간을 황폐화시켰다고 지적한다. 큰 목적 없이 이웃과 친구들을 만나서 소소하게 어울리며 비공식적 공공생활을 했던 지역 공동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이 공동체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유주의 산물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제3의 장소에서 이웃들과 함께 어울렸던 시절의 장점을 되살리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지역 공동체는 사람들의 ‘통합’ ‘동화’ 등의 기능을 하는데, 무엇보다 육아와 노인 문제 등 현대 사회 아킬레스건을 해소하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1989년 출간되자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될 만큼 주목을 받았다. 한국어판 번역이 늦어진 것은 우리 사회에서 제3의 장소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정희네 가게는 드라마에나 있고, 모정은 잊어진 단어였다. 그러나 최근 독립서점, 다용도 마을 카페 등이 생기는 현상은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역자는 “이 책의 지적과 분석이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464쪽, 2만6000원.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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