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가철 읽을 만한 책 10選

여름 휴가철이 되면 읽든 읽지 않든 여행 가방에 책 한 두 권은 챙긴다. 올 휴가에는 무슨 책을 고를까. 매주 대형서점들이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든 책 중에 고를 수도 있다. 이번에 북리뷰팀은 TV에 나오지 않은 숨겨진 맛집 같은 책들로 골라봤다. 매체에서 주목하고 베스트 목록에 오르지 않았지만, 여유 있는 휴가철에 일독을 권할만한 책들이다.


◇올여름엔 장르소설

여름이면 어김없이 공포·스릴러 등 장르영화 개봉이 이어지듯이, 소설을 고르는 독자의 눈길도 여름이면 장르물로 한 번 더 가기 마련이다. 최근 들어 과학소설(SF) 출간이 줄을 이으며 장르소설에 관한 대중의 관심도 부쩍 높아진 상황이다.

‘록커, 흡혈귀, 슈퍼맨 그리고 좀비’(황금가지)는 좀비로 뒤덮인 세상에 맞닥뜨린 상황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일들을 흥미진진하게 담은 소설집이다. 이 책은 ‘좀비로 인한 세상의 종말’이란 독특한 소재로 매년 작품을 공모하는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으로 중단편 소설 여섯 편을 수록했다. 아수라장이 된 콘서트에서 살아남은 로커의 생존기, 좀비로 고립된 도심에서 인간의 피를 찾아 헤매는 흡혈귀, 살아남은 좀비가 사회 문제가 된 미래 등 좀비를 주제로 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멸종’(안전가옥)은 ‘세계의 종말’을 공통의 주제로 판타지, 과학소설(SF),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로 풀어낸 소설집이다. 독특한 주제를 바탕으로 재기발랄한 장르문학을 선보이는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 수상작 다섯 편을 모았다. 우리나라 고유의 저승 신화가 우주과학과 어우러지고, 빈민가를 무대로 동화 같은 판타지가 펼쳐지는가 하면 미래 우주를 그리던 이야기가 미스터리 스릴러로 변신하기도 한다. 각 소설은 임박한 재앙 앞의 고군분투를 보여 줌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유한한 삶을 돌아보게 한다.

조금 더 그럴싸한 장르소설을 원한다면 과학과 공학을 전공한 작가들이 내놓은 SF 소설집도 있다. ‘지상 최대의 내기’(아작)는 공학박사 출신으로 현재 화학 관련 기업에 다니는 곽재식 작가의 소설집이다. 이 작품집엔 재회한 생물학도들의 로맨스를 비롯해 초공간 도약 항법 사업 승인을 둘러싼 부조리, 기업 내 SF 전담팀의 삶, 200세 시대 대응을 위한 8차 산업 혁명 등 과학도의 머릿속에서만 나올 것 같은 기발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 11편이 실려 있다. 물리화학 석사 출신인 이산화 작가의 소설집 ‘증명된 사실’(아작)은 지구 종말, 거대 펭귄, 복제 자매, 작은 개체들이 모인 신경망 네트워크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 단편 12편을 실었다. 표제작 ‘증명된 사실’은 사후 세계와 유령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노력하는 연구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담은 단편으로 지난해 SF어워드 중단편 부문 우수상을 받은 바 있다.

지난 1990년대부터 꾸준히 영화평론가와 SF 작가로 활동해 온 듀나의 새 소설집 ‘구부전’도 있다. 소설집엔 현대인의 관점으로 재구성한 조선 말기 뱀파이어 사건, 타인의 사랑 감정을 느끼게 하는 외계 미생물 바이러스, 오직 현재의 삶만을 믿는 반종교적 종교의 세계에 사는 사람 등 기괴하면서도 환상적인 이야기를 다룬 단편 7편이 담겼다. 작가는 SF, 판타지, 호러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입체적인 서사와 치밀한 논리로 가상의 세계를 생생히 펼쳐 보인다.


◇인문·예술 분야

가족심리 상담전문가인 라우라 구트만이 지은 ‘엄마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일까’(르네상스)는 우리 성인들이 현재 삶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려면 그 원인이 된 ‘엄마가 한 말’부터 추적해 들어가야 한다고 알려주는 책이다. 성인이 돼 겪는 감정의 질곡은 거의 전부 어릴 적 심리적으로 겪은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두려움, 애정 결핍, 복종, 외로움 등에서 형성됐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겪은 일들은 세세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엄마(또는 주요 양육자)가 말한 내용은 잘 기억한다. 엄마가 ‘말’했기 때문이다. 이제 엄마에 의해 주어졌던 배역을 벗고 ‘진짜 자아’를 찾아야 온전한 책임을 지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다. 자녀를 내 편의대로 정한 배역 안에 가두지 않는 것도 진짜 어른의 조건이다.

올해 ‘예술적 인문학 그리고 통찰’(마로니에북스)에 이어 ‘예술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블록체인부터 죽음까지, 그림 인문학’(박영사)을 펴낸 임상빈 성신여대 서양화과 교수는 우리에게 예술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필자로 주목할만하다. 전편이 새로운 관점으로 예술을 보다 가까이 즐겁게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안내서라면 이번 책은 기술, 과학, 예술, 사람을 넘나들며 세상을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맥락으로 파악하도록 도우며, 우리들의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삶에 유의미한 ‘통찰’의 지점을 제시한다.

늘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장석주의 새 책 ‘호젓한 시간의 만에서’(민음사)는 처음부터 정독하기보다는 휴가 중에 짚이는 대로 읽기에 좋은 인문 에세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시간의 빠른 급류에 떠밀리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제는 ‘호젓한 시간의 만’에 발을 딛고 고요하고 외로이 스스로의 일상을 사유하는 인문학적 삶을 살아보자고 제안한다.


◇휴가철 그림책

휴가철 그림책으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으면서 어른과 아이들이 각자 즐거움을 얻고, 또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림책을 골랐다. ‘100 인생 그림책’(하이케 팔러 글, 발레리오 미달리 그림/사계절)과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주니어김영사)이다. ‘100 인생 그림책’은 100장면으로 보는 인생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0세 ‘난생처음 네가 웃었지, 널 보는 이도 마주 웃었고’에서 시작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시간이 흘러 100세에까지 이른다. 우리의 거의 모든 나이가 한 권의 책 속에 있다. 그림책을 펼친 이들은 누구나 자기 나이의 페이지를 먼저 넘겨 보게 된다. 올 에이지 그림책이라는 말이 딱 맞는다.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는 재기 넘치는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 표 그림책이다. 어느 날 유치원에 다녀온 오빠가 동생에게 미래엔 무서운 병이 번지고, 전쟁이 일어나고 외계인이 쳐들어오는 무시무시한 일만 생길 거란 소문을 들려준다. 아이의 걱정은 산더미만 해지는데 낙천적인 할머니는 세상 모든 일에는 숨겨진 가능성이, 또 다른 경우가 있음을 알려준다. 이에 시작되는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 놀이. 달리기를 못 해도 눈싸움을 잘하고, 신발이 작아져 못 신으면 멋진 화분으로 쓰면 되고, 당근이 싫다면 어른이 돼서 ‘당근 금지법’을 만들 계획을 세우면 된다는 식이다. 어떤 절망 앞에서도 이 문장은 새로운 출구가, 힘이 된다.

북리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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