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23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과 도전 과제, 서울대의 발전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위기감을 표출한 그는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희망을 제시하지 못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어려운 현재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서울대는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23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과 도전 과제, 서울대의 발전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위기감을 표출한 그는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희망을 제시하지 못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어려운 현재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서울대는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오세정 서울대 총장

대학·기업·정부 협력과 지원
3박자 맞아야 원천기술 개발
그때 비로소 해외의존도 극복

낙성대AI밸리 조성 미래 선도
AI생태계 조성에 ‘빅샷’ 필수
거액 투자 해외인재 영입해야

AI는 데이터 먹으며 자라는데
규제 때문에 데이터 활용 못해
개인정보보호하며 풀건 풀어야


“역지사지(易地思之)….” 지난 2월 1일 취임한 오세정 서울대 총장을 인터뷰하기 전 교내 인사들에게 조심스럽게 평판을 물었다. 예비고사·본고사 1등, 스탠퍼드대 대학원 박사과정 자격시험 1등까지 차지한 ‘수석 인생’이란 선입견과 달리 “대단한 소통 능력을 가진 분”이라는 귓속말 답변이 돌아왔다. 왜 그런 평가가 나오는지 직접 질문을 던졌다. 그는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 같은 어투로 “글쎄요, 나와 남의 처지를 바꿔서 생각하려는 역지사지 습관 때문인가요?”라면서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지사지 관점에서 보면 큰 문제도 원만하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아내와 남편의 대립, 부모와 자녀의 충돌 같은 사적인 영역부터 이웃과의 분쟁은 물론 국가 간 외교 문제도 마찬가지다. 최근 일본의 무역 보복 조치와 관련해 오 총장은 “우리나라 산업기술의 높은 해외의존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고부가가치 원천기술 개발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모든 사안에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견해다.

물리학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문학적 세계에 대해서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배치되는 결과가 나오면 언제든지 수정하고 받아들일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언급은 정치권에 던지는 함의로 다가왔다.

오 총장은 “서울대는 국내 최고 대학이지만 교육과 연구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천천히 망해 갈 위험성이 있다”는 위기감도 나타냈다. “정답을 잘 적어내는 학생이 아니라 근원적이고 이상한 질문을 잘하는 학생들을 길러내고 싶다”는 오 총장을 취임 6개월을 앞둔 지난 23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총장실에서 만났다. 지금 그는 서울대에 새로운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국회를 떠나면서 국회 밖에서 역할을 다 할 것이라고 했는데.

“하하…. 솔직히 기대한 만큼은 안 되고 있다. 그래도 서울대가 여러 가지 좀 어려운 상황에 있었으니까, 과거보다는 지금이 안정된 상황에 놓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일을 했다고 보는데, 중요한 것은, 안정화됐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태가 됐다는 것이고 발전이 이뤄져야 하는데, 쉽게 성과가 나오지 않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인공지능(AI) 육성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AI가 사회와 국가를 바꿀 것으로 생각한다. AI는 평범한 기술이 아니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꿨 듯 AI도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이다. AI는 소위 머리를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넓은 범위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산업도 사회도 다 변화시킬 것으로 본다. 굉장히 중요한 기술이다. AI 육성은 종합대학에서 해야 한다. 단지 과학기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AI는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인문사회는 물론 예술 분야로까지 이어진다.”

―한반도 주변에는 미·일·중·러 4강 국가가 있는데, 한국이 AI를 발전시키지 않으면 추락할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요.

“AI 분야에서 한국이 전 세계 선진 그룹에 들어가지 않으면 결국 미래에 한국은 뒤처지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AI는 데이터를 먹으면서 살아간다. 한국은 발전된 정보화 사회고, 이미 상당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 데이터를 잘 이용할 수 없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규제 때문이다. 규제가 AI를 발전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중국 같은 나라는 데이터 이용에 거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안면인식 기술을 보라. 우리의 안면인식 기술은 세계적이다. 하지만 중국처럼 활용하지 못한다. 개인정보의 보호에도 신경 써야 하지만, 규제를 풀 수 있는 것은 풀어야 한다. 규제로 인해 기술이 발전하지 못하고 생활과 산업에 응용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한국이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하는데, 10년 뒤에도 그럴까요.

“규제를 풀지 않으면 한국은 IT 강국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미국 의회 의원들과 얘기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그들도 그런 걱정을 한다. 중국이 워낙 인구가 많고 축적된 데이터가 많아서 학문적인 부분에서는 미국이 앞서지만 길게 가면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고 종국에는 앞설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중국은 데이터가 증가하고 있고 데이터를 쓰는 데 제한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구글을 비롯해 전 세계 데이터를 흡수하고 있다. 구글을 보유한 미국조차 그런 걱정을 하는데, 한국은 더 신경 써야 한다.”

―풀어야 하는 대표적인 규제가 어떤 것들이 있나요.

“‘개망신법’이라고 하지 않는가.(개망신법은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에서 한 자씩 따온 데이터 경제와 관련된 3개 법으로 현재 개인정보 노출 우려를 제기하는 시민단체의 반대로 국회 통과가 막힌 상태다) 이들 3개 법안이 제일 큰 문제고, 의료정보 관련 법들도 막혀 있다. 의료정보 관련 규제로 병원 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어떤 질환에 대해서 서울대 병원도 치료하고, 삼성서울병원도 치료하고, 세브란스병원도 치료하는데, 다 같이 모이면 훨씬 많은 사례를 알게 되고 치료의 기회도 넓어질 텐데, 서로 정보가 교류되지 못하면서 기회가 가로막혀 있다.”

―낙성대 AI밸리 추진은.

“일단 첫 번째로 AI가 실제 실현되는 곳은 주로 벤처기업이다. 구글이 그랬던 것처럼 조그마한 벤처기업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시작한다. 우버도 마찬가지다. AI도 그런 식으로 시작할 것이다. 벤처기업은 사업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데이터는 대부분 기업이 갖고 있으므로 벤처기업들은 아이디어를 사업화해야 한다. 한국에서 그런 걸 하기 위해서는 낙성대가 서울대랑 가깝고 하니, 낙성대를 실리콘밸리처럼 키우겠다는 것이다. 먼저 서울대에 AI 연구원을 설립해 내부 연구와 산학협력을 활성화한 뒤 내년쯤 낙성대에 AI 관련 연구와 투자 기업 등이 입주하는 AI밸리를 조성할 계획이다. 낙성대 AI밸리 조성은 한국의 산업 생태계를 바꾸기 위한 필수적인 프로젝트다. 과거처럼 중화학공업 등 거대 장치산업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으므로 앞으로는 소프트웨어 위주의 강소기업을 키워야 한다. 두 번째로 더 중요한 것은 낙성대 AI밸리의 교육적 측면이다. 이공계는 당연히 AI를 많이 쓰겠지만 인문·사회계도 중요하다. 디자인하는 사람도 벌써 AI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모두 함께 가야 한다. AI 교육을 이공계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교육 부분에 접맥해야 한다.”

―서울대 AI 학과는 언제 설립되나요.

“과 자체는 아직 없는데, 데이터 사이언스 대학원이라고 해서 내년에 처음 설립하려고 한다. AI를 중심으로 데이터와 함께 연결해 연구하는 기구다. 현재의 빅데이터 연구원도 AI 연구원으로 업그레이드해서 개편할 계획이다.”

―AI 연구를 위한 해외 교수 영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사실 그게 문제다. AI는 소위 말해서 ‘빅샷’(거물급 인사) 한두 명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주위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런데 거액의 영입비용이 필요하다. 또 다른 문제는 데이터가 중요한데, 세계적인 AI 거물급 인사들은 기업하고 함께 움직인다. 그런데 한국은 교수가 민간기업과 겸직을 못하도록 법으로 막고 있다. AI는 기업과 협력해 연구가 진행돼야 하는데, 제한된 부분에서만 규제를 풀어준다. 사외이사나 벤처 창업 같은 경우다. 교수가 벤처 창업을 했을 경우에만 예외로 민간기업의 겸직을 인정해 준다. 그 부분 외에는 민간기업과 겸직하지 못하도록 못 박고 있다. 옛날부터 그랬다. 이제는 그 같은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이해충돌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는데, 예를 들어 건설·토목 분야 교수가 민간기업과 겸직하고 있는데, 프로젝트 심사위원이 될 경우 객관적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이유다. 방산 분야 무기사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AI는 원류가 기업에 있으므로 갖고 와야 한다. 정부와 국회에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분야에서 풀 수 없다면 적어도 AI 같은 특수분야, 교육과 함께 민간기업이 가야 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풀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말해왔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우리 현실은 법 하나 바꾸는 게 엄청 힘들어서….”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해 최근 일본이 무역 보복 조치에 나서고 있는데 학계가 나갈 방향은 무엇인지요.

“한·일 문제는 외교적으로 빨리 풀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보면 한국의 산업이 상당히 발전했다고 하지만, 고도화된 상황은 아니다. 한국 반도체는 잘하고 있는데, 일본은 그 부분을 겨냥해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수출 문제를 들고 나왔다. 불화수소는 화학과 화공 부분의 아주 고도화된 학문적인 바탕이 있어야 고순도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 대학이 연구능력을 갖추고 기업과 연계해 기술 개발을 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 3박자가 맞아야 세계 최고의 유일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확보된다. 하지만 아직 한국은 대학은 대학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따로따로 가고 있다. 정부는 대학이 장기적인 연구를 할 수 있게 지원에 나서고, 기업에 대해서는 사업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서울대도 일본과의 기술격차 극복에 적극 나서겠다. 이번 사태를 한국이 제도적으로 재정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의 내부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군요.

“그렇다. 일본이 고순도 불화수소 수출을 통제하니까 수입 다변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사실 일본 원자재를 90% 이상 쓴다는 것은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대비를 안 했다는 말과 같다. 생태계를 바꿔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세계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끊임없는 기술 개발에 나서면 가능하다. 짧은 기간에 할 수 있는 것은 다한 만큼 이제는 긴 호흡을 갖고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 길게 시간이 필요한 어려운 일들에 집중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일본 상품 불매, 심지어 반일 캠페인도 벌이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일본은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 국가다. 같이 살아야 한다. 산업구조가 분업화된 상황에서 기본적으로는 같이 갈 수밖에 없는 나라다. 입시제도를 비롯해 우리와 상당히 비슷한 제도도 많다. 그래서 서로 돕고 배울 점도 있다. 일본과의 협력은 당연히 윈윈 구조다. 일본도 한국이 없으면 어려운 측면이 많다. 역사적인 전통이 있고 기본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23일 오후 서울대 총장실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AI 시대 인재상은 타인과 함께 가는 리더십,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심 그리고 고도의 문제 해결력을 겸비한 창의성 소양자”라면서 “대학은 사회 및 구성원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하는 고등교육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23일 오후 서울대 총장실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AI 시대 인재상은 타인과 함께 가는 리더십,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심 그리고 고도의 문제 해결력을 겸비한 창의성 소양자”라면서 “대학은 사회 및 구성원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하는 고등교육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입시로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과거에 정시모집을 늘리면 안 된다고 언급했는데 최근 서울대가 2022학년도부터 정시모집을 30%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모순이 아닌지.

“정시로 모든 학생을 뽑으면 안 된다는 의미였다. 정시는 5지 선다형이다. 창의성을 키우기 어렵다. 그래서 그걸로 모든 학생을 뽑지 말고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나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다양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을 뽑고 싶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학종에 대해 상당한 불신이 존재한다. 고등학교 때 어영부영하던 학생은 과거에 쌓아놓은 생활기록부 내용은 부족하지만 나중에 정신 차려 공부를 열심히 할 수도 있는데 학종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정시라는 패자부활전이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덜했거나 진로를 제대로 정하지 못한 학생이 어느 날 깨닫고 열심히 공부할 경우 출구 역할을 정시가 해주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하나의 ‘통로’로 정시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부를 정시로 뽑을 수는 없고, 기준은 학교마다 다를 텐데 한국 정서상 30%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국제바칼로레아(IB) 교육도 다양한 교육과 선발의 일종인가요.

“공정성이라는 항목 때문에 눈에 보이는 스펙만 쌓으려는 경향이 생긴다. IB 교육은 훨씬 주관적이면서 여러 사람이 평가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공정성이 인정된다. 앞으로 AI가 지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되면 지식은 어차피 AI가 갖고 있게 된다. 그럼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뭐냐는 질문이 생긴다. 여태까지 없었던 지식, 남이 안 했던 것들, 그런 부분에서 사람의 가치가 발현돼야 한다. 미래사회에는 학력고사시험에서 주어진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제시하는 사람이 중요해진다. 그리고 새롭고 중요한 이슈를 먼저 제기하는 사람이 중요한 시대가 된다. 스티브 잡스를 천재라고 평가하는 것은 그가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존재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손가락으로 쓰는 새로운 기기를 만들었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그의 아이디어와 문제 제기가 세상을 바꾸어 놓았지 않은가.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교육도 그렇게 시켜야 한다. 있는 지식을 맞히는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 돼야 한다. 토론을 통해 해법을 찾는 IB 교육은 그 일환이다.”

―현재 고교 교육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지금 상태로는 안 된다. 수능시험에 나오는 문제를 잘 풀기 위해서 열심히 EBS 강의를 듣는데, 이런 것은 사실 앞으로는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 아니고, 토론하고 뭐가 문제인지를 파악하면서 엉뚱한 질문도 할 수 있는 그런 교육이 돼야 한다. 생각에 대한 격려를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일관적으로 공정성만 요구하기보다는 아이비리그에서 하는 것처럼 생각이 자랄 수 있게 하는 교육을 검토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주어진 지식을 남들보다 빨리 적용하는 사람이 승자였다면 앞으로는 남이 생각하지 않는 부분을 고민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고 미래를 이끌 것이다.”

―성적이 좋지 않아도 서울대 학생으로 뽑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물론 인터넷 강의 학습 같은 공부는 기본이기는 하다. 솔직히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미래 가능성을 보고 반영도 하는데, 비율이 지극히 작다. 비율을 늘리고 싶어도 객관성과 공정성 문제가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두 명을 뽑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학생이 그런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국가교육과정에 다양성이 들어가야 한다. 모든 것을 국가가 검인해주고 무슨 과목은 몇 시간 배정하는 식으로 국가가 정해 놓는 교육은 곤란하다. 핀란드의 경우는 국가교육과정은 전체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학교장과 교사들이 결정한다. 나중에 결과를 보면 다양성 교육을 경험한 학생들이 능력을 더 발휘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정답은 없다. 한국은 과거에는 선진국을 따라 하면 됐지만 이제는 스스로 독자적인 길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앞으로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시도해야 한다. 그 영역에는 정답도 없고 문제도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한다.”

―자사고 폐지라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은 다양성을 죽이는 정책이 아닌가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은 학생의 다양성이다. 서울대는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가능한 한 많은 고등학교에서 신입생을 뽑으려고 한다. 환경이 다른 학생들이 섞여 있어야 시너지가 생긴다. 오히려 한 고등학교에서 많이 오면 생각이 너무 비슷해진다. 가급적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이 입학하길 바란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원외고 같은 특정 학교 학생들이 서울대에 대거 입학하는데.

“정시 때문에 그렇다. 정시 비율이 높아지면 고교의 다양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입시전형에서 가군에서 나군으로 바꾼 이유가 뭔가요. 학부모들 원성이 크다고 하던데요.

“원성이 자자하다는 말은 좀 불만이다. 서울대가 나군에서 가군으로 바꿨을 때도 원성이 자자하다는 말을 들었다. 나군으로 바꾼 이유는 예술계의 지원자가 많아 실기시험 치고 면접 보려면 기간이 너무 짧아 가군에 있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가군은 원서접수일부터 합격 결정까지 9일밖에 안 되는데 나군은 18일이다. 기술적 문제 때문이었다. 연세대와 고려대가 나군에 있는데, 주요 사립대학과 모두 협의했다. 3년 뒤의 일이니까 다른 대학들이 대응할 시간이 있다.”

―최근 교수 성추행 문제 등 서울대 명예가 떨어지는 사건도 있었는데요.

“학교에서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일이다. 학교가 크고 교수도 많고 하니까, 중요한 부분은 조직이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서울대가 존경을 받으려면 도덕적 측면의 높은 윤리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 조만간 서울대 구성원들에게 성명 형식으로 글을 보내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존경받으려면 도덕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다. 앞으로 서울대는 사회적인 수준보다 더 높은 윤리 기준을 책정할 것이다.”

―서울대는 한국 내 1위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대학인가요.

“곤혹스러운 질문이다. 한국에서는 최고지만, 사실 칭화(淸華)대를 15년 전에 방문했을 때 서울대보다 한참 뒤처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대가 칭화대를 못 쫓아가고 있다. 원인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칭화대는 그동안 엄청난 투자를 했는데 비용이 칭화홀딩스에서 나왔다. 학교 자체적으로 버는 이익금이 연간 3000억∼4000억 원 정도 된다. 국립대인 서울대는 정부가 지원하는 4000억 원을 제외하면 독자적 수입이 없는 구조다. 이공계는 투자가 생명인데, 그 부분이 막혀 있다. 지금 추진하는 AI 연구 확대도 사실 수입을 위한 측면이 있다. 서울대 발전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인이 정부의 규제다. 서울대는 교육부로부터 중요한 사항들은 모두 승인받아야 한다. 예산도 정부에서 통제한다. 얼마 전에 하계 다보스포럼에서 아시아대학 순위 1위인 싱가포르국립대 총장을 만났는데 싱가포르대는 2006년에 법인화를 했고, 그 이후로 학교가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법인화 이후 싱가포르 정부는 재정 지원만 하고 간섭을 일절 하지 않았다. 모두 학교에 일임했다. 그 결과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 싱가포르대의 경우 분야별로 교수 월급과 지원금이 다르다. 인문학에 비해 AI 분야 연구비가 많은 식이다. 외국 교수가 절반에 달한다. 정부가 감사는 하지만 어떻게 쓰는지는 학교가 정한다. 우리는 큰 틀의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기업체 겸직 교수도 마찬가지인데, 서울대는 반드시 추진하고 싶은데 법규가 막고 있다. 투자 증가와 규제 철폐 두 가지가 있어야 서울대가 발전한다.”

―서울대의 워스트 시나리오는 무엇인가요. 10년 뒤, 20년 뒤에도 한국의 1등 대학일까요.

“얘기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지만, 계속 이렇게 머물면 조금씩 가라앉을 것이다. 왜냐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되면서 인구가 줄고 교육방법도 바뀌고 있고 대학사회에도 부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매사추세츠공대(MIT)는 AI대학원에 1조 원을 투입했다. 변혁이 빠른 다른 사립대학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서울대는 슬라이딩 다운으로 가서 급격하게 망하지는 않겠지만, 천천히 페이드아웃될 위험성이 있다.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 싶어 낙성대 AI밸리도 만들고 교육도 바꾸는 것이다. 일종의 퀀텀 점프(대약진)가 필요하다. 지금보다 훨씬 더 투자와 자율성에서 변화가 있어야 서울대가 산다.”

―물리학자 눈으로 바라보는 인문학적 세상의 모습은 어떤가요.

“과학자들에게는 항상 증거가 중요하다. 막연히 ‘그냥 그렇게 될 거야’라는 방식으로 사고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인문학적 세계는 이데올로기를 너무 쉽게 말하고 세상을 해석한다. 자연과학자들은 귀납적이고 실질적일 수밖에 없다. 물리학에서 지금은 옳다고 여겨도 나중에 실험적으로 배치되는 증거가 나오면 과거의 판단을 가차 없이 버린다. 뉴턴역학이 나중에 상대성이론으로 대체되지 않았는가. 배치되는 결과가 나오면 받아들일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도그마도 아니고 기본이다.”

―외교 정책도 같은 범주에 속하나요.

“그렇다고 생각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관성에 의해 그렇게 되지 못하기도 하는데.

“물리학적 이론이야 바꾸기 쉽지만 실질적인 사회 영역에서는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에서 주장했던 사안을 갑자기 바꾸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선거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잘못 생각했다면 바꾸면 된다. 그런 면에서 민주주의가 전체주의보다 실질적으로 좋은 체제다.”

―서울대 학생이 어떤 학생이 되기를 원합니까.

“얼마 전에 ‘누가 A플러스 받나’라는 책을 보니 높은 학점을 받으려면 수업시간에 받아쓰기를 잘하고, 농담도 베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너무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초·중·고교 12년간 공부 잘해서 서울대 들어왔는데, 그런 부분을 바꾸고 싶다. 기초교양과목에서 ‘어떻게 생각하나’ ‘연구과제를 만들어라’는 식으로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네가 먼저 고민해’라는 식이다. 교수들은 조언해 주고 방향만 잡아주는, 교수가 지식을 주입하는 시대는 지났다. 학생들이 따라와 줘야 하는데, 힘들다는 반응이 많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일이다.”

―서울대 총장으로서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첫 번째로 가장 먼저 국민 신뢰를 얻어야 한다. 두 번째로 과거 습성대로 가면 안 된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하고 싶다. 연구도 지금처럼 논문 쓰고, 학점 받고 그런 방식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 질문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쓸모 있는 교육이다. 지식을 전수하는 교육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런 경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미래 퀄리티를 키우는 교육을 해야 한다. 따라가는 연구가 아니라 정말 여기서 세상을 바꾸는 연구를 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겠지만 토양을 만들고 싶다. 서울대의 방향을 바꾸려고 한다. 서울대에는 우수한 인재가 많다. 방향만 잘 조율해 주면 잘 가리라 본다. 규모가 큰 항공모함 같은 서울대에 항로를 제시해 나갈 것이다. 나는 조타자 역할이다. 정말 제대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인터뷰 = 이제교 사회부장 jklee@munhwa.com

정리=송유근 기자 6silver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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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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