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명확히 할 수가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이를 수가 없다.
삼국시대 제갈량(諸葛亮)의 ‘계자서(誡子書)’에 나오는 구절이다. 제갈량은 평소 나라를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40대 후반에 늦게 본 자식을 교육시킬 겨를이 없었다. 그는 아들이 총명하기는 한데 너무 조숙해 큰 그릇이 되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계자서’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여덟 살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 보낸 편지다. 위 구절은 전국시대의 ‘문자(文子)’와 한나라 초의 ‘회남자(淮南子)’에도 비슷한 문구가 보이는 오래된 명구다. 훗날 제갈첨(諸葛瞻)은 위나라 등애(鄧艾)와 싸울 때 심모원려(深謀遠慮) 전략을 세우지 못해 패했지만, 우국의 굳센 뜻은 버리지 않고 장렬히 전사했으니 부친의 유훈을 절반은 지킨 셈이다.
마음이 뿌옇게 흐려져 있고 욕심의 찌꺼기가 많은 사람은 올바른 뜻을 명확하게 세우기가 힘들다. 또한 마음이 불안하게 요동치는데 멀리 바라보는 안목이 생길 리가 없다. 담박함과 고요함이 위인들만을 위한 미덕이라 생각하지는 말자. 그것은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유용한 덕목이다. 그런데 그것은 한순간의 생각만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평소 마음의 수양을 통해 서서히 길러지는 것이다.
휴가철이라 많은 사람이 삶의 활력을 위해 국내외의 휴양지로 떠날 것이다. 볼거리와 먹을거리에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은 잠깐의 신선함은 제공하지만 때로 도리어 피로감을 남기기도 한다. 조용한 곳에서 차분한 명상과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혹은 멀리 갈 필요 없이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끊고 차분히 숨 고르며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담박함과 고요함의 힘을 키우는 데 분명 도움을 줄 것이다.
상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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