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88세 김 할머니는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힘들어 거동이 점점 어려워졌다. 병원에서 심장초음파를 한 결과 대동맥판막이 딱딱하게 굳은 중증 대동맥판막 협착증으로 진단됐다. 88세에 가슴을 여는 심장 수술은 할 수 없다며 치료를 거부하던 할머니의 손을 잡고 아들 내외가 진료실을 찾았다. 가슴을 여는 큰 수술을 하지 않고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설명하며 할머니를 안심시켰다. 얼마 후 할머니의 노화된 판막을 대신할 인공판막스텐트를 삽입하는 시술이 이뤄졌다. 할머니는 시술 이틀 후부터 병원을 한 바퀴 산책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숨 쉬기가 이렇게 편한 건지 새삼 다시 알게 됐다”며 할머니는 몇 번의 감사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심장에서 혈액을 뿜어주면 대동맥을 통해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데, 심장과 대동맥 사이에 있는 문이 대동맥판막이다. 이 심장판막은 평생 높은 압력에 노출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석회화되고 딱딱하게 굳어져 잘 열리지 않게 되는데, 이렇게 된 경우를 ‘대동맥판막 협착증’이라 한다.
고령사회가 되면서 대동맥판막 협착증도 늘고 있다. 유병률은 전체 인구의 1∼2%, 60세 이상에서는 10년이 경과할 때마다 2배씩 그 발생 빈도가 증가한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진행되면 흉통, 운동성 실신, 심부전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평균 생존 기간이 2∼3년 정도이며 50% 이상의 환자가 1년 이내에 사망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따라서 증상이 있는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반드시 인공판막으로 바꾸어 주는 판막치환수술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전신마취나 가슴을 여는 수술을 하지 않고도 판막을 치환할 수 있는 ‘대동맥판막 스텐트판막치환술’이 개발돼 대동맥판막 협착증 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대동맥판막 스텐트판막치환술은 사타구니의 대퇴부 혈관을 통해서, 인공판막이 장치된 스텐트를 좁아진 대동맥판막에 고정해 확장시키는 방식이다. 가슴을 절개하고, 심장을 열거나 판막을 제거할 필요가 없으니 가히 혁신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시술 시간은 30분 정도 걸리며, 장시간이 소요되는 개흉(開胸) 수술에 비해 환자의 체력 소모가 덜하고, 가슴을 절개하지 않기 때문에 통증이나 운동장애 등의 부작용도 없다. 시술 후 입원 기간도 3일가량으로 짧다.
고령 환자에서는 대동맥판막 스텐트판막치환술의 성과가 개흉 수술보다 더 좋은 것으로 보고돼 있다.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수술이 아주 위험한 고위험군 환자에게도 이 시술이 표준 치료로 자리 잡았다. 시술받은 환자의 평균 연령이 78세이며 최고령자는 93세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서는 거의 98%의 시술성공률을 보인다. 고령이기 때문에 또는 다른 질환이 있어 수술이 어려웠던 환자들의 삶의 질이 대동맥판막 스텐트판막치환술을 통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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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정 교수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한양대와 고려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심장내과 국내 1인자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명의로 꼽힌다. △심장혈관연구재단 이사장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장 △대한심장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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