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소재 국산화 확대 당연히 필요
日 100년사에 노벨과학상 23명
상황 급박한데도 장기 대책뿐

한국 이해하지만 지지國 없어
미국의 한국 두둔 기대 어려워
외교 해결 늦어지면 타격 증폭


일본의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철회를 유도하기 위한 우리의 전략은 크게 국내 소재산업 지원,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통한 국제 여론전, 미국의 중재 요청 등으로 요약된다. 다음 달 2일이면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백색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데, 단기 대책은 없고 모두 장기 대책에 매달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특별법을 만들어 부품소재산업 국산화를 지원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부품 국산화에 주력했으나, 최근에는 소재 분야 지원으로 무게중심이 바뀌고 있다. 부품소재 육성 지원은 산업정책의 핵심이 돼 왔고, 상당 부분 성과도 있었다. 다만, 100년 이상의 화학공업 역사와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23명에 이를 정도로 기초과학이 탄탄한 일본의 첨단 소재 분야를 극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나, 이번 일본 수출 규제를 핵심 소재 국산화 확대의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달에 일본이 수출 규제를 발표한 직후 차관급 고위인사 3명을 미국에 파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의 요청이 있었음을 전제로 ‘한·일 양국이 요청하면 한·일 갈등을 중재’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에 중재를 요청할 의사가 없고 한국이 국제 중재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 등 산업 단체가 한·일 갈등을 우려하고 조기 해결 요청을 하는 것은 다분히 산업적 이해관계 때문일 것이다. 이미 반도체 국제 가격이 오르고 있고, 향후 수출 규제로 한국 반도체 조업이 지장을 받게 되면 미국 반도체 수요 업체들 역시 피해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글로벌 공급 사슬에 대한 영향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오히려 주한미군 분담금, 호르무즈 해협 공동방위 참가 등 안보 청구서를 내밀어 한국을 당황하게 했다.

어느 국가도 편들 수 없다는 취지에서 미국은 한·일 양국 간 해결을 권고하고 있지만, 과연 중립적인 입장일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수출 규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주요 대외정책을 미국과 협의하는 것은 일본의 관례이기도 하지만, 두 정상이 자주 만났기에 협의 기회가 많았다.

아베 총리는 세계 어느 국가수반보다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이며, 트럼프 대통령도 아베 총리와 ‘각별한’ 사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6월 말 일본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전에 이미 10차례나 정상회의를 했다. 4월 말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의 생일 파티에 아베 총리 부부는 동반으로 초청을 받았고, 4번째 골프 회동을 통해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한·미 간 관계가 어정쩡한 틈새를 노려 아베 총리는 한·미·일 군사동맹을 이끌고 있는 미국에 한국에 대한 ‘신뢰’ 부족을 언급하면서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백색국가 제외를 언급했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일 양국의 요청’이란 조건을 붙인 것도 일본이 동의하지 않을 것을 사전에 짐작하고 일본과 대화할 것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여러 정황으로 보면 미국이 한국을 두둔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어떤 측면에서 미국은 일본의 수출 규제를 자국의 반도체 산업 기반 확충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수출 규제로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거나 납기 불확실성으로 바이어가 이탈할 경우, 한국 기업들이 부품소재 조달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미국으로 생산설비를 옮길 수 있고, 미국은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국내 기업의 미국 이전을 유도할 것이다.

미국의 권고와 같이 일본과 외교적 해법을 논의해야 한다. 백색국가 제외로 우리 산업에 대한 피해가 발생하면 외교관계를 원만하게 관리하지 못한 우리 정부도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를 거론하는 것은 국가 간 협정을 쉽게 깨는 국가로 비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GSOMIA 체결을 주도했던 미국도 한국에 대한 신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더구나 반일-친일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은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다가 경제가 나빠지고 안보가 무너지면 국민이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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