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X101

케이블채널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의 순위 조작 의혹에 경찰이 내사에 착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1위부터 20위 사이의 득표수 차이 때문에 불거진 문제다. 1위와 2위 사이, 3위와 4위 사이, 6위와 7위 사이, 7위와 8위 사이, 10위와 11위 사이의 득표수 차이가 모두 2만9978표로 일치한다는 것을 시청자들이 발견했다. 그밖에 7494표 차이, 7495표 차이, 11만9911표 차이, 10만4922표 차이도 각각 2번 이상씩 나타났다. 동일한 수치가 우연히 반복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분노한 누리꾼들은 정식 고발을 예고했고, Mnet 측의 해명으로도 사태가 가라앉지 않자 Mnet 측에서 수사를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오디션 순위 조작 논란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동안 여러 번 있었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어 유야무야됐고, 그에 따라 시청자들의 불신과 공분이 쌓여왔다. 그러다 이번에 의심스러운 수치가 구체적으로 적시되자 분노가 일시에 폭발한 것이다. 만약 유료문자 투표에 대한 조작이 확인된다면 대국민 사기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오디션은 저성장 양극화 한류 시대의 꽃이었다.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부러지고 미래의 희망이 미약해졌다고 간주되는 요즘 오디션이 대중에게 희망과 대리만족을 줬다. 일반 청년들의 처지가 암울해지는 그 시기에 연예계는 화려해졌다. 2000년대에 양극화 저성장이 심화됐는데, 바로 그때 연예계에선 한류 붐이 일었다. 연예인이 더 이상 딴따라가 아닌 부와 명예의 상징이 돼 청소년의 로망으로 격상됐다. 심지어 부모들도 자식이 연예인이 되길 바라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연예인 지망생 100만 시대가 열렸다. 이때 오디션이 등장해 인생역전의 기회를 대중에게 선물한 것이다.

기존의 대표적인 계층 상승 사다리는 교육이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믿었다. 실제로 유명 대학교에 부모가 소 팔아 등록금을 마련해준 가난한 집안 학생이 많았다. 그들이 열심히 공부해 고시를 패스하곤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엔 부유층 자녀들이 유명 대학교에 많이 들어갔고, 로스쿨이나 의학전문대학원도 부유층에게 유리했다. 공부가 그나마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는 장이었는데 거기에 부모의 재력이 끼어든 것이다.

그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중졸 환풍구 수리공 출신 허각이 해외파 ‘엄친아’를 물리치고 시청자 투표로 1위에 올랐다. 오디션이 마지막 남은 공정한 사다리가 됐다. 오디션 열풍이 터졌다. 그 흐름을 잇는 최근의 오디션 최대 히트작이 ‘프로듀스’ 시리즈다. 요즘 청소년들이 가장 선망하는 아이돌을 뽑는 오디션이고, 이전 시즌에서 한류 스타들이 배출됐기 때문에 연습생들이 인생을 걸고 도전했다. 시청자는 자신들의 표가 연습생의 당락을 결정할 거라 믿으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투표했다. 이래서 이번 의혹에 공분이 크게 이는 것이다.

수치 조작 말고도, 제작진이 편집으로 특정 출연자를 밀어준다는 지적이 많았다. 팬덤이 경품들을 내걸고 자신들이 미는 스타에게 투표하도록 유도하는, 즉 사실상의 매표 행위를 하기도 했다. 이 시대 마지막 사다리라는 오디션의 경쟁이 극히 혼탁한 것이다. 공정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다. ‘프로듀스’ 시리즈에 청소년이 깊게 몰입하는데, 투표 경쟁의 혼탁함을 학습할까 두렵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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