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의 하나인 통일연구원이 발간한 ‘통일정책연구’ 책자에 자유민주주의 통일에 입각한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글이 버젓이 실리는 일이 일어났다. 대한민국 헌법 제4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에 위배됨은 물론, 북한 체제의 참혹한 실상과 사회주의 국가들의 실패 등 보편적 가치와 역사의 진보 측면에서도 황당한 일이다.

문제의 글은 최근 발간된 통일정책연구 제28권 1호에 실린 ‘평화통일 교육의 방향과 내용 고찰’이라는 23쪽짜리 논문으로, 필자는 역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 소속 한만길 석좌연구위원이다. 이 글은 ‘자유민주주의 신념을 강조할 경우, 북한에게 흡수통일을 지향하는 것처럼 오해 받을 수 있다’면서 ‘평화적 통일의 관점에서 자유민주주의 신념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통일교육지원법 중에서 ‘통일교육이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민족공동체의식 및 건전한 안보관을 바탕으로 통일을 이룩하는 데 필요한 가치관과 태도를 기르도록 하기 위한 교육’이라는 제2조는 개정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내용으로 통일교육을 했을 때 시정을 요구하거나 처벌하도록 규정한 제11조는 폐지할 것을 제안했다.

이런 글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기관의 정기간행물에 게재됐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직전 통일연구원장은 김연철 현 통일부 장관이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정부 지원을 받는 통일교육 과정에서 인민민주주의나 민중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교육을 실시하더라도 제어할 수 없게 된다. 시민단체가 아닌 정부기관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이를 상대화하자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예사롭게 보고 그냥 넘길 일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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