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선 승부수 ‘인종 편가르기 전략’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라”
트럼프, 유색의원 공격한뒤
대통령 지지율 최고치 기록

美인구중 백인 비중 76.5%
“국경장벽 예산, 엄청난 승리”
백인 편향된 메시지 잇따라

불법이민자 응답 막기 위해
인구조사 ‘시민권 문항’넣어
유리한 선거인단 확보 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 4명 여성 유색 하원의원에게 가했던 인종차별적 공격을 민주당과 언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더욱 확대하고 있다. 앞서 11일에는 연방대법원 판결로 2020년 인구조사에서 시민권 보유 질문을 넣을 수 없게 되자 모든 정부기관에 비(非)시민과 불법 이민자 숫자를 파악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소수에 대한 차별이나 불특정 다수를 잠정적으로 범죄 대상화하는 정책은 대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데도(politically incorrect), 그래서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을 수 있는데도, 왜 트럼프 대통령은 저돌적인 정면 승부수로 맞서는 걸까. 일단 두 사태의 배경에는 ‘인구’라는 공통 요소가 깔려 있다. 이를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11월 대선에서 재선에 유리한 고지를 얻고자 치밀한 득표 계산에 따라 전략을 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더라도 역풍을 이겨내고 실제로 도움 되는 지지표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으로 보이는데, 과연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브레이크 없는 트럼프의 무차별 언행 = 트럼프 대통령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뉴욕), 라시다 틀라입(미시간), 일한 오마(미네소타), 아이아나 프레슬리(매사추세츠) 등 이른바 4인방에게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공격한 데 이어 지난 27일에는 자신의 이민 정책을 비판해온 민주당 중진 일라이자 커밍스(메릴랜드) 하원 정부감독개혁위원장을 “잔인한 불량배”라고 부르고 지역구(메릴랜드 7선거구)를 혹평해 인종차별 논란을 키웠다. 4인방인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푸에르토리코계, 오마 의원은 소말리아 출신 무슬림, 틀라입 의원은 팔레스타인 난민 2세, 프레슬리 의원은 흑인이며, 커밍스 위원장 역시 흑인이고 지역구 인구 중 흑인이 52%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인종차별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러한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흑인 민권 운동가인 알 샤프턴 목사를 “사기꾼” “말썽꾸러기”라고 부르며 전선을 넓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시민과 불법 이민자 수를 파악하라는 행정명령을 발표하면서 “미국 인구에서 시민권 보유자의 수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민주당은 인구조사에서 시민권 보유 여부를 물을 경우 시민권이 없는 이민자들이 답변을 꺼려 인구조사의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반발해왔고, 연방대법원은 민주당 측 손을 들어준 바 있다.

◇5명 중 4명이 백인인 미국 인구 = 31일 미국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현재 미국의 전체 인구는 3억2716만7434명이다. 이 가운데 스스로를 백인으로 여기는 중남미계를 합한 전체 백인 인구의 비중은 76.5%에 달한다. 미국인 5명 중 4명 가까이가 백인인 셈이다. 이 중에서 중남미계를 뺀 백인 인구는 1억9754만6407명으로 60.4%를 차지하고 있다. 중남미계 인구는 5987만1746명으로 미국 인구의 18.3%이며, 흑인 인구는 4090만2223명으로 12.5%다. 아시아계 인구는 1872만8675명으로 5.7%를, 다인종 인구는 711만4666명으로 미국 인구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내에서도 진보 색깔이 짙고, 자신에게 적대적인 4인방에게 인종차별적 공격을 가한 것은 공화당 지지층 결집과 함께 인구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백인 표를 얻기 위한 전략적 행보다. CNN에 따르면 선거분석업체인 ‘쿡 폴리티컬 리포트’(CPR)의 에이미 월터는 “이는 트럼프가 2020년 싸움에서 정확히 바라는 바”라며 “더 많은 언론과 민주당이 트럼프에게 말려들수록 트럼프에게 더 좋다. 이 모든 싸움은 당파를 극단화시킨다”고 분석했다.

실제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에도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을 보면 백인 지지율이 높게 나타났다. 미 공영방송 PBS와 공영라디오 NPR, 여론조사기관 마리스트가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진 이후인 15∼17일 성인 1346명을 대상으로 공동 조사를 진행한 결과(표본오차 ±3.5%포인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자체 최고치인 44%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백인 지지율은 48%로 나타나 유색인종 지지율(35%)보다 13%포인트나 높았다. 특히 백인 중에서도 고졸 이하 지지율은 57%에 달했다. 고학력 백인 중 인종차별적인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히기 꺼리는‘샤이 트럼프 지지층’이 존재하는 점을 고려하면 백인 내 지지율은 이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부 국경 문제에 사활을 거는 데도 공화당에 우호적인 백인 인구 우위 구조를 지켜내려는 전략이 숨어 있다. 미 통계청에 따르면 미국 내 백인 인구는 2010년 1억9732만6434명에서 2018년 1억9754만6407명으로 21만9973명(0.1%) 증가했다. 반면 중남미계 인구는 같은 기간 5047만8611명에서 5987만1746명으로 939만3135명(18.6%)이나 늘어났다. 국경장벽은 중남미계 이민 행렬을 막지 못할 경우 공화당 전통 강세 지역인 선벨트(Sun Belt·태양이 비치는 남부지역)를 빼앗기는 것은 물론 향후 대선에서 공화당 승리가 요원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반영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6일 국방 예산 25억 달러(약 2조9000억 원)의 국경장벽 건설 전용을 허용한 연방 대법원 판결에 “우리나라의 엄청난 승리!”라고 환호한 이유다. 거꾸로 민주당이 “매우 유감스럽고, 터무니없다”(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고 반발한 배경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대 유색인종 편 가르기뿐 아니라 유색인종 중에서도 미국에 정착한 지 오래된 이들을 자극하는 행보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인터뷰에서 중남미계 불법 이민자가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국경장벽 건설에 중남미계 미국인들도 동조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전략은 단순 일자리에 종사하는 블루칼라를 겨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장에서 백인뿐 아니라 흑인, 중남미계, 아시아계 등이 자리를 지키는 사실도 이런 메시지가 먹히기 때문이다. 미국 25세 이상 인구 중에서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는 30.9%인 데 비해 고등학교나 전문대를 졸업한 인구는 87.3%나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갈라치기 전략에 대해 공화당이 침묵하는 것도 이 같은 행보가 2020년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2020년 선거는 트럼프 대통령 재선을 판가름하는 대선인 동시에 하원의원 435명 전체, 상원의원 100명 중 33명을 결정하는 선거다.

◇인구조사로 주(州)별 하원의원과 대선 선거인단 수 변화 =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인구조사에서 시민권 문항을 넣으려고 애를 썼던 사실 역시 선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은 헌법에 따라 10년마다 인구조사를 실시하며, 이 인구조사 결과에 따라 연방 하원 의석과 대통령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 수를 다시 정하게 돼 있다. 시민권 문항을 통해 중남미계 불법 이민자들의 응답을 막아, 하원의원은 물론 대통령 선거인단을 공화당에 더욱 유리하게 구성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미국 대선은 유권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하지만 실제로는 각 주 투표 결과를 각 주의 대통령 선거인단이 대표해서 투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미국이 여러 주로 모여 구성된 합중국인 만큼 각 주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주별 인구에 따라 선거인단 수를 배정해 균형을 맞춘 구조다. 대통령 선거인단 수는 각 주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을 더해서 결정된다. 현재 대통령 선거인단 수는 상원의원 100석과 하원의원 435석을 더하고 여기에 수도인 워싱턴DC 선거인단 3명을 합친 538명이다. 각 주 상원의원이 모두 2석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주별 하원의원 수에 따라 주별 대통령 선거인단 수가 달라지는 셈이다. 대통령 선거인단 538명 중에서 ‘매직 넘버’인 270명을 차지하는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게 된다.

미 선거분석회사인 일렉션 데이터 서비시스(Election Data Services)에 따르면, 최근 인구 변화 흐름을 감안하면 2020년 선거 시 16개 주에서 하원의원 의석 수가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전통적 공화당 강세지역인 텍사스주(36석→39석)는 3석이 늘어난다는 계산이다. 역시 공화당 강세지역인 노스캐롤라이나주(13석→14석)와 애리조나주(9석→10석), 몬태나주(1석→2석)도 각 1석씩 늘어날 전망이다. 민주당 강세지역인 오리건주(5석→6석)와 콜로라도주(7석→8석)는 1석씩 늘어나는 반면 뉴욕주(27석→25석)는 2석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 변동이 있는 주는 대부분 스윙스테이트(경합주)로, 플로리다주(27석→29석), 미시간주(14석→13석), 오하이오주(16석→15석) 등에서 변화가 예상된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8년 만에 하원을 빼앗겼던 공화당은 2020년 하원 선거와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모든 상황이 트럼프 대통령의 희망대로 전개될까. 한편에서는 이런 인구 변화가 2020년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장 미국 50개 주 중에서 하원의원이 가장 많고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주인 캘리포니아주는 2020년에도 의석 수에 변함이 없을 전망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는 2020년 대선에서도 캘리포니아주 대통령 선거인단 55명을 얻는 유리한 상황이 지속되는 셈이다. 게다가 공화당 텃밭이자 현재 캘리포니아에 이어 두 번째로 대통령 선거인단이 많은 텍사스주(38명)가 인구변화로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계산법도 제기된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하원 선거구별 인구는 2010년 인구조사 이후 평균 2만3200명 늘어난 데 비해 텍사스주의 경우 선거구별 인구가 평균 7만4000명 증가했다. 공화당의 고민은 일자리와 낮은 세금 덕에 늘어난 텍사스주 인구가 대부분 민주당 텃밭인 캘리포니아주나 뉴욕주 출신들로 여전히 민주당에 우호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201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텍사스주에서 하원의원 2명을 배출했으며, 공화당은 여러 지역구에서 간신히 승리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폴리티코는 네바다주와 뉴멕시코주, 콜로라도주 등 3개 주가 새로 유입된 인구 때문에 민주당 지지 주로 변하면서 공화당이 2004년 대선 승리 이후 3차례 대선에서 내리 패배한 상황이 텍사스주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 나름의 치밀한 표 계산이 맞을지, 틀릴지는 내년 대선에서나 확인될 전망이다.

워싱턴=김석 특파원 suk@munhwa.com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