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만에 새 시집 ‘눈속의…’

“나는 문예지를 볼 때(2019년 기준) 시인들의 약력부터 보고, 1990년생 이전 태생이라면 거들떠도 안 봐. 등단한 지 10년만 되면 모조리 폐닭, 쉰내 나는 쉬인이지.”(‘양계장 힙합’ 중)

시인의 말도, 그 흔한 작품 해설도, 짧은 추천사도 없다. 그저 시의 묶음일 뿐이다. 장정일 시인이 28년 만에 새롭게 출간한 시집 ‘눈 속의 구조대’(민음사)는 본문을 펼치기 전부터 형식으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시인은 번잡한 형식 대신 오직 시로만 말해야 하지 않느냐고.

이제 소설가와 희곡작가로 더 유명한 장 시인은 자신의 뿌리가 시라는 사실을 상기하려는 듯 파격적인, 때로는 파괴적인 시어로 독자를 압도한다. 시인은 지난 1987년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맥도날드, KFC를 위시한 미국의 패스트푸드 산업에 빼앗기는 우리 고유의 음식과 식사 문화를 풍자하며 시단에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한 세대가 흐른 지금, 장 시인은 사는 곳에서 가까운 맥도날드 매장이 폐점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세상에 널린 패스트푸드에서조차 소외돼 갈 길을 잃은 모습을 시어로 그린다. 우리는 이미 맥도날드 배달 서비스가 가능한 범위인 ‘맥세권’이 부동산 시장의 호재로 작용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장 시인의 새로운 시는 또 다른 미래에 관한 예언으로 들린다.

“어찌 이날을 울지 않고 지나가랴?/온통 맥도날드가 널려 있는 세상에/맥도날드가 없는 동네라니/우리는 노스트라다무스가 되었다”(‘시일야방성대곡’ 중)

이와 함께 장 시인은 위악적인 태도로 인간 내면의 폭력성과 그로 인해 체화된 복종을 응시한다. 이 같은 장 시인의 태도는 부끄러움을 감추는 일의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숨겨진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여전히 멱살잡이를 마다치 않는 장 시인은 이제 젊진 않지만, 적어도 ‘쉬인’은 아니다.

“아파요!/더 때려요!/사랑합니다!/얼굴 없는 대장들, 헤아릴 수 없이/많은 얼굴 없는 대장들이 나에게/복종과 폭력을 가르쳤다/아직 우리가 남자가 아니었을 때”(‘얼굴 없는 사랑’ 중)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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