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이 고도의 분업·특화 통해
‘글로벌 가치 사슬’ 핵심국 성장
무역에 변수 생기면 연쇄반응
특히 글로벌 디지털 산업 타격
日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
WTO 제소는 시간 너무 걸려
수입처 다변화·국산화 등 시급
소재·부품 산업은 시장이 작아
중소기업이 할 수밖에 없기에
대기업 협력·규제완화는 필수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대응으로 민관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열풍처럼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수출규제를 원상회복시키고자 하는 양자 간 협상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고, 미국 역시 동맹국 간 갈등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중재에 나서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2일 우리나라로 치면 국무회의에 해당하는 각의를 열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배제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전격 처리했다. 김영주(69) 한국무역협회장은 요즘 마음이 무겁다.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낸 경제 분야 원로로 정부와의 협조 속에 한·일 갈등 해소를 위해 민간 분야에서 전방위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양국 정부 간 불신의 벽이 워낙 높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주 무역협회회장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정치·외교적 이슈를 양국 간 통상 갈등으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며, 특히 두 나라가 수호했던 자유무역주의 정신을 저해한 것”이라며 “양자 간 협상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한편,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드러난 일본 소재·부품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핵심 소재·부품 국산화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중견기업연합회 등 다른 경제단체와 함께 의견서를 만들어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며 “중장기적으로 수입처 다변화, 국내 생산설비 확충 등 핵심 소재·부품에서 일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기업 건의와 애로사항을 취합해 정부에 전달하고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일 문제뿐 아니라 미·중 무역전쟁으로 통상 환경이 최근 급격히 바뀌고 있다”며 “기업들은 이런 변화의 흐름을 잘 읽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무역협회 역시 기업들이 잘 적응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과의 인터뷰는 7월 말 서울 강남구 삼성동 트레이드타워 50층 무역협회 회장실에서 진행됐다. 시시각각으로 상황이 변화해 추가 인터뷰도 진행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에 대한 입장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정치·외교적 이슈를 통상 갈등으로 확대시켰다는 점에서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은 지난 60년간 분업과 특화를 통해 상호 보완적인 무역구조를 형성했을 뿐 아니라, 글로벌 가치 사슬의 핵심 국가로 성장했기 때문에 양국 간 무역에서 발생하는 변수는 전 세계에 연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반도체산업의 경우 전후방 연계 산업이 광범위하다. 반도체 기업은 수많은 회사로부터 소재·부품 등을 조달하고, 생산된 반도체는 모든 정보기술(IT) 기기뿐 아니라 생활가전에까지 다양하게 소비되고 있다.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생산의 60%가량을 차지하는 한국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글로벌 디지털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본이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 영향은 어떻게 될 거라고 예상하나.
“7월 4일부터 적용되고 있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에 대한 조치는 수출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나, 포괄적 수출허가를 개별 수출허가로 전환한다는 의미다. 포괄적 수출허가 대상은 수출허가 시 3년간 유지되나, 개별 수출허가로 전환될 경우 계약 건별 수출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존에 비해 수입에 소요되는 시간이 늘어난다. 일본은 90일 이내에 개별 허가 심사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화이트리스트 제외도 마찬가지다. 수백 개 전략 품목 계약 건마다 허가를 취득해야 하기 때문에 행정절차 기간이 많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포괄허가, 특별 일반포괄허가 등 기존 포괄허가 효력이 정지돼 2배 이상의 제출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일본과의 소재·부품 교류가 월등히 많기 때문에 행정절차 증가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1100개, 850개 등 영향을 받게 될 품목 개수가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앞으로 영향을 받게 될 품목 범위나 규제 수준을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실효성은 어떻게 보나.
“통상 분쟁을 국제사회에서 공식화하는 차원에서 WTO 제소는 중요한 절차다. 분쟁 해결 절차와 별개로 상품무역이사회를 통해 우리 입장을 표명한 것도 일본의 부적절한 조치를 알리고 회원국들의 동조를 얻기 위한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WTO 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사안을 정식 의제로 상정하고 우리 입장을 재차 피력했는데, WTO 안에서 의제 설정을 매우 잘했다고 본다. 하지만 WTO 분쟁 해결은 결론이 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돼 설사 승소하더라도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계 입장에선 양국 간 정치·외교적 이슈가 통상 분쟁으로 파급돼 WTO 분쟁 해결 절차에까지 회부되기 전에 두 나라 간 대화와 협력을 통해 조기에 진화될 수 있기를 희망할 뿐이다.”
―정부나 여당 일부 인사가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응하기 위해 민족주의적인 정서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많은 국민이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국내 정치에 활용한다는 의미라고 보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크게는 정치·외교적 문제를 통상 갈등으로 확대한 일본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물론,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만 논의가 커져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불매운동이 추진되고 있는데,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적인 과제이기 때문에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해결을 위해서라도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최악의 상태에 치닫기 전에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역협회 차원에서의 대책과 역할은.
“기업이 일본 수출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또 연관이 있는 기업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는 우리와 같은 민간 경제단체에서 지원사격을 해주는 것이 기업 입장에선 훨씬 부담이 덜할 것이다. 지난 7월 23일 대한상의, 경총, 중기중앙회, 중견기업연합회 등 4개 경제단체와 함께 모여 의견서를 만들었고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 또 도쿄(東京) 지부도 일본 내 한국기업연합회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리를 포함한 경제단체들은 △일본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성 △양국 기업의 피해 우려 △글로벌 가치 사슬상 한·일 무역관계 중요성과 조치에 따른 파장 가능성 △미래 지향적 양국 우호관계 구축 필요성 등을 의견서에 포함했다. 의견서 전달 이외에도 민간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해 대일본 아웃리치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중장기적 대책은 없는가.
“중장기적으로 수입처 다변화, 국내 생산설비 확충 등을 통해 핵심 소재·부품에서 일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기업의 요구나 애로 사항을 취합해 정부에 전달하고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다. 수입처 다변화와 소재 국산화는 기업의 위험 부담과 대·중소기업 간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정부 차원의 장기적인 청사진과 규제개혁, 오픈 이노베이션 환경 등이 필요하다.”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를 통해 우리 무역구조의 문제점이 드러났는데 향후 대책은.
“글로벌화가 심화하면서 글로벌 공급체인은 국가 간 분업체계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소재·부품의 기술과 시장성이 부족할 경우 국산화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국제 분업에 따라 한국뿐 아니라 많은 국가가 일본으로부터 핵심 소재를 수입하고 있다. 물론, 오랜 기간 소재·부품 국산화 노력을 지속해 부품 국산화 비율은 상당히 높아졌지만, 핵심 소재는 여전히 일본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기초과학기술과 밀접하게 연계된 소재일수록 일본보다 원천기술이 부족하고 격차를 좁히는 데 장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수입 의존도, 수입처 대체 가능성, 전략자산 여부 등 3대 우선순위를 고려해 국산화를 추진해야 한다. 다시 말해, 수입 의존도가 높고 수입처 대체가 불가능하며 전략자산에 해당될 경우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최우선으로 추진한다는 의미다. 국산화 우선 추진 대상의 경우 기술수준 단계별로 유동성 지원, 기업 협력과 실증 테스트, 연구·개발(R&D) 자금 지원 등 정책 수단을 차별화해야 할 것이다.”
―소재 국산화를 무역협회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인가.
“한국과 일본은 다른 문제에선 각을 세운 적이 있지만, 경제 문제는 지금까지 서로 잘 관리해 왔다. 분업과 특화를 통해 상호 보완적인 무역구조를 만들었는데, 일본이 이렇게 나오는 바람에 아쉬움이 많이 남게 됐다. 요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중요해지긴 했지만, 기업은 우선 수익을 내야 하는 조직 아닌가. 일본이 안정적으로 양질의 소재·부품을 공급한다고 하면 애써 개발하기보다 그것을 가져다 쓰는 게 합리적인 행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선택의 여지없이 소재·부품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도 많이 도와주고 대기업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소재·부품은 특성상 중소기업들이 할 수밖에 없는데, 판매망이 확실해야 이들이 투자에 나설 수 있다. 그래서 대기업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이고, 정부 역시 규제를 유연하게 해줘야 하는데 중간에서 이런 역할을 우리 같은 경제단체가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소재·부품 국산화 말은 좋지만, 그동안 국산화하기 힘든 소재·부품 위주로 국산화를 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 격차를 좁히기 위해선 장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소재·부품산업 육성은 수입 대체뿐 아니라 중국의 산업 고도화에 따른 고기술·고부가가치 소재·부품 수요 증가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최근 반도체를 제외하고 중국에 대한 중간재 수출에서 일본이 한국을 추월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일본의 반도체를 제외한 대중국 중간재 수출 규모는 739억 달러(약 87조2000억 원)였다. 같은 기간 733억 달러에 그친 한국보다 6억 달러 앞선 것이다. 비록 반도체를 제외했지만, 일본이 대중국 중간재 수출에서 한국을 앞선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중국의 중간재 수입 수요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점차 옮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중간재 자급과 수입처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데 일본이 상대적으로 혜택을 보는 것이다. ‘기술 사다리’ 위쪽에 자리 잡는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최근 ‘통상전략 2020’을 발표했는데 간단히 소개해 달라.
“미국발 수입규제, 미·중 무역분쟁,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까지 통상 현안이 지속되면서 이제 기업 차원에서 통상 이슈를 단발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전략을 수립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게 됐다. 무역지원기관으로서 그간 개별적인 통상 현안에 대한 분석과 대응전략을 제시했을 뿐 수출기업의 미래전략 수립에 도움이 되는 중장기 전략을 제시하는 데는 미흡했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래서 통상전략 2020은 통상 파고를 겪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각자 통상전략을 수립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도록 화두를 제시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세계 통상 환경 변화와 원인, 한국의 수출구조 분석, 주요 2개국(G2) 시대의 지역별 통상전략, 산업별 통상 현안, 기업 차원에서의 통상 역량 강화 전략, 정부의 통상 정책에 대한 제언 등으로 내용이 구성돼 있다.”
―통상전략 2020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 이른바 신남방정책에 속한 국가들도 많은 리스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사실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은 최근 무서운 속도로 경제 성장을 하는 국가들이며 장차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생산기지로 각광받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밀하게 들어가면 ‘리스크는 어느 곳에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무역협회 같은 곳에서 성실한 가이드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잘 봤다. 가령 베트남의 경우 1986년부터 도이머이 정책으로 대표되는 경제개혁 정책을 부단히 펼치며 경제 자유화 수준을 높여왔다. 하지만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는 여전히 베트남을 비시장경제로 간주하고 있다. 반면 아세안 국가들과 호주, 인도, 일본, 뉴질랜드 등은 베트남을 시장경제로 인정하고 있다. 베트남의 비시장경제 지위로 한국을 비롯해 베트남을 생산기지로 활용하려는 국가들은 불확실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베트남산 제품은 베트남을 비시장경제로 간주하는 국가들로부터 높은 반덤핑 마진을 부과받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은 반덤핑 리스크 점검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전체적으로 베트남의 경제 관련 법규나 규정이 모호하고 불투명한 경우가 많아 수시로 점검해야 하며 관료주의와 부패, 비효율 역시 만연돼 있는 편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 통상 환경 변화를 보면 기업들의 통상 역량을 높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하며, 무역협회는 어떤 역할을 할 계획인가.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해 내부적으로 전담 조직이나 인력 배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수의 중소기업은 해외영업팀에서 통상업무까지 담당하기에 통상업무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이 부족하며 외부 자문사 고용도 부담이 큰 상황이다. 5∼6년 전만 해도 기업의 통상업무는 자유무역협정(FTA) 활용이나 수입규제 대응이 전부였으나 최근 보호무역주의 확산, 글로벌 가치 사슬 변화, 다각적 FTA 활용 검토 등 복잡해진 통상 이슈로 중소기업의 독자적인 대응이 어려운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중소·중견기업의 통상 역량 강화를 위해 ‘통상전문 싱크탱크’ 설립을 제안하고 있으며 협회 내 민관 합동 통상정보전략센터를 설립해 통상·산업 종합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통상정보전략센터는 아직 가칭이다. 산업과 통상을 동시에 고려한 중소기업 맞춤형 통합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해 정부와 협력하고 국내외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설명해주면 좋겠다.
“과거 같으면 기업들이 해외에 생산기지를 만들 때 인건비만 보고 진출했다. 결정을 내리기 쉬운 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정부 보조금 규모가 문제가 되고 진출 국가의 시장경제적 지위가 통상의 주요 문제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진출을 원하는 국가의 정책도 고려해야 한다. 가령 특정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신발 품목을 육성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데 그곳에 신발 공장을 세우는 것은 그 국가의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고 결과적으로 사업 규모를 키우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생산설비의 자동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인건비 비중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구태여 인건비 때문에 해외에 생산설비를 둘 필요가 없어진다는 의미다. 미국, 일본 등을 중심으로 ‘리쇼어링’(제조업 본국 회귀)이 활발해지는 현상은 이런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최근에는 최종 소비지에 공장을 만드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통상정보전략센터가 만들어지면 중소기업들에 이러한 종류의 컨설팅을 해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역협회에서 이런 통상정보전략센터를 운영할 역량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방대한 업무인데 너무 버거운 것 같다.
“우리도 정부에 예산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통상정보전략센터 운영을 위해 조직을 늘리고 인력을 채용해야 하지만 마구잡이로 늘리는 것은 아니다. 프로젝트 매니저라고 하는 게 적당할 듯하다. 특정 분야에 전문가적 소양을 갖고 있는 교수나 코트라, 각종 협회 소속 전문가들을 한시적으로 섭외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하면 생각보다 조직을 간소하게 꾸릴 수 있을 것이다.”
―통상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정부 역할이 더 중요해질 듯싶다. 어떤가.
“개별 기업 차원에서 대응하기 어려운 통상 리스크가 늘어남에 따라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창과 방패의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기업의 이익 보호와 애로 해소를 위해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는 한편, 수입과 외국인 투자 증가와 관련해 우리 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주요 산업이 글로벌 가치사슬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해외투자도 크게 늘면서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수세적이고 통상적인 대응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보호무역 기조가 강해지면서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가 점점 강화되고 있는 흐름이다. 외국인 투자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보는가.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의 대(對)한국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의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우리 산업의 경쟁력과 일자리, 환경과 안보에 대한 영향 등 종합적인 관점에서 외국인 투자를 심의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미국, EU 등 주요 국들은 외국인 투자를 심의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며, 최근 이 제도를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무분별한 투자 유치로 국내 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뿐 아니라 미·중 간 통상분쟁의 타깃이 될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IFUS)와 유사한 성격이라고 보면 되는가.
“유사하긴 한데 규모는 그에 비해 훨씬 작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CIFUS는 주요 기술 기업에 대한 중국의 매입 혹은 지분 참여를 막기 위한 성격이 강한 편인데, 우리는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 예를 들어 중국 상하이(上海)차는 쌍용차 지분을 매입했다가, 인도 타타그룹에 지분을 매각하지 않았나. 상하이차는 쌍용차를 육성하기보다는 자신이 필요한 기술 취득에 목적을 뒀는데, 당시 상하이차의 투자를 승인하는 것이 적절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이처럼 우리 기업들에 피해를 준다거나 노동 혹은 환경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면 미리 걸러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서 외국인 투자 심의제도를 정부에 건의하게 됐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중국의 청산강철이라는 금속기업이 부산시에 STS 냉연공장을 설립하겠다고 밝혔으나, 국내 철강기업들이 부산시를 상대로 유치 반대 청원 활동을 전개한 적이 있다. 이는 중국에 대한 철강 쿼터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이는데 우리 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무역구제제도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자급률 상승과 함께 중국뿐 아니라 신흥국으로부터의 수입이 급증할 경우 선제적으로 무역구제제도와 기능을 보완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산업부 아래 무역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 우리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손해 보지 않도록 문제 제기도 하고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리쇼어링 정책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동의한다. 우린 다른 나라에 비해 해외 생산이 많진 않은데 최근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 추세를 막아야 한다.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서 리쇼어링이 왜 가능하겠는가. 인건비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이며 이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적극적으로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 개성공단 활용 역시 주요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 유회경 경제산업부 차장 yoology@munhwa.com
정리=이은지 기자 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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