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경상록 하모니카동아리 봉사단
5년째 매주 호스피스 병동찾아
임종앞둔 환자·보호자 앞 연주
장단 맞추고 박수로 화답도
2014년 창단… 회원 21명
전문가에게 44시간 교육받아
이젠 200곡 자유자재 연주
축제장 공연·버스킹 하기도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연주를 들으며 병상에 누운 채 손가락을 까닥거리고 눈물을 흘렸다. 죽음을 앞둔 말기 암 환자의 이런 모습에 회원들은 안도하며 또 다른 곡을 연주했다. 호스피스센터 복도에서 울려 퍼지는 연주에 보호자가 병실에서 나와 ‘앵콜’을 요청하기도 했다. 호스피스센터에 입소한 지 길게는 6개월, 짧게는 음악을 듣는 와중에 임종을 맞기도 하지만 환자들은 연주에 귀를 기울이면서 잠시나마 고통을 잊고 있었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동요 ‘오빠 생각’)’. 지난 7월 22일 오후 2시 대구 동구 신암동 대구파티마병원 5층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문을 열자 복도에서 하모니카 연주를 하는 이들이 보였다. ‘대경상록 하모니카 동아리 봉사단’이다. 회원들은 60∼70대 퇴직 공무원으로 이날 8명이 연주했다. 1시간여 동안 복도와 병실에서 20여 곡을 선보였다. 동요, 가요, 가곡, 팝송 등 다양했다. 봉사단은 매주 월요일 오후 2시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 연주한다. 벌써 5년째다.
복도에서 연주하던 중 병실에서 신청곡이 들어왔다. 평소에는 환자의 안정을 위해 병실 출입 연주를 자제하지만, 환자와 보호자의 요구에 호스피스센터 측이 허락했다. 신청곡은 가요 ‘유정천리’. 수개월째 입원 중인 말기 암 환자(89)의 아내(80)가 부탁했다. 아내는 “남편이 평소 이 노래를 애창했다”고 말했다. 연주가 시작되자 남편은 손가락을 움직이며 장단을 맞췄으며 이를 본 아내는 박수를 치며 웃음을 지었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베푸는 봉사 활동이다. 대구파티마병원 호스피스 완화센터에는 13명의 말기 암 환자가 입원해 있다. 국내에서 환자가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질환은 말기 암, 에이즈,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 등이지만, 이곳에는 말기 암 환자들이 주로 입원해 있다. 코에 호흡기를 달고 생을 놓지 않으려는 환자도 있고 입원 내내 꼼짝하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 2002년부터 운영 중인 이 센터는 13병상(특실 1개, 4인실 3개)이 있으며 늘 빈 병상이 없을 정도다. 병원 의료진과 영양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자원봉사자 등이 한몸이 돼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하모니카 동아리 봉사단은 2014년 11월 창단했다. 당초 3명으로 출발했으나 현재는 21명으로 늘었다. 교사와 행정 공무원 퇴직자로 구성됐다. 봉사단은 환자들을 보면 마음이 울컥하지만, 연주로 힘을 보태며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다. 43년 동안 교직 생활을 하고 퇴직한 박노보(여·70) 회장은 “환자와 보호자가 굉장히 지쳐 있다가도 연주를 하면 장단을 맞추고 박수를 치기도 한다”면서 “환자들이 남은 삶을 의미 있게 살고 환자가 임종한 후 남은 가족은 슬픔과 상실감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정성껏 연주한다”고 말했다. 권경란(여·67) 회원은 “최근 임종을 앞둔 분이 있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찬송가 2곡을 연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연주 도중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 잠시 멈추고 자리를 비운다”면서 “이때는 환자가 위급한 상태로 가끔은 임종을 맞는 분도 있다”고 했다.
홍정근(70) 전 회장도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환자는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생일에 축하 연주를 해주면 감동해 눈물을 흘리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환자는 ‘찔레꽃’을 듣고 싶다고 해 연주해 드렸는데, 이틀 뒤 돌아가셨다”며 “고향 생각이 나게 하는 이 노래가 그분에게는 마지막이었던 것 같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대구파티마병원 측은 “대부분 환자는 옛날을 생각하며 동요와 흘러간 옛 노래를 선호한다”면서 “환자들은 주로 5∼6개월 정도 지내지만, 입원 후 3∼4일 만에 임종을 맞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봉사단은 대구 남구 대덕문화전당 연습실과 달서구 송현동 별빛캠프에서 호흡을 맞춘다. 모두 대경상록자원봉사단 아카데미에서 전문가로부터 44시간 교육을 받고 심화과정까지 통과한 실력파로 200곡 이상 연주한다.
회원들은 하모니카를 선택한 것은 향수를 일으키고 대중적인 곡을 연주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했다. 홍 전 회장은 “흔히 하모니카는 한 종류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트레블로·크로메틱·옥타브·코드·베이스·호른·비네타 등 150여 가지로 다양하다”며 “음악에 맞춰 적당한 하모니카를 이용해 연주하며 주로 서정적인 노래를 많이 연습한다”고 말했다. 윤창환(70) 부회장은 “입 호흡, 손동작 등에 따라 음이 달라진다”면서 “연주 도중 입술에 물집이 생겨 터질 때도 있지만, 이웃에게 꿈과 행복을 주고 있어 멈출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대현(70) 대경상록 하모니카 동아리 봉사단 지도교수는 “하모니카는 휴대하기 좋고 악기 하나로 독주, 중주, 오케스트라까지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분야가 폭넓고 악기 중에 유일하게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면서 다른 음을 내는 악기”라며 “폐활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돼 시니어가 하모니카를 연주하면 건강에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41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봉사단은 대구파티마병원뿐만 아니라 영남대의료원과 대구시 내 복지시설 등에서도 정기적으로 연주하고 있다. 대구 남구 대명동 영남대의료원 8층 호스피스 병동은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여 동안 찾아 연주한다. 또 평생학습축제, 봉사축제, 교통사고 30% 줄이기 한마음대회 축하연주 등 지역 각종 축제와 행사에도 참여하고 거리에서 버스킹도 한다. 이러한 활동으로 대구에서는 이 봉사단을 ‘걸어 다니는 오케스트라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박 회장은 “퇴직 후 사회에서 소외됐다는 생각에 상실감을 느끼곤 했지만, 이웃을 위해 일하면서 존재감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하모니카로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과 행복, 위안을 주는 전도사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구 = 박천학 기자 kobb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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