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강의에 지친 몸과 마음 개운산 산책로 걸으며 추슬러 비에 젖은 잡초 내음 맡으며 말로만 듣던‘자연 치유’경험 해외서 많은 생태공원 봤지만 우리집 소박한 정원보다 못해
우리 가족이 동대문 밖 용두동 끝자락에 보금자리를 잡은 지 어언 43년이 됐다. 처음 이 터에 2층 빨간 벽돌로 된 연립주택을 짓고 보존등기를 마친 분은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익흥 씨였다. 이 일대의 건축물들이 경기도청 관사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층은 방 한 칸이었지만, 서재로 꾸민 뒤 아침저녁으로 가까이 마주하는 남산 풍경이 참 좋았다. 아직 매연, 미세먼지가 그리 심각하지 않던 시절 이야기다. 꽤 넓은 마당은 용두동 언덕배기의 황토 내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용두동 언덕배기 북쪽에 위치한 우리 집은 안암동 로터리와 가깝고, 제기동에 속한 종암초등학교와도 지근거리에 있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청년 시절부터 출석하는 우리 교회가 있고, 거기에서 15분쯤 더 걸어가면 고려대학교다.
1985년 이른 봄부터 여름 끝자락까지 생애 초유의 큰 공사가 있었다. 쥐들이 지붕 밑에 함께 살던 옛집을 헐고 새로 짓는 일이었다. 어머니와 세 자녀도 각각 따로 방을 쓸 수 있게 됐고, 나도 밝은 창가에 서재 하나를 새로 꾸몄다. 정원사를 부를 것도 없이 마침 공주에 있던 처가가 대전으로 이사하면서 장인이 가꿔 오던 주목 두 그루와 향나무 세 그루를 보내주셨다. 지금은 우리 집 인식표지가 됐을 만큼 마당 한쪽 귀퉁이에 선 짙푸른 향나무는 동료 교수들이 와서 신축 기념식수를 해준 것이다.
처음 마당엔 잔디를 입혔고 담장 쪽으로 개나리, 산당화, 영산홍, 모란, 황금측백나무, 국화 등을 심었다. 그 후로 감나무와 모과나무, 배롱나무도 사다 심었다. 일부러 심은 것도 아닌데 잔디밭 틈새를 비집고 어느새 제비꽃, 민들레, 냉이, 꽃다지, 달개비, 강아지풀 같은 야생화가 자리를 잡았다. 매년 몇 번은 양털을 깎듯 잔디를 깎아주는 일은 가장(家長)의 몫이었다. 정원이라 하기엔 부끄럽지만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꽃들은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 순번을 따라 쉬지 않고 피고 지는 것이었다. 마당을 가꾸면서 의외로 잔디보다 더 강한 잡초들이 많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봤다.
내가 잔디 깎기를 단념하고 자연의 순리에 마당을 내맡겨야겠다고 결단한 것은 40대 후반에 들어설 무렵이었다. 그해 6월 어느 토요일 오후를 나는 잊을 수 없다. 밖에서 회의를 마치고 비를 맞으며 학교 연구실로 향했다. 책상 위에는 아직 끝내지 못한 4부작의 ‘한국형법’ 마지막 작업 물량이 가득 쌓여 있었다. 거기다 두세 편의 논문이 마감을 재촉했고, 주제를 정하지 못한 한두 편의 칼럼도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곧장 바닥에 쓰러질 것 같은 위험을 직감했다. 그 순간 뇌리를 번뜩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여기서 쓰러진다면 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부하다 쓰러졌다는 말은 듣지 말자.”
멍한 상태로 우산을 든 채 늘 걷던 연구실 뒤편 개운산 산책로로 향했다. 한 바퀴 돌아오는 데 평소 한 시간가량 소요됐던 길이다. 그날 나는 비를 촉촉이 맞으며 무념무상(無念無想)으로 세 바퀴가량 걸었다. 평소에 알지 못했던 길가의 잡초 내음이 진하고 향기롭게 호흡기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듯했다. 비에 젖어 신비로운 향기를 뿜어내는 싸리꽃도 산책길 굽이굽이마다 다정하게 피곤한 나를 반겨주었고 지친 몸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린 듯 했다.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머리는 어릴 적 바라보던 고향 하늘처럼 맑아졌다. 그동안 말로만 들어오던 자연의 치유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하며 연구실로 돌아왔다.
그날의 특별한 경험은 집으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마당에 칼날 가진 기계를 다시는 대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결심도 함께했다. 지금까지 정원의 잔디를 깎을 때 피어났던 풀냄새는 살벌한 피 냄새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 이후 우리 집 뜨락은 사람이 가공하는 손에서 완전히 해방돼 자연의 손에 맡겨졌다.
그 후 30년, 우리 집 정원에서 잔디는 소리 없이 사라졌고 잡초와 야생화의 천국이 돼버렸다. 그 풀숲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각종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깃들여 살기도 한다. 새들이 조석으로 찾아와 새벽을 깨우며 저녁의 고요를 흔들어 더욱 고요케 하는 까닭을 나는 안다. 필시 새들이 옮겨다 심었을 이름 모를 풀들이 여기저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퍼져 있다. 어쩌다 비 오는 날 창문을 열면, 풀과 꽃향기가 한꺼번에 집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귀뚜라미는 처서부터 울기 시작해 낙엽이 다 지는 날까지 집안을 맑은 기분으로 감싸준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여기저기 생태공원이란 데를 가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그사이 많은 생태공원이 조성됐다. 하지만 우리 집 소박한 생태공원과 맛이 달랐다. 자연은 신비로운 조화의 능력을 갖고 있는 데 비해, 인간의 손길은 비록 뜻하지 않을지라도 자꾸만 분리시키고 구분하는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보고 깨닫고 만들어 가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우리 집 정원에서는 잡초가 화초이고 화초가 잡초인지 벌써 오래됐다.
자연을 빚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다 그때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소중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비록 “내일”이 무슨 뜻인지 모른 채 하루를 살다가는 하루살이의 목숨조차 저 우주적인 생태계에서는 천년을 사는 거목만큼 소중한 삶이 아닐까? 점점 위기에 빠져드는 생태계의 내일을 내다보지 못한 채 점점 비탈길로 내닫는 우리의 오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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