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홍 경기대 명예교수 前 국정원 1차장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는 원래 성경 구절이다. 지난 2017년 11월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시 우리 국회 연설에서 대북 경고문으로 썼다. 당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로 미국을 위협하자 이에 맞서 미국이 대규모 항모전단을 동해에 급파해 무력시위를 할 때다. 작금 우리 안보 상황은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다시 흐르고 있어 불길하다. 미·북 간, 한·일 간, 그리고 남·북 간에 서로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고 회유와 압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 행정부는 북핵 협상 재개 약속이 전혀 진척이 없자 초조히 계속 북측 문을 두드리고 있고, 이에 북은 먼저 한·미연합훈련을 폐지하라고 맞서고 있다. 지난 판문점 회동 의미를 각자 유리하게 해석하며 상호의지를 시험하고 있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과거사 문제로 서로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띄우며 정치적 시험대에 위태롭게 서 있다. 남북관계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열흘 사이 세 차례에 걸쳐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6발을 시험 발사하며 우리를 직접 겨냥한 것이라고 노골적인 도발 의지를 과시했다. 한·미연합훈련을 폐지하고, F-35 스텔스 전투기 도입도 중단하라는 것이다. 얼마나 우리를 얕잡아 봤으면 ‘평양발 경고’라는 모멸적인 공갈 협박을 하겠는가.

이 모두는 일견 별개의 사안 같지만 따지고 보면 상호 밀접히 연관돼 있고 그 근원은 우리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에 있다.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드러내놓고 침범하고 중국이 사드(THAAD) 철수를 다시 강하게 요구하면서 북·중·러 북방 삼각이 우리를 옥죄고 있는 데 반해, 한·미·일 남방 삼각은 지금 정치적으로 각자도생하는 듯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느낌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지난 2년 남짓에 우리가 이런 안보 수렁에 빠져들게 됐는가. 실로 참담한 심정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2017년 가을 정부가 중국에 소위 ‘3불 약속’ 즉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가입하지 않으며, 한·미·일 동맹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안보 주권 포기’ 때부터 이미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여기에 3차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측의 목표는 오로지 한·미 관계 이완을 겨냥한 ‘민족 공조’와 남남 분열을 노린 통일전선 식 평화공작에만 있음이 분명해졌고, 핵 문제 협상에서 ‘남조선은 빠지라’고 공언한 것이 총체적 안보 파국 현상을 가속화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안보 정세는 지금 벼랑 끝 시험대에 서 있다. 댄 코츠 전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증언대로 앞으로 북핵 협상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북은 ‘체제 보장론’을 내세워 계속 핵과 미사일을 증강해 한국 안보를 인질로 삼을 것이다. 이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최근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서 체제 보장 선결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4차 남북정상회담이나 3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려도 이 큰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한국사회의 좌경화가 심해질수록, 한·미·일 관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릴수록 북방 삼각의 그림자에 갇혀 고립돼가는 위태로운 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입장을 분명하게 하고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 한·미 동맹이 약화된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리고 김정은에게 ‘서울발 경고’를 보내야 한다. ‘우리를 더 이상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고.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