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도 여전히 한낮 더위와 같아 문을 열고 밝은 달 아래 잠시 서 본다. 대나무 깊고 나무 빽빽하여 벌레 소리 나는 곳, 문득 약간의 서늘함은 있는데 바람은 아니라네.
남송 양만리(楊萬里)의 ‘하야추량(夏夜追凉)’이다. 양만리는 육유(陸游)와 더불어 남송초의 대표적 애국시인으로 불리는데 금나라에 패해 남쪽으로 밀려난 조국의 현실에 울분을 토하고 잃어버린 영토의 회복을 외치는 우국충정의 시도 많이 썼지만 자연을 노래한 시도 적잖이 남겼다. 그의 시는 평이한 시어를 쓰면서도 청신하고 자연스러운 풍격을 담아내는 것이 특징인데 이 시에서도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난다.
한밤중에도 대낮 같은 열기가 계속되는 어느 여름밤에 시인은 시원함을 찾아 밖에 나가 밝은 달빛 아래 잠시 서 본다. 근처에는 대나무와 나무 그늘이 깊고 빽빽한데 그 속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그때 시인은 약간의 서늘함을 느낀다. 그러나 시인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작품의 시안(詩眼)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람도 없는데 어디에서 온 시원함일까? 아마도 벌레 소리에서 머지않아 가을이 올 것이라 느끼면서 생긴 마음의 시원함이리라.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데다 일본의 적반하장격인 보복성 수출 규제로 분노와 답답함까지 더해져 몸도 마음도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원래 덥다고 짜증을 부리면 더욱 더워지는 법이다. 이럴 때일수록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금의 더위도 머지않아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자. 이제 곧 입추 아닌가. 일본의 무례한 도발에도 차분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다 보면 머지않아 통쾌하게 극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자.
상명대 교수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