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은의 스크린 인물학 - ⑭ ‘동주’ 속 다시 읽는 윤동주
작은방서 홀로 시 쓴 윤동주
교토서 혁명 계획한 송몽규
광복 못보고 차례로 숨거둬
아름다운 문장만 우리곁에
내성적인 성찰형 시인 동주
대범한 사촌 몽규와 대조적
형제애·열등감 그대로 그려
흑백화면·시 낭송 등 ‘탁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별 헤는 밤’ 속 한 구절처럼
부끄러움 잊은 시대에 울림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에 따른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확산되면서 국민의 생활에도 여러 변화가 일고 있다. 일본 맥주를 팔지 않는다는 가게가 늘고 있고, 일본 여행객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선택은 유통업뿐 아니라 출판계, 교육계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시국에 일본 여행 사진을 올린 연예인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지탄을 받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 세월만큼의 굴곡을 겪었음에도 일본의 군국주의적 야심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은 듯 보이는 가운데, 우리는 곧 광복 74주년을 맞는다. 소비자 운동 같은 것은 꿈꿀 수도 없었던, 숫제 주권을 잃어버린 시대의 젊은이들은 어떤 심정으로 하루를 버텼을까. 몇 달 상간으로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던 이들을 생각하면, 이 계절이 새삼 숙연해진다. 매년 더위가 최고조에 달하는 휴가철, 시원한 숲 속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크게 반짝이는 별들이 보고 싶어질 때쯤이면 한 번씩 읊어보는 윤동주의 시구가 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별 헤는 밤’ 중에서)
시에도 언급돼 있듯이 별 하나하나마다 붙어 있는 ‘아름다운 말’들이 금세 마음을 정화시킨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컴컴한 시기에 시인은 어떻게 이처럼 투명한 시를 쓸 수 있었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쓴 시는 ‘쉽게 씌어진 시’지만, 안소영의 소설, ‘시인/동주’(창비)에서 윤동주는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기 전, 그로부터 약 2년 반 전에 쓴 이 시를 떠올린다. ‘별 헤는 밤’은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윤동주의 시 중 하나이며,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잘 드러나 있고, 마지막 연에 언급된 ‘무덤’이라는 단어 때문에 죽음을 예견한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이 시는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로 끝난다. 바로 앞 연의 마지막 행이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라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자기 성찰로 인한 부정적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화된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물에 비친 사나이가 미웠다가 가엾어지고, 미웠다가 다시 그리워지는 ‘자화상’, 홀로 침전했던 자신과 손을 잡고 최초의 악수를 하는 ‘쉽게 씌어진 시’ 등 윤동주의 여러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성이자 그를 저항시인으로 부르는 한 이유기도 하다. 나라를 잃은 슬픔과 이름을 바꿔야 하는 치욕 속에서도, 만리타향의 옥고(獄苦) 속에서도 자기 자신과 다가올 희망의 시대를 끝내 부정하지 않는 강인함이 서정적인 시어들 안에 녹아 있기에 그의 시들은 가슴을 촉촉하게도, 뜨겁게도 만든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2015)는 윤동주의 시처럼 여러 온도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암울한 시대에 짧은 생을 살다 간 윤동주(강하늘)와 그의 사촌, 송몽규(박정민)의 자취를 따라가는 이 영화는 각본, 연기, 촬영, 음악 등 모든 면에서 빼어난 작품이다. 윤동주가 송몽규에게 느꼈던 형제애와 열등감, 시인으로서의 윤동주와 학생으로서의 윤동주, 당대 지식인의 무기력함과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분노 등이 절묘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윤동주와 송몽규를 함께 조명했다는 점이다. 당시까지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송몽규는 동갑내기로 한동네에서 자란 윤동주와 여러모로 대조적인 인물이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편이었던 동주에 비해 외향적이고 대범했던 그는 문학보다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으나 머리가 비상해서 십 대에 이미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숟가락’)되기도 했다. ‘동주’는 두 사람이 처음 함께 등장하는 북간도 명동촌 신에서 윤동주가 송몽규에게 느꼈을 부러움, 자괴감 등을 명확히 보여준다. 둘은 친형제 같은 사이였지만, 일본 형사의 대사처럼 윤동주는 생전에 자신을 송몽규의 그림자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후세에는 윤동주의 시가 널리 사랑받게 되고, 송몽규가 윤동주의 사촌이자 평생의 벗으로서 재발견됐으니 흥미로운 일이다.
‘동주’에 송몽규라는 인물이 반드시 필요했던 이유는 그가 독립운동에 있어서도 윤동주와는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송몽규는 은진중학교 시절, 역사 교사 명희조의 영향을 받아 중국 군관학교에 입학했고, 산둥(山東)에서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한다. 말하자면 그는 보다 저돌적인 행동파였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단 한 번 말싸움을 벌이는데, 문학에 대한 시각차가 드러나는 이 장면은 시대에 저항하는 그들의 방식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송몽규가 산문이 사상을 드러내기에는 좋다면서 시는 인민을 나약한 감상주의자로 만든다고 하자, 문학을 도구화하는 데 반대하는 윤동주는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있는 진실을 드러낼 때 문학은 온전하게 힘을 얻는 거고, 그 힘이 하나하나 모여서 세상을 바꾼다’고 반박한다. 연희전문학교로 떠나는 기차 안, 두 사람이 메밀전병을 먹는 투 샷에서 둘은 많이 닮아 있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다른 기질과 사상을 가졌던 윤동주와 송몽규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후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히기 전까지 매우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교토(京都)에서 송몽규는 유학생들을 규합해 혁명을 계획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촌은 불러들이지 않는다. 위험한 일이기도 했거니와 시인 윤동주에게는 그가 할 일이 따로 있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씁쓸함 속에서 동주는 홀로 남아 시를 써내려간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한 줄 시를 적어볼까// (중략)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쉽게 씌어진 시’ 중에서)
약 5억 원의 저예산으로 만든 ‘동주’는 입소문을 타고 117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이준익 감독은 이 의미 있는 성과를 다음 작품인 ‘박열’(2017)의 자양분으로 삼아 다시 한 번 평단과 관객 모두의 호응을 얻는 데 성공한다. ‘동주’와의 연속성이 잘 느껴지는 이 작품은 서사와 캐릭터 구성을 유사하게 가져가는 대신, 톤 앤드 매너는 주인공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게 어울리도록 밝고 역동적으로 전환시켰다. 이 또한 ‘동주’의 유산인 셈이다.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윤동주가 저항시인의 상을 넘어 ‘자기완성을 향한 반성적 성찰’을 보여줬으며, 이것이야말로 그의 시가 ‘민족어의 아름다움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재현한 절창으로 기억되게끔 작용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일 것’(‘윤동주 시의 보편성과 특수성’, 한국언어문화(제62집), 79쪽)이라고 말한다. 윤동주를 읽는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 반성하지 않는 우리들에게 한 오라기 희망과도 같다.
우울한 시대를 통찰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냉소에 빠지지 않았던 그의 시는 영영 늙지 않고 곁에서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인도할 것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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