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감독 ‘수녀’

1960∼1970년대 등 지극히 작위적인 시대적 분류를 제외한다면 김기영 감독의 작품은 그 어떤 범주로도 묶을 수 없다. 흔히들 그의 작품을 ‘컬트영화’로 분류하거나 칭하지만 그것은 김기영 작품이 만들어진 후 형성된 문화적 팔로잉과 관객성을 기반으로 해 지칭된 것이므로 그의 영화적 미학이나 작가론적인 맥락에서 적확히 붙여진, 총체적 분류로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김기영 영화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여자’다. 김기영의 이름을 알리게 된 ‘하녀’(1960)와 함께 이른바 ‘녀’ 시리즈로 불리는 ‘화녀’(1971), ‘충녀’(1972), ‘수녀’(1979·사진), ‘화녀82’(1982) 등을 비롯해 ‘이어도’(1977),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1978) 등의 작품은 모두 여성을 메인 캐릭터로 하고 여성의 성적, 사회적 욕망을 내러티브의 주요 동기로 삼는다. 이 작품 중 ‘수녀’는 그가 신한문예영화사라는 영화사를 차리고 제작한 첫 작품으로, 김기영만의 강한 여성 캐릭터와 섹슈얼리티를 보여주면서도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 주도했던 우수영화 정책에 부합하려는 양상이 드러나는 역설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는 말을 더듬지만 비상한 손재주를 가진 순옥(김자옥)과 월남전 상이군인 진석(김정철)이 선을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해 일자리를 얻을 수가 없는 진석은 순옥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순옥의 아버지의 회유로 결혼을 하게 된다. 가난한 농촌 생활에 염증이 나기 시작한 진석은 순옥에게 짜증을 부리기 시작하고 이를 보다 못한 순옥의 아버지는 순옥에게 대나무를 가져다 준다. 순옥은 대나무로 바구니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고, 반응이 좋자 진석은 마을 여자들을 동원해 사업을 확장한다. 죽세공업으로 마을은 활기에 차고 진석은 트럭으로 상품을 운반해 버젓한 사장이 된다. 집에 돈이 쌓이면서 진석은 술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그렇게 알게 된 술집 마담 추월(이화시)은 진석을 유혹해 그의 돈을 가지고 도망가려는 음모를 꾸민다. 결국 추월의 꼬임에 넘어간 진석은 순옥을 바닷가로 유인해 죽이려 했다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순옥에게 사죄한다.

김효정 영화평론가
김효정 영화평론가
주인공이 농촌 출신 젊은 여성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수녀’는 김기영의 전작들과 완전히 다른 배경과 설정을 가진 영화다. 영화의 중후반부까지 집착적인 성욕을 가진 여성 캐릭터도, 살인도, 시체도 등장하지 않은 채 영화는 죽세공업으로 집안을 일으키는 젊은 주부와 그의 동료들의 협동을 그린다. 이는 김기영이 인터뷰에서 밝혔듯, 당시 유신정권하에서 주도했던 우수영화 보상제도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집단노동의 미화와 순옥이 만든 죽부인이 남미 수출로 이어지는 대목은 우수영화로 선정되곤 했던 국책영화들이나 새마을영화들의 전형적인 양상을 띠는 대목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새마을영화도 김기영이 만들면 다르다. 진석이 추월에게 빠져들면서 그는 자신의 불구로 인해 내색하지 못했던 성욕을 분출하는데 이는 두 차례 등장하는 진석과 추월의 숲속 정사신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대나무 숲으로 진석을 유인한 추월은 나무에 걸터누워 진석을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추월의 빨간 치마를 노려보던 진석은 엎드려 누워 있는 추월의 엉덩이를 발로 지르밟는다. 추월의 손이 허공을 허우적거리면 진석이 추월에게 돌진한다. 대나무 숲의 진동이 하이앵글로 보여진다. 이 장면은 김기영 영화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코믹한 미장센을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웃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기도 하다. 특히 진석이 추월의 엉덩이를 밟을 때마다 대나무의 진동으로 다시 튀어오르는 것을 반복해 보여주는 클로즈업은 “흥행도 되고 우수영화도 통과하지 않겠냐는 계산”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김 감독의 답이 무색할 정도로 아찔한 장면이기도 하다.

‘수녀’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김기영의 다른 작품에 비해 맹숭맹숭(?)한 면이 없지 않으나 이 영화만큼 군사정권기의 통제적인 영화정책과 작가주의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예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군데군데 삐져나오듯 등장하는 김기영표 섹스신은 이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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