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종이상자 공장 화재 순직 故 석원호 소방장

보건소장이었던 아버지 따라
30살에 늦깎이로 소방관 돼

“같이 여행가기로 했는데…”
13살 딸 오열에 주변 숙연


“평생을 공직자로 봉사하는 삶을 사시던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소방관이 됐다고 하던데, 이렇게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돼 안타깝습니다.” 6일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석원호(45·사진) 소방장의 빈소에는 탄식만이 흘렀다. 이날 오후 1시 20분쯤 안성시 양성면 석화리의 종이상자 제조 공장 화재 현장에 도착한 석 소방장은 “지하에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듣자 한 번의 망설임 없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윽고 폭발과 함께 현장에서 산화했다. 느닷없이 찾아온 순직이었다.

석 소방장은 ‘늦깎이 소방관’이었다. 만 30세가 되던 2004년 3월에야 공직에 입문했다. 그는 평생을 공직자로 산 아버지의 삶을 따르기로 하고 소방 공직에 입문했다. 그의 아버지 석종화(73) 씨는 도청 서기관과 안성보건소장을 지낸 보건직 공무원이었다. 한 조문객은 “석 소방장의 아버지는 우리 지역에서도 명망이 높은 어른 중의 어른”이라며 “소방관으로서 인명구조에 생명을 바친 그 아들의 삶이 그야말로 부전자전”이라고 말했다.

원래 그의 꿈은 프로야구 선수였다. 초등학생 때 야구를 시작한 그는 한때 엘리트 체육인을 꿈꾸며 야구부가 있던 삼일중과 유신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큰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운동을 접었다. 고교 졸업 후 생업에 뛰어든 그는 직장생활을 하며 번 밑천으로 돈가스집을 열기도 했다. 일찍 철이 들어 20대에 결혼하고 아들과 딸을 낳았다.

석 소방장은 오는 22일 딸과 미뤄오던 충청도 여행을 떠나려던 차였다. 빈소를 지키던 만 13세 여중생 둘째 딸은 “열여섯 밤만 자면 같이 여행 간다고 했잖아. 근데 왜…”라고 말하며 하염없이 울다 끝내 몸져누웠다.

석 소방장은 효심도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20여 년을 당뇨를 앓던 어머니 간호는 물론, 지난해 어머니를 여읜 후로는 홀몸이 된 아버지를 모셔온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에는 생신을 맞은 아버지에게 사이클 운동기구를 선물했다. 석 소방장의 이모부 김한남(64) 씨는 “매주 아버지를 모시고 목욕탕을 갈 정도로 효심이 깊었다”며 “지난달 아버지에게 사드린 사이클 기구가 마지막 선물이 된 셈”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이날 빈소를 찾은 한 소방관은 유족들에게 인사말도 제대로 못 건네고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날 석 소방장과 함께 불과 싸우던 이였다. “항상 솔선수범하고 동료를 아끼던 형이었다”고 입을 연 그는 “야구, 배드민턴, 탁구 등 못 하는 운동이 없어서 따르는 후배가 많았다”며 고인을 회상했다. 이어 “현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무전이 타전됐을 땐 ‘설마, 아닐 거야’ 생각했는데, 원호 형이 당사자일 줄은 몰랐다”며 “누군가의 잘못으로 발생한 화재에 왜 아무 잘못 없는 원호 형이 희생돼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안성 = 박성훈 기자 pshoon@munhwa.com
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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