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중거리핵전력(INF)폐기 조약이 지난 2일 폐기됨으로써 세계 핵안보 질서가 더욱 불안해졌다. 수천 기의 중거리 핵미사일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참여 거부와 러시아의 비밀 무기 개발 등으로 INF는 오래 전에 실효성을 잃었지만, 참다 못한 미국이 탈퇴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한반도는 4개 강대국 모두의 이해관계가 직접 충돌하는 유일한 지역이어서 INF 문제는 또 다른 도전 요인이다. 이미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미사일 배치를 거론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반발하는 등 발등의 불이다.

이런 엄중한 안보 위협이 추가되고 있는데, 청와대의 인식은 안이함을 넘어 무지(無知)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6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보여준 청와대와 여당의 모습은 가위 ‘봉숭아학당’ 수준의 코미디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 핵실험 횟수에 대해 노영민 비서실장은 “두 번인가? 아니면 한 번?”이라고 우왕좌왕했고,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없었다”고 했다가 “한 번”으로 정정했다고 한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횟수도 마찬가지다.

최대 안보 위협에 대한 기본적 사실조차 꿰지 못하고 있으니 정교한 대응은 언감생심이다. 더 심각한 것은, 노 실장이 미국 중거리미사일 배치 가능성에 대해 “확실하게 말하겠다”면서 “관련 논의를 한 적도, 검토한 적도, 앞으로 계획도 없다”고 한 답변이다. 이 새로운 3불(不) 선언은 중국에 해준 ‘사드 3불’ 약속보다 훨씬 더 큰 문제다. INF 폐기로 새로운 핵 균형 논의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신(新) 3불 선언’이라고 할 만한 노 실장의 언급은 국익과 주권을 훼손하고, 안보를 저해하며, 동맹을 배신하는 취지가 강하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다. 중국은 이미 단·중·장거리 둥펑 미사일 수천 기를 실전 배치했고, 북한도 성주 기지 등을 겨냥해, 요격도 힘든 이스칸데르급 미사일 도발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을 향해 이런 상황을 지적하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실제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중요한 지렛대도 미리 없애버린 셈이다.

마크 에스퍼 신임 미 국방장관은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으로 한국과 일본을 선택했으며, 9일 방한한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6일 이미 한국 배치 희망을 내비쳤다. 청와대의 3불 선언은 미국과 협의조차 하지 않겠다는 입장 천명이다. 청와대는 정세가 불안정해질수록 최강국과의 동맹이 중요하다는 이치를 깨닫고 이제라도 바로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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