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한반도 주변 열강들로부터 대한민국이 이렇게 고립된 것은 1948년 제헌헌법 제정 이후 처음이다. 1965년 국교 수교 이후 최악의 한·일 관계를 시작으로 한·중, 한·러는 물론 한·미 관계 역시 불협화음의 연속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고립무원 단계를 떠나 정치와 군사는 물론 경제위기로 비화하고 있다. 2019년 한반도 정세는 해법이 쉽지 않은 고차방정식과 같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대가가 만만찮다.

위기의 일차 진원지는 평양이다. 지난 5월 2차례 단거리탄도미사일 발사를 시작으로 이제 한반도의 아침을 깨우는 종소리처럼 미사일 발사는 횟수가 무의미할 정도로 상시화했다. 특히, 군과 정보 당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체에 대한 정확한 기술적 분석이 미흡한 상태에서 섣부른 정무적 판단이 뒤섞이며 체계적인 실체 파악은커녕 북한의 사후 발표에 진단이 농락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정된 북한 헌법은 전문에서 ‘무적의 군사강국’을 선언했고, 인민군 통수권을 명시한 제102조는 김정은에게 ‘무력총사령관’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붙였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별거 아니라는(so smaller) 트위트 면죄부를 준 이후 김정은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이번 주에 시작된 컴퓨터를 통한 지휘소(CPX) 훈련이라는 한·미 연합 군사연습은 방어만 하고 반격은 못 하니 학생들이 즐기는 배틀필드 게임보다 못하다. 그나마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이름도 없어 ‘홍길동 훈련’이 돼버렸다.

무적의 군사강국이라는 구호에 걸맞게 김정은은 지난달 함경남도 신포조선소에서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시찰했다. 이미 김정은은 지난 4월 4000t급의 잠수함 건조를 지시했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최대 3기 탑재가 가능한 최소 2000t 이상의 잠수함이 건조되거나 러시아에서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 해운대와 제주도 중문 앞 해상에 북한 SLBM 잠수함이 수시로 출몰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는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남과 북이 지난해 9월 19일 요란한 축포와 함께 서명한 군사합의서 제1항에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북한은 연일 드러내놓고 대남 적대행위를 하고 있다. 9·19 군사합의를 사문화(死文化)하고 나선 것이다. 미사일 발사가 9·19 군사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청와대 안보실장의 발언은 평양을 향한 일편단심 사모곡인가? 평화경제론으로 대일(對日)결사 항전을 독려한 다음날 아침, 저고도 정밀타격 능력을 자랑하는 미사일로 응답하는 주체가 평양지도부다.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미사일로 협박하는 당사자와, 경협으로 단숨에 극일(克日)하겠다는 주장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다. 9·19 군사합의는 일장춘몽으로 치부하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을 포함한 주변국과의 관계는 우적(友敵)과 실리 기준으로 정리해야 한다.

얼마 전 방문했던 중국 칭화대 정문 표석과 캠퍼스에 붙어 있는 ‘자강불식 후덕재물(自疆不息 厚德載物)’이라는 슬로건은 풍전등화 상태인 대한민국의 안보에 경종을 울리는 것 같았다. ‘스스로 쉼 없이 강하게 만들고 덕을 많이 쌓아야 재물이 들어온다’는 의미다. ‘자강불식 후력재안(厚力載安)’이다. ‘스스로 쉼 없이 강하게 만들고 힘을 많이 쌓아야 안전이 보장된다’라는 창작 문장으로 무더위 속 답답한 마음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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