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유정 ‘7년의 밤’ 주암호
차로 친 아이 저수지서 살해
10년전 옆 단지 끔찍한 사건
‘인간 이중성 속 광기’모티브
빠져나올 수 없는 공간 찾아
전국의 댐을 떠돌던 가을 날
후배가 ‘주암호’이야기 전해
순천 주암면 협곡 막은 인공호
수몰된 마을 이야기 듣는 순간
내가 찾던 그 곳이라는 확신이
물안개에 둘러싸인 거대 우물
댐직원 사택·옛마을 고스란히
풍경 너머 공간 단숨에 스케치
10년 전, 6월 어느 밤이었다. 나는 야간산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후, 숲은 습하고 후덥지근한 공기로 뒤덮여 있었다. 적황색 반달이 머리 위에 떠 있었던 걸, 또렷하게 기억한다. 좁고 가파른 산길을 내려오는 내내 달을 올려다봤던 것도. 온몸이 비와 땀으로 함빡 젖어 있었던 것도. 그 일이 아니었다면, 곧장 잊어버렸을 일상적이고 사소한 기억이다. 그때 나는 갓 등단한 신인 작가였고, 야간산행은 등단작인 ‘내 심장을 쏴라’를 쓰기 위해 2년 동안 매일같이 해온 일종의 습관이었으며, 그사이 달은 수도 없이 뜨고 졌다. 집에 도착했을 땐 밤이 깊어 있었다. 나는 아파트 공동현관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게시판에 아이를 찾는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열한 살짜리 사내아이로, 태권도장에 간다고 나간 후 실종됐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아이의 집은 우리 집 부엌 창에서 정면으로 내다보이는 옆 단지 아파트였다.
아이나 치매 노인을 찾는 전단지를 처음 본 것도 아니건만, 나는 이상한 한기를 느꼈다. 땀이 싹 가시고 천근만근으로 늘어져 있던 사지에 힘이 들어갔다. 직관적이고 비논리적인 느낌에서 비롯된 반응이었다. 가장 가까운 단어를 찾자면 ‘예감’ 정도가 될까.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예감이 현실로 바뀌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집 근처 도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사건이었으나, 처음엔 그저 사고에 불과했다. 음주 상태로 승합차를 몰던 한 남자가 아이를 친 교통사고. 아이는 제 발로 일어날 수 있을 만큼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남자는 아이를 차에 태우고 근처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 의사는 두부 손상을 우려해 자기공명영상(MRI) 장비가 있는 병원으로 데려가기를 권했다. 여기까지는 어쨌거나 이해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해 불가능한 일이 벌어진 건, 응급실을 나온 다음부터였다. 남자는 아이를 병원이 아닌 광주광역시 근교의 한 저수지로 데려가 사냥용 공기총으로 살해한 후 절벽 아래로 던져 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몇 날 며칠 세상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는 인터넷에 매달려 관련 기사를 모조리 읽어 치웠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상을 알면 알수록 의문은 점점 커지기만 했다. 남자는 대체 왜 그랬을까. 경찰이 밝힌 범행동기는 이러했다.
“영세 인테리어 업자인 피의자 이모(48) 씨는 생계에 필수인 운전면허에 대한 집착 때문에 A 군을 살해했다.”
참으로 의심스러웠다, 그것이 정말 범행동기가 맞는지. 범인은 사이코패스도 반사회적 인격 장애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다는데. 자신의 행동이 아이와 아이의 부모는 물론, 자기 인생과 가족마저 지옥으로 몰아넣으리라는 걸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그 자신도 알지 못했던 내면의 괴물이라도 깨어난 것일까.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진실일까.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몇 날 며칠, 나는 ‘무엇’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혼란스러웠고 고민스러웠다. 누군가 내게 그것이 과연 고민할 가치가 있는 일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인간은 선인이나 악인으로 선명하게 분류되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이중성, 혹은 양면성을 지닌다. 한쪽에 희망, 사랑, 양심, 이타심 같은 고귀한 것들이 사는 황금벌판이 있다면, 반대편에는 우리 삶에 문제를 일으키는 온갖 야수들이 잠든 어두운 숲이 있다. 질투, 분노, 증오, 혐오, 공포, 절망, 폭력성….
왜 이런 숲이 우리 안에 존재하는지. 숲에 잠들었던 야수들은 어느 날, 어떤 일을 계기로 눈을 뜨는지. 이들을 의식의 수면 위로 추동시키는 어두운 힘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것이 운명의 암류와 결합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것을 자유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지, 아니면 속절없이 난파당하고 파멸할 것인지 등등.
문학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이를 통해 인간을 총체적으로 규명해내는 작업이다. 덧붙여, 그 작업이 소설이라는 이름을 가지려면 모티브가 된 사건은 철저하게 은유돼야 한다(은유되지 않은 기록은 ‘내러티브 논픽션’이라는 다른 이름을 갖는다). 나는 인간 내면에 숨은, 통제할 수 없는 광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새 노트를 장만하고 ‘7년의 밤’의 줄거리를 썼다.
“한 남자가 술을 마시고 야간운전을 하다가 어느 마을의 한적한 도로에서 여자아이를 친다. 그는 중상을 입었으나 아직 죽지 않은 아이를 호수에 유기해버리고 뺑소니친다. 아이 아버지는 딸의 시신이 발견되자 범인 찾기에 나선다. 그리고 범인이 누군지 알아내는 순간, 경찰 대신 사적 복수를 계획한다. 범인의 아들을 납치해 범인이 보는 데서 죽이기로. 죄책감에 시달려 미쳐가던 범인은 아이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지키려다 마을주민들을 희생시켜버리는 희대의 살인마가 된다.”
내게 있어 이야기를 시작하는 첫 단계는 공간을 구축하는 일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이 거대한 호수라고 판단했다. 표면적 플롯을 충분하게 구축할 수 있는 공간. ‘빠져나올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거대한 힘, 우리의 삶 바깥에서 들이닥치는 통제 불가능한 힘에 대한 은유가 가능한 공간. 운명의 폭력성과 맞닥뜨린 인물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극복하는지, 혹은 어떤 식으로 난파당하고 침몰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공간.

나는 소설의 무대가 될 ‘세령호’의 원형을 찾아 나섰다. 일단 자연호수는 제외했다. 수문이 있어 수위 조절과 대량방출이 가능한 인공 호수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운 좋게도 댐을 견학하고, 댐 관리단 내부와 통제시스템, 세부시설을 취재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다만 주변 지형이나 호수의 형태가 이야기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았다. 후배로부터 주암호에 대해 듣게 된 건, 댐을 찾아 팔도를 떠돌던 가을 어느 날이었다.
주암호는 보성강 지류인 순천시 주암면 대곡리와 구산리 사이 협곡을 막아 만든 인공 호수다. 우리나라의 많은 댐이 그렇듯, 주암호를 조성할 당시 조계산과 모계산 사이 49개 마을이 고스란히 물에 잠겼다고 했다. 시외버스가 드나들던 고갯마루 아랫마을까지도.
무엇보다 나를 흥분시킨 건, 물속마을 이야기였다. 언젠가 한 방송국에서 잠수부를 동원해 물속마을을 탐사하는 다큐멘터리를 찍었다고 했다. 영상을 본 후배에 따르면 지붕, 벽널, 우물, 심지어 마당에 세워둔 유모차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물속마을 영상을 직접 볼 수 없었다. 너무 오래전에 방영된 것이라 전능하신 ‘구글님’조차 이 영상을 찾지 못했다.
나는 퇴근하는 남편을 앞세워 주암호로 달려갔다. 가는 내내, 운전하는 남편에게 ‘좀 더 밟으라’고 보채며 안달복달했다. 반드시 해질 녘 호수를 봐야겠다는 생각에, 도착하기 전에 해가 져 버릴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어떤 직감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 바로 그곳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심지어 직감이 틀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물속마을 이야기를 듣는 순간, 세령이라는 소녀와 잠수부 안승환이 동시에 만들어졌으니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여겼다.
직감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해거름에 도착한 주암호는 음산하고 스산한 세령호 그 자체였다. 물안개로 둘러싸인 거대우물이었다. 호수 주변은 철조망 담장으로 에워싸여 있고, 호수 내 출입은 금지돼 있었다. 안내표지판에 따르면, 주암호는 광주와 전남의 식수를 대는 상수원이었다. 댐 관리단은 다른 곳과 병합돼 이주했지만, 직원들이 살던 사택은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다. 누군가 거주하는 듯 빨래가 걸려있는 집도 있었지만,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호수 중간쯤엔 녹물이 벌겋게 흘러내린 오래된 취수탑이 짧은 콘크리트 다리와 연결돼 있었다. 상류 쪽엔 자물쇠로 문을 잠근 선착장이 있고, 안쪽 부교에 청소용 배들과 예인선이 묶여 있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수몰되지 않고 남아 있는 옛마을이 나타났다. 사람이 살까 싶은 황폐한 마을이었다. 텅 빈 축사, 풍상에 닳은 돌계단과 축벽, 검게 변색된 슬레이트 지붕 집,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난 마당, 무너진 울타리들, 찔꺽거리는 진창길, 당산나무 밑에 놓인 먼지 낀 평상, 주변 나무와 숲을 뒤덮어 버린 가시박 덩굴….
나는 가방을 열고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냈다. 그간의 경험상, 카메라 촬영이 금지된 곳이 많아 준비해간 것이었다. 설령 촬영이 허락된다 해도,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느낌이 있게 마련이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풍경 너머의 공간,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의 풍경은 스케치가 아니면 기록이 불가능했다.
호수 촬영은 남편에게 맡기고, 나는 스케치를 시작했다. 그 와중에 스케치 장소와 관련된 장면, 즉 이야기의 몸통을 만들 퍼즐 조각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바람에 메모지를 붙여 둬야 했다.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서둘렀으나, 결국 몇 장 그리지 못하고 날이 저물어버렸다. 그 때문에 여러 날에 걸쳐 그곳을 드나들게 됐고, 그러다 보니 습관처럼 찾아들었다.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는 날이면 어김없이.
어느새 나는 호숫가 옛마을의 주민이 되었다. 당산나무 아래 평상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세령마을에서 일어날 일들이 영상처럼 떠오르곤 했다. 가시박 덩굴 위로 초저녁 달빛이 내려앉으면, 제초기를 휘두르며 호숫가를 맨발로 내달리는 주인공의 광기 어린 모습이 상상됐다. 호수 위로 덮이는 물안개는 물속마을 어느 집 굴뚝에서 피어오른 밥 짓는 연기로 보였다. 그 집 할머니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아가, 그만 놀고 들어와 저녁 먹어라.’

주암호는 내 소설 속 이야기가 이야기되는 마법의 공간이었다. 호숫가 옛마을은, 나를 주민으로 살게 해준 인심 넉넉한 뮤즈였다. ‘7년의 밤’을 품어 부화시킨 요람이었다. 부디 그곳이 오래오래 남아 있기를. 그리하여 또 다른 누군가의 뮤즈가 되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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