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철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 원자력시스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달 일본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결정했고,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해 일본 정부 결단에 따라 수출 규제 품목을 늘릴 수 있게 됐다. 단기간에 기술 자립이 어렵고 일본 의존도가 큰 반도체 소재 분야를 공격 목표로 삼은 것이다. 반도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그런데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이 반도체 소재가 아니라, 석유·천연가스·전력 같은 에너지 분야였다면 어떨까.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한 국가의 에너지는 사람에게 음식과도 같기 때문이다.

에너지 수급에서 에너지 안보는 경제성, 지속가능성 등과 함께 매우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에너지의 94%를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특히 그러하다. 미국 상공회의소가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 수준은 에너지 소비 상위 25개국 중 23위를 차지할 정도로 취약하다. 우리 정부는 에너지 자립도 향상을 위해 준국산 에너지인 원자력을 수십 년간 육성해 왔다. 이제 우리는 독자 기술로 원전을 설계·시공·운영할 수 있게 됐다. 원전 운영에 필요한 핵연료를 만들기 위해 농축우라늄을 수입해야 하지만, 공급 안정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미국·캐나다·호주 등으로부터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고 그 비용도 전체 발전 단가의 10% 미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99㎡(30평)형 아파트 한 채 정도의 면적이면 우리나라 전체 원전에서 1년 정도 사용할 연료를 저장할 수 있을 만큼 저장 공간도 매우 작다.

안타깝게도 정부는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정책을 시행하거나 계획 중이다. 그 첫 번째가 원자력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려는 탈(脫)원전 정책이다. 햇빛과 바람은 국산이며 공짜이기 때문에 발전 과정만 언뜻 보면 이들도 국산 에너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의존하는 간헐성 에너지이기 때문에 태풍이 오거나 장마철에는 며칠씩 발전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믿을 수 있는 발전원이 아니므로 에너지 안보를 약화시킨다.

두 번째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과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 사업이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은 몽골 지역에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 단지를 건설, 여기서 생산된 전력을 중국과 북한에 걸친 대규모 전력망을 통해 우리나라에 공급하는 사업이다.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 사업은 연해주와 북한을 지나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국내에 공급하는 사업이다. 이들 사업도 에너지 공급원을 다변화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을 따져 보면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협 요소가 잠재해 있다. 지금 일본이 우리나라에 그랬던 것처럼, 중국·러시아·북한도 걸핏하면 전력과 천연가스 공급 차단을 무기로 한국을 위협하고 자국의 이익을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은 지난 수십 년간 값싼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과 물가 유지에 크게 기여해 왔다. 각고의 노력으로 원전 기술 자립에 성공하고 원전 수출까지 했다. 그런데 정부는 준국산 에너지인 원자력을 퇴출하고 발전설비 대부분을 수입하는 간헐성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며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또, 중·러·북에 우리의 목줄을 내줄 수밖에 없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과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를 거울삼아 에너지 안보에 치명적인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과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 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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