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운 논설위원

트럼프-김정은 회담 장소 銅板
南은 소외, 美·北이 동맹인 듯
김정은, 한·미 이간질 계속할 것

리콴유 전략 미·일 중시와 통합
국민 아는데, 文정부만 모르나
남북·한미·한일 관계 분명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처음 만나 악수한 카펠라 호텔 로비의 바닥에는 지름 50㎝의 원형 동판(銅板)이 설치돼 있었다. 두 사람이 맞잡은 손 모양 아래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이라는 문구가, 그 주위에 미합중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가 새겨져 있었다. 동판을 보고 있으면, 마치 미국과 북한이 동맹처럼 보인다. 하노이·판문점으로 이어진 싱가포르 양자 회담은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이 한국을 떠나 미·북으로 넘어간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책장 앞에 나란히 앉아 TV 카메라를 향해 소감을 밝히고 단독 회담을 가졌던 장소는 호텔 2층 ‘라이브러리’였다. 호텔 투숙객들이 책이나 신문을 보고 차도 마시는 공간이다.

김정은이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첫째, 북한. 가장 중요한 목표는 권력을 유지·강화하고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 사회주의 체제를 흔들 수 있는 개혁·개방은 안 된다. 둘째, 핵·미사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권력과 체제를 유지하고, 남조선을 굴복시키고, 미국과 협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보검이다. 셋째, 미국. 일단 잘 지내야 한다. 트럼프는 그럴 생각이 있는 듯하다. 중국보다 미국과 더 친할 것처럼 속이면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 남조선과 미국을 이간시켜 주한미군을 철수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넷째, 트럼프 일가. 쿠슈너·이방카와 사업을 해도 좋다. 그래서 판문점에서 함께 만났다. 정치도, 사업도 ‘패밀리 비즈니스’가 최고다. 다섯째, 남조선. 언제든 흔들 수 있다. 친북·종북 정권을 세워서 ‘경제 식민지’로 이용하면 된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전쟁을 일으켜 ‘해방’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물든 5000만 명을 통치하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다.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트럼프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첫째, 중국. 중국의 목을 겨눌 수 있는 북한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면 전략적으로 큰 승리다. 둘째, 핵·미사일. 일단 내년 재선 때까지는 관리만 해도 된다. 북핵은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다. 중국 문제를 해결할 때 북한 문제를 함께 풀 수도 있다. 셋째, 한국. 붙박이 주한미군은 ‘가성비’가 떨어진다. 남한은 부자인데, 북한같이 가난한 나라 하나도 상대 못하나. 한국에도 주한미군 철수를 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넷째, 김정은. 오래 통치하는 것은 권력자의 큰 강점이다. 북한은 정말 입지(location)가 좋다.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김정은이 날 속일 수도 있다. 그래도 협상은 손해가 아니다. 노벨 평화상?

라이브러리 책장 앞에는 원래 의자가 삼각형으로 놓여 있다. 둘이 아니라 세 명이 대화하는 구조다. 세 번째 의자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앉았어야 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카펠라 호텔에도, 판문점 자유의집에도 초대받지 못했고, 트럼프-김정은 대화를 귀동냥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세 번째 의자(실제로는 소파)에 앉아봤다. 문 대통령의 입장에서 생각하지는 않았다. 문 대통령이 정말로 북한 비핵화를 원하는지,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믿는지, 주한미군 주둔을 원하는지, 남북·한미·한일 관계의 목표가 뭔지 알 수 없다.

라이브러리 안에서 해답의 작은 실마리라도 얻고 싶었다. 책장 속에 ‘냉정한 진실(Hard Truth)’이라는 책이 꽂혀 있었다.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 평전이었다. 부산 면적보다 작고, 서울 인구 반밖에 안 되는 섬나라를 세계적인 부국으로 이끈 리콴유 전 총리의 노력과 비책이 잘 기록돼 있었지만, 책을 읽는 대신 추천사만 봐도 충분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빌 클린턴·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헨리 키신저·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 다임 자이누딘 전 말레이시아 재무장관. 그뿐만이 아니다. 싱가포르의 미래인 중학생, 대학생, 인터넷 기업 창업자, 변호사, 금융전문가, 자영업자가 함께 추천사를 썼다. 우방국과 주변국, 특히 미국·일본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고, 국민 통합에 힘쓰는 것이 싱가포르의 위대한 성공을 만들고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알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분명히 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들이다.

<싱가포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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