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소재·부품산업 안전망 구축 방안은

“기업상속 못하게 막는 한국 법
중소·중견 기술성장 막는 규제”

“日 소재 기술력, 韓보다 앞서
단시간에 격차 극복은 어려워”

“기술만 뛰어나다고 끝 아냐
가격 경쟁력 없으면 무의미”

“연구만으론 돈 못 버는 구조
이공계 동기부여 계기 마련을”


지난 7월부터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3개 품목에 대해 대(對)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고 이달 들어서는 수출 심사우대국 명단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등 양국 간 무역 마찰이 심화되고 있다. 각종 산업 소재·부품을 일본산 수입에 의존해 오던 한국 산업계의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주요 대학들은 일본의 수출 규제 피해를 줄이고자 각종 기술 지원단을 구성해 국내 산업계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술개발을 지원한다고 해도 규제개선과 세제 조정 등 정책 혁신에 나서지 않으면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구 현장에서 세계적 수준의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가들은 이번 한·일 무역 갈등의 위기를 넘어 장기적으로 한국 소재·부품 산업계의 안전망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참석자/
권오경 한양대 석학교수
하성규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이정호 한양대 재료화학공학과 교수
사회 = 박준희 사회부기자


지난 16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의 한양대 IT-BT관의 한 연구실에 한양대 기술자립화지원단에 참여하고 있는 4명의 교수가 모여 앉았다.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인 권오경 한양대 석학교수를 비롯해 복합 소재 분야의 세계적 학자인 하성규 기계공학부 교수, 톰슨로이터의 ‘세계 상위 1% 연구자’에 선정된 선양국 에너지공학과 교수, 태양광 및 2차 전지를 연구하는 이정호 재료화학공학과 교수 등 각 분야에서 모두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었다. 연구실 문을 열자 대형 스크린에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가능성이 있는 품목 1100여 개를 분석하는 자료가 띄워져 있었다. 한양대 지원단은 자료 분석을 통해 일본의 규제에 취약한 분야를 선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단기간에 일본의 수출 규제 피해를 막아내거나 소재·부품 국산화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사회자(이하 사) = 일본 정부의 추가 규제 가능성이 있는 소재나 부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다고 예상되는지.

△하성규(이하 하) = 가장 우려되는 게 ‘카본섬유’(탄소섬유)다. 카본섬유가 직접적으로 우리나라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게 자동차다. 특히 수소전기차는 일본과 한국이 거의 대등한 상태에서 경쟁하고 있는데 연료에 해당하는 수소를 담는 용기가 있고 그 용기 재료가 바로 카본섬유다. 이걸 많은 부분 일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아마도 일본이 차세대 자동차 개발을 하면서 전략적으로 수출을 금지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카본섬유를 만들지만 (수소전기차 용도로는) 물성치(재료들을 용도에 맞게 사용하기 위한 고유한 특성)가 조금 부족하다.

―사 = 일본의 3개 품목 수출 규제로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전자가 직격탄을 맞았는데, 카본섬유를 규제하면 2위 기업인 현대기아자동차가 또 직격탄을 맞나.

△하 = 맞다. 수소차 분야는 일본과 한국이 글로벌 톱 리더다. 그러나 일본이 전략적으로 카본섬유를 수출 금지하겠다고 하면 한국이 뒤처질 것이다. 아무리 수소차 기술이 좋아도 수소 용기가 없으면 어렵다. 빨리 대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사 = 카본섬유 외에 또 우려되는 품목은 어떤 것들이 있나.

△권오경(이하 권) = 여기(일본 규제 가능성 품목표)를 보면 한두 개를 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기, 원자력, 화학무기, 첨단소재, 소재가공, 전자분야, 전자컴퓨터, 해양 관련, 추진체 장치 등 15가지 분류가 있다. 다 들어가면 1100여 가지가 될 것이다. 하나씩 다 분석을 해서 우리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전문가들을 모셔 심층 진단을 해야 한다. 모든 것에 다 대응할 수는 없다. 당장 대응 가능하면서 우리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양대 지원단 300여 명의 교수가 모여 본인 분야 분석에 나섰다. 또 우리 동문은 산업체에 기여를 많이 해 온 만큼 그런 분들 중에 이쪽 분야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은퇴자들을 포함해서 지원단 활동을 할 것이다.

―사 = 일본의 이번 수출 규제와 관계없이, 국내 소재·부품 중 외국 정부나 기관의 규제에 취약한 것들이 있다면.

△선양국(이하 선) = 각 소재 산업이 기술만 갖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일본도 일본이지만 앞으로 우리의 중요한 상대는 중국이다. 부품, 상품 등의 품목이 서로 오버랩 되는 부분 많으니 이번 기회에 중국까지 고려해 진짜 세계적인 소재·부품 기업이 나올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배터리 파우치 외장재(카본섬유)는 진짜 아무도 못 한다. 다른 부분도 굉장히 많다. 일본을 극복하고 중국을 커버해서 큰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 싶다. 또 지금 한·일 간 국면을 보고 중국이 나설 수도 있다. 또 가격 경쟁력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교수들이 질만 좋으면 쓴다고 생각하는데, 가격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사 = 정부나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소재·부품 국산화에 대해 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안일한 대응을 해왔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선 = 우리나라 경제는 훌륭하지만, 일본 기술 개발 역사 및 연구자들과 비교가 안 된다. 일본이 굉장한 나라다. 한국은 1960∼1970년대 경제 성장을 하면서 제품을 빨리 만들어서 판매하고 먹고 살았다. 그러나 소재는 다르다. 일본에서는 기술자들이 소재 연구 10년 했다고 하면 햇병아리로 생각하고, 20년 정도 했다고 하면 ‘아, 조금 하는구나’라고 여긴다. 그리고 30년 정도 일을 해야 전문가로 인정해준다. 우리나라에 소재 분야에 30년 일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부품까지 개발하는 것은 작은 나라에서는 힘들다. 이제는 대기업들이 소재 쪽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다 할 수는 없다.

△하 = 장기적으로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것을 동시다발적으로 해야 한다는 데 우리 학계에서도 공감해야 한다. 이번 국면이 전화위복이라고도 생각한다.

△이정호(이하 이) = 덧붙이자면, 나도 반도체 업계에서 10년 있다가 왔는데, 공정이나 장비에서 국산화한 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반도체 공정을 크게 2개로 ‘화이트’ 공정이 있고 ‘옐로’ 공정이 있다. ‘옐로’가 뭐냐면 광(빛)에 민감한 부분을 약한 불빛으로 처리하는 부분이다. 화이트 공정은 우리가 잘하는 것으로 증착·진공 장비들은 국산화가 잘 돼 있다. 그러나 옐로 쪽이 굉장히 취약하다. 2가지 핵심 학문이 필요한데 하나가 굉장히 고도의 화학기술, 또 하나는 광학기술이다. 이 두 부분이 우리 기업들이 대처하기 힘든 분야다. 그동안 우리는 빨리 수익을 내야 하니까 상대적으로 대처하기 쉬운 화이트 쪽에 중소·중견기업이 많이 들어갔다. 그러나 결국 일본이 잘하는 옐로 쪽에 대처하지 못하다 이번에 일본이 잘하는 포토레지스트(반도체 웨이퍼에 회로를 인쇄하는 노광 공정에 쓰이는 품목)로 규제를 당한 것이다. 정부가 이번에 소재·부품·장비 등을 ‘소부장’이라고 하는데 이중 가장 어려운 것이 소재다. 화학기술이 고도로 요구될수록 일본의 비중이 높다. 우리나라 기업들 입장에서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는 데다 국내 시장이 작아 기업들이 사업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옐로를 하겠다’고 하면 ‘정신 나간 것 아냐’라는 소리나 들었다.

지난 16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IT-BT관 연구실에서 선양국(왼쪽부터)·권오경·하성규·이정호 한양대 교수 등이 한·일 무역 마찰 극복 방안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IT-BT관 연구실에서 선양국(왼쪽부터)·권오경·하성규·이정호 한양대 교수 등이 한·일 무역 마찰 극복 방안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 = 최근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소재 국산화’가 단시일에 가능하다고 전망하는지. 혹은 어느 정도 시일이 필요하다고 전망하는지.

△이 = 돈만 지원하면 금방 뭔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일본도 자원을 지속적으로 투자해 왔지만, 우리랑 격차가 너무 크다.

△권 = 독일에서 ‘머크’(Merck)라는 회사가 최초에 액정 개발을 시작했는데 어디에 쓸지도 모르고 1930년대에 개발을 시작했다. 그것이 상용화된 것은 1980년대 액정 디스플레이가 나오면서 된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는 그렇게 기다릴 만한 기업이 없다. 머크는 400년 된 기업이다. 한국에서 중소·중견 기업이 소재·부품을 해야 하는데 그 사람들한테 상속을 못 하도록 법으로 막아버리면 어떻게 400년을 하겠나. 독일은 회사 주식이 아들에게 넘어가면 세금이 없다. 그 주식을 넘겨받아 현금화할 때 세금이 발생하는 식이다. 우리도 그런 식으로 중소·중견기업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수백 년 된 독일의 ‘히든 챔피언’은 세제 혜택을 받아 큰 것이다. 한국도 소재·부품 등을 키우기 위해서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을 바꿔야 한다.

△선 = 나도 연구하면서 기술이전을 상당히 많이 했다. 옛날에 기술 이전에 따른 수익은 ‘택스 프리’였지만 지금은 근로소득으로 잡힌다. 기술이전 소득이 상시적으로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근로소득으로 잡아 놨다. 이런 얘기가 왜 중요한가 하면, 대학 교수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센티브가 있어야 아이디어를 내서 열심히 연구할 텐데, 그걸 원천적으로 막아놓고 기술 개발을 하라니…. 우리나라에서 기술 수출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소재를 만들어야 하는데, 기술이전 수입에 대해 왜 세금을 떼는가. 그런 것도 큰 장벽이다.

△이 = 우리나라는 연구에 몰입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 모티베이션(동기)이 전혀 없다. 만일 기술 이전을 통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하는 시범적인 사례가 한두 건 나온다면 자극이 될 것이다. 중소기업의 임금체계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비정상적으로 낮아서 학계가 이를 보완해야 한다. 일론 머스크까지 안 가더라도 이공계 출신이 기술로 엄청난 부자가 된 사례가 있어야 한다.

정리=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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