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중국의 각종 경제 지표들이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8일 베이징 왕징 지역의 한 아울렛 1층 의류 매장에서 고객들이 ‘가게 정리 할인 세일’을 내세운 물건들을 둘러보고 있다.
- 무역전쟁 장기화와 중국 경제
“무역전쟁으로 소비심리 악화 1년前부터 매월 17억원 손실” 베이징 동북부 대형마트 도산
산업생산 17년來 최저 찍고 도시실업률은 2년來 최고치 올 성장률 6%대조차 불투명
빚더미 경제구조 1차 원인에 美의 고율관세 내상도 깊어가 일각선 “무역전쟁 견딜 수준”
지난 18일 중국 베이징(北京) 동북부 왕징(望京) 지역 한 대형 아웃렛. 1층에 가보니 의류와 신발 등을 파는 가게 곳곳에 ‘폐점 왕창 세일(撤店狂)’‘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판다(一件不留)’ ‘반값(半價)’ 등의 팻말이 붙어 있었다. 손님들은 물건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중저가 브랜드 운동화를 파는 가게에서는 400위안(약 6만8000원)짜리 운동화가 25% 가격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가게 점원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3층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이 지난달에 도산하면서 이달 말까지 여기 가게들도 다 비워줘야 해 물건을 싸게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3층으로 가보니 운영 전략상의 이유로 7월 31일 슈퍼마켓이 모두 비워졌다는 공고문만 남긴 채 대형 매장이 썰렁하게 비어 있었다.
“1년 전부터 매월 1000만 위안(약 17억 원)의 영업 손실이 나는 상황을 버틸 수 없어 문을 닫았어요. 요즘 젊은층과 40대들이 타오바오(淘寶)나 징둥(京東) 같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를 더 많이 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이 약해졌죠. 지난해부터 미국과 무역전쟁이 붙으면서 소비자들의 심리가 안 좋아지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입구에서 빈 매장을 지키고 있는 관리인에게 도산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반값 옷을 고르고 있는 리(李)모(여·35) 씨에게 무역전쟁을 생활 속에서 실감하고 있는지 물었다. “동네 마트에서 채소와 과일 등을 살 때는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젊은 층은 화장품이나 전자제품 등을 해외 직구로 많이 사는데, 최근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넘어서면서 가격 부담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심리가 위축되니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은 이런 곳에서 많이 삽니다.”
지난해 7월 미국과 중국이 상대국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포문을 연 무역전쟁이 1년을 넘어 장기화하면서 중국 경제에 가해진 내상(內傷)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소비와 생산, 투자, 일자리, 수출, 물가 등 주요 경제 지표 곳곳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먼저 소비심리 위축으로 소비 둔화세가 커졌다. 중국 경제의 엔진으로 부상한 내수 시장의 활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은 올 7월 작년 동월보다 7.6% 증가에 그쳤다. 지난 6월 9.8%와 시장 예상치 8.6%에 미치지 못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내수 비중은 2011년 50% 미만에서 2018년 76%까지 치솟았다. 서비스업 등 내수 비중 증가와 무역전쟁 격화는 제조업 투자 감소를 낳고 이는 소득성장 둔화, 소비심리 약화로 이어졌다. 노동자 임금의 상당 부분이 아직 제조업과 수출 섹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실질소득 감소로 중국 소비자들은 자동차, 부동산과 서비스 구매를 억제하고 있다. 지난해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한 자동차 판매는 올해도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다. BMW 등 고급 차들도 재고를 안 쌓으려고 치열한 할인판매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자리도 타격을 받고 있다. 7월 기준 도시 실업률은 전달보다 0.2%포인트 오른 5.3%로 집계돼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제학자들은 통상 중국의 실제 실업률은 통계치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탄탄한 경제를 중국 공산당 유지의 기초로 여기는 중국 지도자들에게 실업 문제는 최우선 해결 과제”라고 전했다. 중국국제금융공사(CICC)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중국 공업 분야에서 500만 개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 중 180만∼190만 개는 미·중 무역전쟁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계 은행 베이징 분행의 한 직원은 20일 “같이 근무하는 중국 직원들이 전에는 연봉을 더 많이 주는 직장으로 많이 옮겼는데, 지금은 고용시장 분위기가 안 좋으니 거의 이동이 없다”며 “이동을 해도 더 좋은 급여를 주는 곳으로 가지는 못하고 수평 이동을 많이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14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7월 산업생산은 전년 동월 대비 4.8% 증가에 그쳤다. 전달의 6.3%와 시장 전망치 6.0%에 크게 미달했고, 2002년 이후 1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 1∼7월 고정자산투자 증가율도 5.7%에 그쳐 연중 최저 수준을 보였다. 중국의 제조업 및 수출 섹터가 무역전쟁 여파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특히 컴퓨터와 통신장비 분야가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일자리도 가장 많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무역전쟁이 길어지면서 미국과 거래하는 중국 수출입업자들의 대응 양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장쑤(江蘇)성 롄윈강(連雲港)에서 속옷 사업을 하는 레이총루이는 매출액의 40%가 미국 수출에서 나온다. 미국의 추가관세 부과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내의 수출 가격을 10% 정도 낮춰 팔면서 현재의 생산량을 유지하고 있다. 레이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생산 조절 계획을 세웠다. 그는 “무역전쟁이 갑자기 또는 조기에 끝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양국 간 갈등으로 인한 불안정한 상황이 최소 10년 이상 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상하이(上海)에 기반을 둔 체리 수입업자 루카스 류는 중국의 보복 관세 부과 영향으로 미국에서 수입하는 체리 값이 50%나 올라 울상을 짓고 있다. 미국에서 수입하는 체리 수입량을 줄이긴 했지만, 완전히 거래를 끊지는 않았다. 대신 캐나다와 터키, 중앙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수입 부족분을 채우고 있다. 류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과 연결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간소한 통관 절차, 미국에 비해 저렴한 물류 및 저장비 등의 장점이 있어 좋은 대안이 되고 있다”고 했다.
중국 내 급격한 인건비 상승과 미국의 관세 부담을 견디지 못해 공장 문을 닫는 다국적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3월 일본의 소니 모바일이 베이징 공장 문을 닫았다. 삼성전자도 중국 내 마지막 휴대전화 생산 거점인 광둥(廣東)성 후이저우(惠州) 공장을 곧 폐쇄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대표적 컴퓨터 제조업체인 휴렛팩커드(HP)와 델 역시 중국에서 만들던 노트북 생산의 30%를 동남아 등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최근 자체 조사 결과,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로 글로벌 기업 50개 이상이 생산 거점을 중국 밖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거나 이전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생산 및 수요 둔화 속에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중국의 7월 PPI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0.3% 낮아져 2016년 8월 이후 3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PPI 상승률의 마이너스 전환은 통상 디플레이션의 전조로 해석된다.
경제 지표가 악화하면서 올 하반기 중국의 성장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딩솽(丁爽) 스탠다드차타드 이코노미스트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경제 지표들은 이전 경기 부양책으로는 막을 수 없는 하방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중국 국가통계국도 최근 “중국 경제가 합리적 구간에서 안정적 발전(穩中有進)을 지속하고 있으나 세계 경제 성장세가 둔화하는 등 외부의 불확실성 요소가 증가하고 내부적으로는 성장 과정에서 불균형 문제가 나타나는 등 경제의 하강 압력에 직면해 있다”고 인정했다. 올 2분기 경제 성장률은 6.2%로, 1992년 이후 2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을 포함한 글로벌투자은행(IB)들은 올해 중국 성장률을 대체로 6.2%로 예상하고 있다. 하반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6%대 성장률을 사수(바오류·保六)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왕리성(王立升) 노무라은행 애널리스트는 “무엇보다 미·중 무역전쟁이 더 악화할지가 가장 큰 불확실성”이라고 말했다. 모건스탠리는 민영기업 투자 심리 및 감세 효과 약화, 무역정책 불확실성 증대 등으로 올해 4분기 중국 성장률이 6%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이 향후 4∼6개월 사이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할 경우 5.7%까지 추락할 것으로 추산됐다.
중국은 왜 성장 둔화를 겪고 있는가. 기본적으로 빚더미 위에 올려진 중국 경제 시스템과 무관치 않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경기 급락을 막기 위해 4조 위안(약 683조40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확대 정책을 쓴 결과 엄청난 부채가 쌓였다. 정부와 기업, 가계 부문의 부채 규모는 오는 2022년 GDP의 300%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됐다. 빚더미가 커질수록 적절한 경제 성장이 필요한 구조가 됐다. 성장이 둔화할수록 빚 상환 능력이 떨어지면서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커지기 때문이다. 부채 규모가 너무 커진 데다 중국 경제 안팎 요인이 악화하면서 이제 공격적 부양책을 쓰지 않으면 성장률이 6% 밑으로 추락할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경제 둔화 이유에 대해 “무역전쟁의 영향 외에도 중국 경제 자체의 구조적 문제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인구 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 유실된 인프라 건설 등과 같은 쉬운 투자 기회가 줄어들고,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정책 등이 경제 활력을 낮추면서 성장률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경제가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무역전쟁의 충격을 흡수하면서 그런대로 잘 버티고 있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한 중국 경제 전문가는 “중국은 국내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내수로 버틸 힘이 크다”며 “관세 부과 충격도 생각보다 크지 않아 감내할 정도의 수준이고, 다른 국가들 시장으로 거래를 더 확대해 미국에서 받은 충격을 상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최근 중국 내에서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말고 버티자는 강경론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무역전쟁으로 상처를 입고는 있지만,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장기적 국익과 존엄을 수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류를 이루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치전훙(戚振宏) 중국국제문제연구원장은 최근 열린 한 토론회에서 “미국이 촉발한 무역 갈등은 자신과 남을 해치고, 결국 자국의 발등을 찍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만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미·중 갈등이 극적으로 완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전 중국 런민(人民)은행장은 최근 한 포럼에서 “미국이 무역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와 군사, 가치관, 과학기술 등 여러 측면에서 고려하면서 무역전쟁이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UBS증권의 왕타오(汪濤) 중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에서 “근래 미·중 통상 마찰이 한층 치열해지고 중국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경한 자세를 보이면서 단기간에 타협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미국 경제와 증시, 대통령 선거라는 변수가 상황을 돌변시킬 수는 있지만, 미·중 쌍방이 내년 미국 대선 이전에 협상을 타결할 가능성은 낮다”고 관측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도 세계 패권 1위 국가와 대적하는 데 객관적으로 힘에 부치기 때문에 무작정 강경론만 밀어붙일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미국이 협상에서 일방적인 요구를 한다면 중국도 버틸 수밖에 없지만, 타협의 여지를 둔다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협상 타결에 나설 가능성이 없지 않다. 쉽게 말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체면’을 세워준다면 협상 타결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박금철 주중 한국대사관 재경관은 “중국은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완화적 통화정책을 통해 무역전쟁의 충격을 완화하며 대외적으로는 강경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물밑에서는 미국과 타협의 여지가 있는지 계속 저울질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