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김기호 금박장 보유자
고조부, 철종 때 내수사 근무
증조부는 국장도감의궤 장인
금 얇게 만들어 직물에 찍어
정교한 문양서 광채 살아나
나무이용 목공기술 뛰어나야
대기업서 로봇설계하다 입문
동아시아 복식·문양사 공부도
넥타이 등 접목, 대중화 노력
“5대째 가업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가지 가업에 종사하고 그 일을 후대에 고스란히 물려준 집이 흔치 않습니다. 고맙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金箔匠) 김기호(51) 보유자는 ‘가업’ 얘기부터 했다. 금박장은 얇은 금박을 이용해 직물 위에 다양한 글씨나 문양을 찍어내는 장인이다. 그 같은 가업을 조선조 철종 재위 때인 1856년 1대 김완형으로부터 시작, 2대 김원순, 3대 김경용, 4대 김덕환에 이어 김기호 보유자가 이어오고 있다.
고조인 김완형 선생은 조선 철종 때 왕실 재정을 관리하는 내수사에 근무하며 금박 제작을 지휘한 명장이며, 증조 김원순 선생은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에 장인으로 기록될 정도로 기술을 인정받았다. 이어 조부 김경용 선생은 1973년 초대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 보유자로 인정됐고, 부친 김덕환 선생은 2006년 2대 보유자가 됐다. 김기호 장인이 건강상의 이유로 명예보유자가 된 부친에 이어 지난해 11월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김 보유자는 당시 인정조사 과정에서 금박 문양 조각 기술, 바탕 옷감에 대한 이해도, 날씨에 따라 변화를 줘야 하는 금박 부착 기술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로부터 옷에 금박을 두른다는 것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의 기품과 함께 귀한 가문임을 드러내는 증표였다. 혼례복에 금박을 두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금은 예로부터 그 빛이 변하지 않아 영원한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금박은 금을 두드려 얇게 만든 것으로, 금박에 사용되는 문양들은 복과 행운을 기원하는 길상(吉祥) 문양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에 조선시대에는 혼례복, 수의 등 5례(길례, 가례, 빈례, 군례, 흉례)의 왕실예복에 금박으로 장식함으로써 왕실의 영원한 권위와 국가번영에 대한 염원을 표현했습니다.”
정교한 문양에서 찬란한 금의 광채가 살아나게 하는 금박 작업은 고도의 인내심과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금박을 만드는 과정은 나무판에 문양을 새겨 아교나 어교를 바른 뒤 문양을 넣고자 하는 위치에 찍고, 접착제가 마르기 전에 금박을 올린다. 따라서 금박장은 옷의 구성에 어울리는 문양을 고르고 배치하는 심미안과 함께 목공예 기술도 뛰어나야 하고, 섬유와 풀의 물성에 대한 지식도 풍부해야 한다. 소에서 추출하는 아교풀보다는 민어 부레로 만든 풀이 부드럽지만 탄성이 뛰어나 최고로 쳐주고 있다. 김 보유자는 30세의 늦은 나이에 금박에 입문했다.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로봇을 설계하는 직장인이었습니다. 1997년쯤 40대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부친이 협심증으로 쓰러지셨어요.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로봇 대신 100년 넘은 가업을 선택하게 됐죠. 그런데 해보니 로봇 설계나 1㎜의 만분의 1 두께인 금박과 씨름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어려서부터 보고 큰 덕분인지 금방 금박 장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금박에 입문한 지 10년이 지난 2006년 북촌에 공방을 차렸고, 2008년 가족 전시회로 ‘금박연(金箔宴)’을 연 뒤 그 제목을 공방 이름으로 쓰고 있다. 금박연은 직접 도안하고 제작한 목판과 손가락을 사용해 비단 위에 금박을 붙이는 독특한 한국 금박공예의 전통 기술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2년 북촌 공공한옥으로 이전, 하루 수십 명의 내외국인이 오가고 혹은 머무는 문화공간으로서 한국 금박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공방에서는 동갑내기 아내 박수영 씨가 ‘이수자’로서 함께 금박 작업을 하고 있다.
“저에게 금박은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옷을 입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 소망을 담는 것이 금박입니다. 저도 그 소망을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어떻게 아름다움을 표현할까 하며 문양을 새기곤 합니다.”
김 보유자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의생활이 변화하고 혼례와 같이 특별한 날만 금박 입힌 옷을 입기 때문에 주문량도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복식사와 문양사 등을 꾸준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주로 직물에만 금박을 올렸으나 요즘은 휴대전화 케이스는 물론 명함함, 넥타이, 액자 등 장신구와 생활용품에 금박을 접목하고, ‘꿈’ ‘행복’ 같은 한글 문양도 만들어 넣고 있습니다.”
글·사진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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