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일국양제(一國兩制), 즉 ‘한 국가 두 체제’의 실험장 홍콩이 혼란스럽다. 12주째 시위가 이어지면서 중국군 무력 개입설에 시달리더니 최근에는 시위 얘기를 하던 여성 2명이 흉기 공격을 당하면서 백색테러 공포와 사회적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시위대를 비방하는 중국발 계정을 정치적 선전물로 간주해 대량 삭제했고,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직원이 중국 당국에 억류되는 등 국제적 갈등도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은 1980년대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던 중국의 덩샤오핑이 영국에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와 생활양식을 50년간 보장’한다는 일국양제 방안을 제시하면서 1997년 7월, 150여 년의 식민지 역사를 청산하고 ‘중국의 홍콩(Hong Kong China)’이 됐다. 당시 홍콩인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일국양제와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라는 항인치항(港人治港), 종심권(終審權)을 포함하는 고도의 자치(高度自治)를 보장한 홍콩기본법에 기대하면서 적어도 ‘준(準)자치 홍콩’이 유지될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중국에 있어 제국주의 시대의 종언이며 대만 통일을 위한 일국양제 실험은 홍콩인들의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반환 20년이 되는 2017년 직접선거 방식을 통해 홍콩인에 의한 자치를 실현할 것이라던 중국 중앙정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홍콩의 중국화를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2014년, 79일간이나 계속된 ‘우산혁명’은 바로 홍콩기본법이 규정한 직선제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요구였다.

홍콩의 점진적 중국화가 진행되면서 홍콩의 자랑인 자유시장경제도 중국에 종속되고 국제자유무역항과 금융도시의 지위도 크게 위협받고 있으며 ‘중국의 관문’에서 광둥성의 관문으로 전락했다. 중국 자본과 인력의 대거 유입으로 시장의 독립성도 손상됐다. 홍콩기본법의 최종 해석권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에 귀속됐고 일국양제도 당초의 약속과 기대에 못 미친다. 홍콩 시민과 중국 중앙정부 간 갈등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일국양제의 개념도 2012년 말 출범한 시진핑 체제의 ‘홍콩의 중국화’ 가속 추진에 따라 새 논리로 정립됐다. 이는 2014년 6월 중국이 발표한 ‘홍콩특별행정구의 일국양제 실천’ 백서에 잘 나타나 있다. 중앙정부는 홍콩에 대한 전면적 관할권을 재확인했고, ‘양제’는 ‘일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동등한 가치가 될 수 없다면서 홍콩의 독립적 지위를 인정할 수 없음을 천명했다. ‘중국의 꿈(中國夢)’ 실현에 홍콩의 사례가 소수민족 독립 분위기 조성이나 자치권 요구에 관한 근거가 될 수 있고, 대만 통일 추진에도 부정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 조야와 홍콩 시민들은 중국의 이러한 인식으로 홍콩의 일국양제는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일국양제는 원칙을 어기면 지속적 시행이 어려운 선천적 한계가 있다. 이는 중국이 일국양제 추진에 ‘50년 불변’을 강조하고 재해석을 시도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홍콩 정부가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는 가운데 중국이 이번 시위를 ‘테러리즘’으로 규정해 ‘반(反)테러법’이나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법(駐軍法)에 따른 무력 개입까지 경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북 교류 추진이나 통일 방식 설정도 마찬가지다. 견제와 균형이 가능한 상대적 억지력이 없으면 어떠한 협상과 방식도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할 뿐이다. 상대방의 의중을 간파하는 이성적 판단과 정책 전환이 시급하고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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