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으름 예찬 /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
바쁘다는 건 노예상태라는 것
일이 아무리 즐겁고 유용해도
그땐 시간의 주인 되지 못해
꼼짝하지 않은채 모험하는 독서
아무것 안하며 뭔가 하는 걷기…
낯설지 않은 게으름의 기술들 삶
누릴수 있는 자유 되돌려줘
최근 들어 게으름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에 변화가 일고 있다. 일(Work)과 삶(Life)의 균형(Balance)을 의미하는 ‘워라밸’ 문화의 확산이 대표적이다. 많은 기업이 근로자의 ‘워라밸’을 위한 맞춤형 복지를 마련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기업으로선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다. 충분한 휴식이 일의 능률과 생산성을 높인다는 사실을 기업이 먼저 간파한 후 이뤄진 변화이니 말이다. ‘워라밸’ 확산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장도 자본주의의 첨단에 서 있는 대기업 아닌가. 그런데도 여전히 휴식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난감하게 여기는 근로자가 많다. 많은 사람이 목적이나 결과 없이 게으름을 피우는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게으름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오랫동안 지속해 온 데다, 가만히 있는 걸 힘들어하고 일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바쁘다는 말은 자신이 노예 상태에 있음을 광고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일이 아무리 즐겁고 유용하거나 필요해도, 일할 때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란 게 정의의 이유다. 아울러 저자는 오랜 세월 동안 지배계급이 주장해 온 “노동은 신성하다”는 말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지배계급이 여가를 충분히 확보하고자 지배계급을 제외한 모두가 뼈가 부서지게 일하도록 그런 논리를 만들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게으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아니라 ‘어떤 것이든 할 자유’라고 재정의하며 자신의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다양한 게으름의 기술을 소개한다. 저자는 빈둥거림, 독서, 걷기, 여행, 놀이, 낮잠, 섹스, 목욕, 청소, 요리, 세탁, 아무것도 하지 않기 등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일들을 게으름의 방식으로 진지하게 제안한다. 예를 들어 독서는 꼼짝하지 않은 채 모험하는 여가이고, 목적지를 염두에 두지 않는 걷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여가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저자는 이 같은 게으름의 방식이 우리의 무뎌진 감각을 깨우고, 우리에게 삶을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되돌려준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각종 게으름의 기술을 소개하기 위해 인용하는 영국의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산문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중세시대 일본의 승려 요시다 겐코의 산문 ‘쓰레즈레구사’, 미국의 다큐멘터리 ‘스시 장인: 지로의 꿈’,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는 읽고 보는 동안 지적 만족감까지 함께 선사한다.
저자는 게으름을 현명하게 활용할 때 비로소 삶에 깊이가 생기고 행복에 가까워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시간을 내 주변에 흩어져 있는 물웅덩이로 바라보라고 유도한다. 물웅덩이의 모양은 저마다 다양하다. 물웅덩이처럼 다양한 모양의 시간을 옮겨 다니며 순간순간을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사용해보라는 게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시간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를 줄 때 비로소 내 시간의 진정한 주인은 나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젊어서 게으름을 피우면 나이 들어 가난 때문에 고생한다고 반발할지도 모르겠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9.6%로 OECD 전체 국가 평균(11.4%)의 4배가 넘는다. 세계 어떤 나라보다 빈곤 탈출과 발전을 위해 부지런하게 노력해 온 우리나라 국민의 현주소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왔는지 진지하게 질문해야 할 때가 아닐까. 296쪽, 1만5500원.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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