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비좁아 움직이기도 곤란
딸 빨래건조대 밑서 겨우 쪽잠
바깥 쓰레기 악취 그대로 유입
초록우산재단 보증금 지원으로
작은 방 있는 12평 빌라 이주
초등학교 5, 6학년에 접어든 두 딸과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막내아들을 둔 A 씨 부부는 지난해 여름을 7∼8평 남짓한 원룸에서 났다. 비좁은 공간 탓에 찌는 듯한 더위에도 가족들은 서로 붙어 지낼 수밖에 없었다. 밤이면 잠을 자기 위해 아버지는 발을 현관 밖으로 뻗었고, 둘째 딸은 빨래 건조대 밑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 원룸에서는 이웃이 싸우는 소리, 밖에서 버린 쓰레기의 악취 등이 그대로 전달됐다. 분리된 공간이 없는 원룸에서 서로 싸우기라도 하는 날이면 온 가족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지난 23일 경기 시흥시에서 만난 A 씨 가족의 삶은 올해 초 작은 방 2개와 부엌이 딸린 12평 빌라로 옮기면서 한층 나아졌다. 어머니 A 씨는 작아도 분리된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서로 감정의 골이 생겨도 한쪽에 가서 마음을 추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려운 형편에 아이들이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려 미안하다며 눈물을 훔치는 A 씨는 꿈꾸는 주거 환경이 있냐는 질문에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보는 게 평생소원”이라며 작은 소리로 답했다.
A 씨 가족의 경우처럼 주거빈곤에 놓인 국내 아동 수는 무려 100만 명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해 올해 4월 23일 주거빈곤 아동 가구에 임대주택 및 주거비를 우선 지원할 수 있도록 주거기본법이 개정됐다. 아동복지 단체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2016년부터 주거빈곤에 처한 아동을 위해 주거기본법상 ‘주거지원 필요계층’에 ‘아동’이 포함되도록 하는 활동을 펼쳐 온 결실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지역의 ‘아동옹호센터’를 중심으로 A 씨 가족과 같이 주거빈곤 상태에 놓인 아동을 지원하는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A 씨 가족처럼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는 가구를 위해 재단은 지역 아동센터와 연계해 연구와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주거빈곤 가정에 월세 보증금을 지원하고, 이주를 위해 도움을 주고 있는데, A 씨 가족은 재단 측에서 발견해 원룸에서 이주하도록 도움을 준 사례다. 지자체가 제공하는 주거 보조금 관련 정보를 알려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아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주거환경의 중요성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날 경기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재단이 학교 측과 함께 마련한 ‘내가 그린 우리 마을’ 행사가 열렸다. ‘도심형 주거빈곤’ 상태에 놓인 아동이 많은 이 학교에서는 10평이 채 되지 않는 원룸에서 생활하는 인구 과밀형 주거 빈곤에 놓인 경우가 많은 편이다. 이 아이들이 살고 싶은 집의 모습을 그려보도록 놀이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바람을 수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날 한 아이는 살고 싶은 집의 단면에 ‘방 방’이라는 글을 써넣었다. ‘방 속의 방’이라는 뜻으로 분리된 공간에 있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관계자는 “아동 주거빈곤 가구가 공공 임대주택에 입주할 우선권을 갖게 하는 등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흥=정선형 기자 linear@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