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우리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체결한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처가 제1 목적이었다. 일본에 대한 선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북한이 올 들어 9차례 미사일·방사포 발사를 강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밉다고 지소미아를 파기하니 안보 자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츨 절차 간소화 국가) 한국 제외에 대해 우리도 일본을 우리 리스트에서 제외해 비례적 대응은 된 셈인데, 국방부 장관도 “전략적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한 지소미아를 굳이 파기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가 일본에 대한 분노든, 국내정치적 고려든 이번 결정으로 한국 외교는 심각한 후폭풍을 맞게 됐다.
첫째, 일본의 경제보복 외교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일본이 역사문제를 경제문제로 만든 것은 국제사회에서 눈총을 받는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경제문제를 안보문제로 만들어 버렸다. 특히 일본을 제어해 줘야 할 미국이 우리에게 강한 불만을 갖게 된 만큼 일본은 이제 눈치 볼 필요 없이 추가 보복카드를 휘두를 수 있게 됐다. 우리 기업 입장에선 한·일 갈등이 단기간에 해결될 전망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화이트리스트 규제가 본격화될 위험성, 금융규제 등 새로운 보복카드가 나올 위험성이 커졌기 때문에 엄청난 어려움을 안게 됐다. 일본이 우리 대화 제의에 대해 “단순한 거부를 넘어 우리의 국가적 자존심까지 훼손할 정도의 무시로 일관”했다는데 어쩌면 교묘하게 덫을 놓은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둘째, 앞으로 대미 외교가 험난해지게 됐다. 지소미아 파기 결정 후 미국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직접 “실망”을 표시한 데 이어 국무부와 국방부가 “실망” “강한 우려”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에 부정적 영향” “문재인 정부의 심각한 오해” 등 동맹국 사이에 좀처럼 쓰지 않는 강한 표현의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지 않아도 한·미 간에는 북한의 ‘통미봉남’ 책동과 한국 무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경시에도 한·미 동맹을 굳건히 유지하는 과제, 방위비 분담 대폭 증액 요구 등 난제가 산적해 있는데 우리 스스로 한·미 관계에 자충수를 둔 것이다.
셋째, 한·미, 한·미·일 결속이 이완된 이상 너도나도 우리를 흔들려 할 것이다. 지소미아 파기를 발표하자 북한이 ‘초대형 방사포 발사’를 들고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겨냥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별일 아니라고 면죄부를 주는 상황에서 지소미아 파기로 한·미·일 안보협력이 약화하고 한국의 고립이 심화할 테니 북한은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중국은 사드 보복은 풀지 않으면서 러시아와 함께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 진입을 반복하는 등 우리에 대한 압박을 늘려갈 것이다. 또 지소미아 파기는 중국에 대한 3불 약속과 비교되면서 미 조야에서 우리 정부의 전략적 지향점에 대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한국을 동맹국으로 신뢰할 수 있냐는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일본은 이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안보 환경은 정말 녹록지 않다. 냉전 종식 후 잠깐 안보 걱정을 내려놓았던 좋은 시절이 끝나고 불리한 뉴노멀이 현실이 되고 있다. 북한의 핵보유, 중국의 공세적 전환, 일본의 군사 대국화, 그리고 지역 안정자로서 미국의 역할 축소 등이다. 이럴 때일수록 친구를 늘리고 적은 줄이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하나같이 나쁘게 만드는 전략 부재 외교가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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