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드슨 강의 풍광과 악취가 진동하는 지하철을 공유해도 브루클린은 절대로 뉴욕이 될 수 없다. 브루클린에 사는 군상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뉴욕의 그들처럼 품위 있는 사랑도, 용기 있는 커밍아웃도, 혹은 천박해 보이지 않는 수준의 생계유지도 할 수 없다. 이들에게 뉴욕이란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가능하다고 믿게 하는 허상이자 신기루 같은 공간이다. 울리히 에델 감독의 1989년 작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1954년을 배경으로 뉴욕의 찌꺼기, 혹은 뉴욕에서 찌꺼기로도 살아갈 수 없는 브루클린 하층민들의 인생을 비추는 영화다.
브루클린의 한 공장에서는 파업이 한창이다. 사실상 이 파업에 모든 동네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 해리(스티븐 랭 분)는 노조 선전부장이라는 직함을 받고는 신이 나서 조합 청년들 위에 군림하고, 노조의 공금을 탕진하며 재미를 본다. 한편 동네에는 온갖 나쁜 짓을 골라 하고 다니는 세 명의 골칫거리가 있는데 거리의 여자 트랄라(제니퍼 제이슨 리 분)는 이들과 공모해 바에서 유혹한 군인의 지갑을 터는 일로 생계를 이어간다. 게이 청년인 조젯(알렉시스 아퀘트 분)은 해리를 짝사랑하지만 선뜻 고백하지 못한다.

3일 동안의 꿈 같은 밀회를 끝내고 브루클린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은 변한 것 없이 그대로였다. 동네 바에서는 서로 몸을 팔기 위해 남자들을 두고 싸우는 창녀들이 트랄라를 째려보고 있으며 남자들은 이 창녀들과 트랄라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있다. 싸구려 위스키 냄새가 진동하는 바의 구석에서 트랄라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가슴을 보라”며 옷을 벗어젖힌다. 흥분하는 남자들 틈에서 트랄라의 옷이 찢겨 나가고 결국 한 무더기의 남자들이 트랄라의 가냘픈 몸을 둘러업고 공터로 끌고 나간다. 술과 눈물로 범벅이 된 트랄라의 얼굴을 수십 명의 남자가 짓이기며 강간하기 시작한다. 한편 노조의 공금을 탕진한 것이 탄로 난 해리는 해고당하고 레지나에게도 버림을 받는다. 절망한 해리는 이웃의 아들을 유혹하려다가 동네남자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하고 자살한다. 동네의 다른 언저리에서 실신해 있던 트랄라는 그를 짝사랑하는 소년 스푸크에게 발견된다. 스푸크는 만신창이가 된 트랄라의 품에서 통곡한다.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휴버트 셀비 주니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1964년 소설 출간 당시엔 집단강간과 동성애 묘사 등을 이유로 영국에서는 음란죄로 기소되기도 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전후시대를 지나는 중소도시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이다. 대도시에서나 가능한 소비주의와 문명적 향락 그리고 인간애의 위로가 부재한 중소도시, 예컨대 브루클린에 남은 것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생존하는 데 필요한 야만성뿐이다. 전쟁의 상흔을 입고 돌아온 군인들은 브루클린에서 정액과 주먹질을 쏟아내고는 뉴욕으로 향한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절망과 가난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그 누군가가 향했을 최후의 선택지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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