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불광천은 한강에 닿는 5㎞ 남짓한 길이 있어 사계절 내내 걷기에 좋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서울 불광천은 한강에 닿는 5㎞ 남짓한 길이 있어 사계절 내내 걷기에 좋다. 신창섭 기자 bluesky@

(7) 사계절 걷기 좋은 불광천

서울 삼각산 비봉에서 발원
연서·연신·까치내라고 불려
모습 드러내는 응암역 근처
복개천 음악분수 보며 사색

홍제천과 합류 지점 지나자
물길 급해지며 한강에 닿아
한강은 다시 서해로 흐르고

고여도, 흘러도 아름다운 물
우리도 그처럼 깊은 맛 낼까


서울에는 한강에 닿는 하천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길이 꽤 있다. 내륙지방에서 태어나 성장한 내게는 작은 물길이 큰 강에 닿고, 강이 드넓은 바다에 닿는 풍경은 오롯이 상상 속에만 있었다. 물길은 재잘거리며 구릉지를 지나 어딘가로 마냥 흘러갔을 뿐이다. 한강에 닿는 5㎞ 남짓한 불광천 길은 사계절 내내 걷기에 좋다. 물길 옆 낮은 길은 여인의 몸속 산도(産道)처럼 생명의 기운을 풍긴다. 그 맛에 취해 연이틀 불광천을 찾았다. 가끔 나는 애착이 느껴지는 물건을 두 개씩 살 때가 있는데, 불광천을 연달아 걸을 때의 심정도 그와 비슷했다. 처음엔 물길을 거스르며 걸었고, 다음엔 물길을 따라 걸었다.

처음 가서 제대로 걷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를 때였다. 앞뒤 맥락 없이 헤르만 헤세가 쓴 글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내 인생을 제삼자의 눈으로 돌아보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게르트루트)

곧 하천이라는 운명이 끝날 물길 앞에 서자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의 첫 문장이 떠올랐던 것 같다. 그 첫 문장은 다음 문장들과 연결된다. “하지만 내 인생은 초라하지도 형편없지도 않았다. 외적 운명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내게도 닥친다. 이는 피할 수 없으며 신이 내린 운명이다. 하지만 내적 운명은 나 스스로 만든 작품이다. 그 쓴맛과 단맛을 모두 맛보며, 책임을 오로지 나 홀로 지고 가려 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같은 자리에 섰다면, 불광천을 곡물이 가득 담긴 긴 자루로 읽었을지도 모른다. 식물학자라면 물길을 끼고 사는 식물들의 분포도를 떠올렸을 수도 있고, 도시 생태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지구를 위해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누가 되었든 물길이 주는 교훈은 인생 전반을 아우르고, 특히 남아 있는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인근 불광사에서 이름을 따온 불광천은 연서내, 연신내, 까치내라고도 불린다. 거사(인조반정)에 참여하기로 했던 무신 이서(李曙)가 약속 장소인 이곳에 늦게 도착해 연서천(延曙川), 능양군(훗날 인조)이 이서를 맞이해 영서천(迎曙川)이라고도 불렸던 곳을 걷고 있자니 세간에 이름을 남긴다는 의미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내가 어느 해의 세 계절 동안 걸었던 개천 길이 떠오른다. 눈이 쌓여 발목이 푹푹 빠질 때도 나는 그 길을 걸었고, 봄이 왔을 때도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을 넘게 걸어 목적지에 도착한 내 몸은 언제나 날씨와 상관없이 땀에 푹 젖어 있었다. 그때 나는 대체의학으로 아픈 몸을 치료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가서 도움을 받던 사람은 한의학을 공부한 종교인이었다. 나는 그를 문단의 선배로부터 소개받았지만 오랫동안 찾아가지 않고 있다가 현대의학도 도움이 되지 않던 때에 이르러 ‘한번 가보기나 하자’며 움직인 첫 길부터 헤매다 그 하천을 따라 걷게 된 거였다. 기대하지 않고 찾아갔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같이 치료받던 사람 중에는 법조계의 거물도 있었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도 있었다. “식품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며 우리 산천에서 나는 곡식과 열매로 환을 만들어 치료제로 쓰던 그 종교인은, 어느 날 불법 의료행위로 경찰에 연행됐다. 수입금이 전액 공익을 위해 쓰이고 있었지만, 문제가 제기되자마자 일체의 관용이라곤 없었다. 비교적 조용히 인지도를 쌓아가던 그 사람은 뉴스마다 떠들썩하게 등장한 뒤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순례길과도 같았던 나의 걷기도 끝났다.

음악분수도 불광천의 맛을 더해준다. 물길을 거스르며 걷다가 복개천 근처에 이르러 보게 되는 음악분수는 잘 늙는 것이 화두인 내게 갈채를 보내는 듯하다. 저녁 무렵, 불광천이 모습을 드러내는 응암역 근처에서 걷기 시작하는 것도 좋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당차게 빛을 발산하는 분수를 본 뒤 한강까지 걸어갈 수도 있다. 어디에서 시작하든 불광천에서 얻는 정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나는 얼마 전까지도 인위적인 아름다움이나 풍경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에게서 작은 즐거움을 다 제거해 버리면 삶이 암초에 부딪힐 수도 있음을 알았다. 극도로 절제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느끼는 얼음장보다 차가운 이성이라는 것이 사실은 지독한 인색함을 가리기 위한 베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어쨌든 나는 금욕을 강요한 장 칼뱅이 살았던 시대로부터 먼 21세기를 살고 있는 평범한 도시 시민이 아닌가.

삼각산 비봉에서 발원한 불광천은 인근에서 내려온 홍제천과 합류한다. 오·폐수로 가득하던 불광천을 지금처럼 사람이 많이 찾는 명소로 변화시킨 것은 ‘2002년 월드컵’의 월드컵경기장이다. 이곳을 지나자마자 물길은 급해지며 한강에 닿고, 한강은 서해를 향해 흐르다 마지막에 행주강과 합류해 바다에 닿는다. 한강이 바다에 닿는 지점의 아름다운 노을을 여러 번 봤지만, 물이 흘러가는 풍경은 어디서든 아름답다. 세 번 가본 중국에서도 나를 사로잡았던 풍경은 물길이 인간의 삶과 겹쳐지는 풍경이었다. 물길 옆에서 살찐 아이를 안고 서 있던 깡마른 노파와 헐벗은 것이나 다름없던 뱃사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떤 목적으로 가뒀든 물은 고여도 아름답고, 흘러도 아름답다. 썩어가는 물도 주변 풍경을 품는 한 더없이 그윽해 보인다. 인간의 몸도 물이 모인 곳이니, 그처럼 깊은 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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