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여행하고 매일 이사합니다’

프랑스에서 각각 구급대원과 요리사로 일하는 젊고 가난한 연인. 듣기에 낭만적이지만, ‘흙수저’ 젊은이들이 힘들기는 프랑스도 비슷한 모양이다. 프랑스 젊은 직장인들도 메트로, 불로, 도도(Metro, Boulot, Dodo) 곧 지하철, 직장, 잠이라는 단 세 마디로 요약할 만큼 단조롭고 힘든 일상을 지낸다고 한다. 이 연인은 ‘번아웃’ 진단을 받았어도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돈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집이었다. 파리에서 남부의 작은 도시로 옮겼지만, 집세는 여전히 지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한 달이라도 벌지 않으면 집에서 쫓겨나거나 굶는 상태가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래서 직장에서 그 어떤 모독과 부당함도 웃으며 넘겨야 하는 일상….

연인의 탈출구는? 700만 원짜리 중고 밴을 사서 집으로 삼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유럽 전역을 여행하는 ‘밴 라이프’(Van life)였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파리로 요리 유학을 감행했고 “얼른 돈 벌어 사람들 앞에 당당해지고 싶어” 돈에 집착했던 한국인 여성 하지희 씨. 결국 번아웃에 몰린 그녀는 자립심이 강한 프랑스인 남자 친구 사무엘 주드와 ‘밴 라이프’를 결심했고, 2년여의 경험을 정리해 ‘가끔 여행하고 매일 이사합니다’(웨일북)를 최근 출간했다.

20평 아파트에서 2평짜지 밴 생활로의 변화. 제대로 된 캠핑카를 생각하면 안 된다. 승합차를 약간 개조한 밴에는 화장실이나 샤워시설도 없다. 5ℓ의 물로 두 사람이 가끔 샤워하고, 화장실은 공중시설이나 숲속을 이용한다. 식사도 차에서 직접 요리해 해결한다. 가끔 농사를 도와주고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받는 ‘우프’를 이용한다. 다만 더 이상 집세와 공과금을 낼 필요는 없다.

“뭐 사서 고생을 하나…” “젊고 철없으니까 할 수 있지…” 등의 반응이 예상된다. 하지만 책을 따라가다 보면 이 연인의 선택과 생활에 어느새 동조하고 부러워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들은 생활에 쫓겨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지라도, 더 이상 남들과 똑같은, 소진하는 삶을 벗어나고자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2년째 밴 라이프를 이어가는 두 연인은 돈 없이 사는 생활,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생활, 대출 없이 사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완전히 고립되거나 단절된 삶을 살지 않으면서도 두 사람은 이런 ‘밥 한 그릇이면 충분한 삶’을 살아낸다. 특별히 이런 삶의 방향을 의도하고 실천하고자 한 것이 아닌데, 자연스럽게 길이 만들어지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무엇보다 힘들고 불편해도 행복을 ‘발명’해 나가는 연인의 ‘길 위의 삶’은 “우리가 시간을 제대로 쓰면서 사는 건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과 다른 삶에 대한 호기심을 당긴다. 책에는 작은 밴에 적응하는 법 등 다양한 밴 라이프 팁도 들어 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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