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다음으로 국내에서 많이 재배되는 배 품종인 만삼길은 대개 11월 이후, 3위인 장십랑은 9월 중순 이후에 시장에 나온다. 배는 사과와 함께 한가위를 대표하는 과일이다. 추석 차례상에 올라가는 조율이시(棗栗梨枾, 대추·밤·배·감) 중 하나다. 배숙이란 한가위 절식도 있다. 배에 통후추(서너 개)를 깊숙이 박은 뒤 이것을 생강 넣은 꿀물이나 설탕물에 넣고 끓인 전통 화채다.
배는 알칼리성 식품이다. 산성 식품인 쇠고기 등 육류와 ‘찰떡궁합’이다. 육회·불고기·갈비찜 옆에 배를 썰어 두면 세 가지 면에서 이득이다. 우선 육질이 부드러워진다. 배에 단백질 분해 효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 배에 함유된 항산화 성분이 고기의 탄 부위에 생긴 벤조피렌 등 각종 발암물질의 독성을 일부 상쇄시킨다. 그리고 고기를 먹은 뒤 배를 디저트로 먹으면 소화가 잘된다. 배를 즐겨 먹으면 오래 건치(健齒)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충치 예방을 돕는 것은 석세포와 소르비톨이다. 석세포는 배를 먹을 때 오돌토돌 씹히는 작은 알갱이로 구강을 청결하게 한다. 소르비톨은 당분의 일종이나 자일리톨처럼 충치균의 먹이가 되지 않는다. ‘일거양득’(一擧兩得)이란 의미인 “배 먹고 이 닦기”란 속담의 과학적 근거다.
배는 맛이 달고 시원하다. 사과보다 신맛은 적다. 신맛이 나는 유기산 함량이 배 100g당 0.2g에 불과해서다. 즙이 많고 과육 안에 단단한 석세포가 들어 있어 씹을 때 과즙이 많이 나오는 것도 단맛을 높여준다.
영양적으론 당분·식이섬유·칼륨·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하다. 배를 먹으면 금세 힘이 솟는 것은 과당·자당 등 당분 덕분이다. 배에 든 수용성 식이섬유인 펙틴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준다. 칼륨은 체내에 쌓인 여분의 나트륨(고혈압 유발)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 혈압을 조절해준다. 아미노산의 일종인 아스파라긴산은 주독(酒毒)을 푸는 데 그만이다.
배는 알레르기를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 천식·아토피·비염 등 알레르기성 질환 환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이는 배가 아기 이유식용 과일로 자주 사용되는 이유다. 국내에서 소비량·재배면적이 해마다 줄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오는 사과·포도는 바로 씻어서 먹기 쉬운 데 반해 배는 크기가 크고 껍질째 먹기 어렵다는 것이 인기 저하의 한 요인으로 알려졌다.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가 크기가 작고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신품종 배 ‘스위트 스킨’을 개발한 것은 그래서다.
소비자가 좋은 배를 먹으려면 배 껍질은 황갈색이어야 한다, 무조건 커야 좋다 등 두 가지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신고배 등 많은 국산 배가 익으면 껍질이 황갈색을 띠어 다수 소비자가 황갈색 배가 좋은 배라고 막연하게 인식한다. 일부 품종은 다 익어도 껍질에 푸른 기가 남아 있다. 일부러 황갈색으로 바꾸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품질·맛이 떨어진다.
보관은 냉장고의 채소 칸에 하는 것이 좋다. 차가워진 배는 단맛과 청량감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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