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헤드윅(사진)’을 보고 나면, 아낌없이 불태웠다는 느낌이 찾아온다. 무대 위 배우들의 열연에 따라 관객도 노래를 부르거나 환호하며 몸짓 하느라 에너지를 꽤 쓰기 때문이다.
제작사 쇼노트가 2005년에 초연한 이 작품은 올해 시즌 12번째를 맞았다. 스테디셀러 작품인만큼 마니아 관객 층이 두터운데, 중년과 청년 층이 함께 극을 즐기며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헤드윅’은 동독 출신 트랜스젠더 가수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베를린 장벽이 있던 시절, 동독 소년 한셀 슈미츠는 미군 병사 루터를 만나 결혼을 약속한다. 동독을 벗어나 미국에서 살고 싶었던 한셀은 루터의 요청에 따라 성전환 수술을 하고 ‘헤드윅’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수술 실패로 정체불명의 살덩이 1인치가 그의 몸에 남는다.
극은 모노 드라마 속에서 락 콘서트를 펼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투명 LED 패널 영상을 통해 스토리 이해를 돕고, 라이브 카메라 중계를 활용하여 생생한 무대를 만든다. 헤드윅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밴드 앵그리 인치(Angry inch)와 함께 쇼를 펼치며 중간중간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털어 놓는다. 크로아티아 출신 유대인 이츠학이 무대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가 헤드윅의 쇼를 돕는다.
이번 시즌에서 주인공 헤드윅 역은 여섯 명이 맡았다. 오만석, 정문성, 전동석, 윤소호, 마이클리, 이규형 등이다. 왜 이렇게 많나 싶겠으나, 공연을 보면 이해를 할 수 있다. 헤드윅은 2시간 반 동안 막간 없이 진행되는 공연의 대부분을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이야기를 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할 수밖에 없다. 모두 내공 깊은 배우들이지만, 2005년 때부터 참여한 오만석의 노련함은 압권이다. 객석과 호흡하며 환호를 이끌어 내는 걸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헤드윅이 겉으론 강하고 거친 척하지만 속으론 상처받기 쉬운 영혼임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이츠학 역은 제이민, 유리아, 홍서영이 출연한다. 헤드윅을 돕는 역할이지만, 고막을 찢는 듯이 노래를 하기 때문에 가창력을 갖춰야 한다. 헤드윅의 강요로 남성 역할을 했던 이츠학이 극 막판에 드래그퀸(여장을 하는 남성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기쁨을 터트리는 대목에서 관객도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 작품은 성 정체성을 소재로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예술 본령이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할 때, 거기에 충실한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예술의 또 다른 영역인 ‘유희’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여준다. 오는 11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상연.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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