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림책은 많이 있었다. 그중에는 아주 잘 알려진 작가의 세계적인 걸작도 있다. 어떤 줄거리든 대략 비슷하게 붙일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신감이 없다면 제목에 올리기 어려운 낱말이기도 하다. 신인작가가 첫 책을 내면서 평범한 두 낱말을 엮어 제목을 지었다는 것은 둔감함 아니면 용기이다. 책을 다 읽고 생각했다.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장면 중에서 이상함을 포착해내는 일은 얼마나 힘든가. 작가는 자신의 시선에 당당한 포부가 있었던 것 같고 그럴 만하다고 여겨진다. 그림책 ‘이상한 하루’ 이야기다.
그림책은 도다리, 우럭, 복어, 주꾸미, 가리비, 게, 장어, 참다랑어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이들은 횟집 수족관에 갇혀 ㎏ 단위로 팔리는 존재들이다. 비행기 한 대가 하늘을 날고 이들 모두 한꺼번에 수족관을 탈출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엄청난 사건이 횟집 주인에게는 ‘개인사정’이라는 말로 일축된다. 물고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궁금증은 곧 풀린다. 금방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발견된 장소는 절묘하고 그 발각의 장면에 적힌 글귀들은 평화로우면서도 기이하다. 일관되게 이 이상함을 알아차리는 이들은 감각의 주파수가 같은 동물들이다. 심지어 생명이 없는 가위 같은 사물도 작품 안에서는 하나의 인물로 확실한 존재감을 지닌다. 마치 스스로 생동하는 것처럼 탈출한 물고기들의 존재를 깨닫고 긴장한다. 모르는 것은 언제나 다 안다고 자부하던 어리석은 인간뿐이다.
나비의 날갯짓과 조가비의 헤엄치는 모습이 닮았다고 생각했던 건 연수 작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비와 조가비가 친구가 되는 모습에 웃음 짓게 만든 건 처음이다. 독자가 인정할 수 있는 독특한 이상함을 만들어내려면 상당한 수위의 감도와 실력이 필요하다.
‘이상한 하루’는 자유에 대한 책이다. 더 많은 존재의 자유를 향한 필사적인 탈출을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방식으로 부추기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기이함의 언저리를 배회하는 많은 닮은 제목의 작품들과 구분되는 서사의 힘이 있다. 동백꽃과 흰동가리와 토끼가 연대할 수 있다면 우리가 못 해낼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상하지만 생각할수록 멋진 일이다. 40쪽, 1만3000원.
김지은 서울예대문예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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