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복 회장이 지난 28일 부산 서면 ㈜사라토가 본사 사무실의 세계지도 앞에서 오지탐험에 대해 설명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용복 회장이 지난 28일 부산 서면 ㈜사라토가 본사 사무실의 세계지도 앞에서 오지탐험에 대해 설명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지탐험가 도용복씨

배 채우려고 7살때부터 노동
월남전 고엽제 후유증 고생도
“돈·일서 벗어나 건강 챙기자”
1993년부터 오지여행 시작

언어 안통하고 치안도 불안
눈앞서 현지가이드 물려 죽고
무장강도 만나 목숨 잃을뻔도
“그래도 1년 중 65일은 도전”


“여행은 길 위의 움직이는 학교에 가는 것이자 발로 하는 독서입니다. 영원한 자유인을 뜻하는 ‘한국의 조르바’로 저를 부르기도 하죠.” 오지 여행 탐험가로 유명한 도용복 골프공 제조업체 ㈜사라토가 회장은 1943년 1월생이다. 한국 나이로 77세 희수(喜壽)다. 지난 28일 부산 서면의 사라토가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도 회장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지금도 1년에 65일은 꼭 오지 여행을 가며, 27년째 172개국을 돌았다고 했다. 그는 즉석에서 여행복으로 갈아입고 사진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아마존, 실크로드, 인디언 원주민 지역 등에 이어 오는 12월 16일에는 오세아니아주의 오지 섬 16곳을 가 볼 계획입니다. 세계가 넓다 보니 가 볼 곳이 너무 많아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한 번 가면 인접한 8∼12개국을 한꺼번에 돌게 되죠.” 회사명 ‘사라토가’도 인디언 유명 추장 이름에서 따왔다고 했다.

도 회장은 6·25 전쟁을 겪은 전형적인 개발 세대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10대 경제 대국으로 급성장하는 것을 지켜봤고, 자신도 이런 성장에 기여했다. 6·25 전쟁통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오로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7세 때부터 힘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두 인부와 월남전 참전을 거치며 타고난 근면성 하나로 사업가로 성공했다.

그는 40대부터 월남전 참전으로 인한 고엽제 후유증이 나타나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돈과 일에서 벗어나 건강도 챙기고 새로운 인생을 경험해봐야겠다는 생각에 199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오지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가슴 떨릴 때 떠나라, 다리 떨릴 때(나이 들어 건강이 안 좋을 때) 떠나면 늦는다’는 말을 실천하기로 했다.

그는 “고급 호텔을 돌며 패키지 여행을 하려면 오히려 한국호텔이 세계에서 제일 좋다. 오지 여행을 하면 너무나 다양한 종족 및 문화를 접하게 되고 이들과 생활하면 희열을 느낀다. 나이지리아만 해도 1억8000만 명 인구에 36개 주, 250개 종족이 있는데 문화가 모두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간의 생각이나 느낌이라는 게 대통령이나 원주민 촌부나 다 똑같은 것이어서 새로운 곳에서 사람을 만나 이틀만 지내보면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고 했다.

오지 여행의 불편함과 위험성에 대해 물어 보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물론 고생길이죠. 교통수단이 제대로 없어 말과 당나귀를 타거나 도보로 이동합니다. 잠자리도 열악하기 짝이 없지만 피곤하면 ‘꿀잠’을 자게 돼 있습니다. 현지 토종 음식도 배가 고프면 다 맛있게 먹게 돼 있죠. 현지 가이드의 도움만 받아 항상 나 혼자 다닙니다. 동료들과 여행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지만 아무리 친해도 5일만 다녀보세요. 여행지, 음식, 잠자리 등에 대한 선호도가 다 달라서 장기 여행은 힘들죠.”

그는 “소통은 어떻게 할까 의아스럽겠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현지 원주민들도 영어를 못하니 내가 영어를 못해도 되고 ‘보디랭귀지’와 ‘눈빛’으로 다 통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생명의 위협도 많이 느꼈습니다. 3년 전 아마존 오지 여행을 할 때 일본인들의 현지 가이드가 나무 위의 대형 독사에게 물려 즉사하는 것을 봤습니다. 독이 얼마나 퍼졌는지 목이 굽혀지지도 않더라고요. 무장 강도를 만나고, 모래폭풍에 휩쓸린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유서를 써놓고 여행을 다닙니다.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우는 매력을 잊지 못해 다시 배낭을 챙깁니다.”

도 회장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 내용대로 쿠바에서 헤밍웨이처럼 낚시와 사냥을 해보고 카페에서 헤밍웨이가 마셨던 칵테일(다이키리)을 마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희랍인 조르바’책을 들고 조르바처럼 돌아다니면 그 묘미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여행은 발로 확인하는 독서가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해방 이전 태어나 겪은 자신의 한국 현대사 같은 격동의 인생 역정을 소개했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그는 7세 때 6·25 전쟁 다부동 전투 방어선에서 오직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무거운 실탄을 잔뜩 지고 나르는 일을 했다. 중학교만 졸업한 뒤엔 먹고살 길을 찾아 서울이나 가까운 대도시인 대구로 가려다 부산에 왔다. 그는 “드넓은 바다를 보고 ‘먹고살 것이 많겠구나. 바로 이곳이다 싶어’ 정착했다”고 회상했다. 낮에는 부두에서 석탄을 실어주는 막노동을 했고, 밤에는 음악성을 발휘해 5∼6개의 음악다방에서 DJ 일을 했다.

도용복(왼쪽) 회장이 지난 2011년 아프리카 가봉 오지를 방문해 원주민들과 어울리고 있다.
도용복(왼쪽) 회장이 지난 2011년 아프리카 가봉 오지를 방문해 원주민들과 어울리고 있다.

부산에서 야간 고교와 전문대학 등을 졸업한 뒤 월남전 참전을 지원해 의무병으로 근무했다. 당시 함께 간 부대원 수백 명 중 순수 지원병은 자신이 유일했다고 한다. 여기서 번 돈과 가져온 물품 등을 밑천으로 전파사를 운영해 당시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TV 등을 팔며 큰돈을 벌었다. 이때부터 하루 4시간만 자는 근면성과 친화력 등을 바탕으로 사업에 성공했다.

“6·25 참전국들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살렸다면 월남전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월남전 파병자들 중 상당수가 사망했고, 살아온 사람들도 저처럼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월남전에서 번 돈은 물론, 당시 사용했던 대부분의 장비와 물품 등을 모두 가지고 올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번영의 토대가 됐죠. 경부고속도로 등을 건설하는 데도 큰 힘이 됐습니다. 시야가 참 넓은 분이라고 할 수 있죠.”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직접 한자로 명심보감에 나오는 ‘不經一事 不長一智(불경일사 불장일지)’라는 한자 문구를 써 보였다. ‘한 가지 일을 거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넓은 세상을 보고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래야 직관력, 통찰력, 예지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 회장은 대학생 등 청소년들을 이스라엘 내 270개의 키부츠(생활 공동체)에 6개월 과정으로 보내기 위한 멘토 역할도 하고 있다. “유태인들은 인구가 매우 적지만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제가 20년 전에 키부츠에서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 키부츠에 가서 공동생활을 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비단잉어는 어항, 연못, 대형 강 등 노는 곳에 따라 불과 8㎝에서 최대 120㎝까지 클 수 있다고 하잖아요. 요즘은 공부 잘하는 능력보다 세계를 보는 능력을 키워야 하고 직접 나가 봐야 합니다. 키부츠에서 외국인들과 봉사활동 및 공동 작업을 하면 외국어는 물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요. 용돈도 줍니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 살았던 청소년들이 키부츠에 갔다 온 뒤 미국 명문대학에 진학한 사례도 많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개로 키부츠에 다녀온 청소년과 부모들이 보낸 감사편지 수십 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메모광이기도 하다. 지금도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책에서 읽은 좋은 구절은 볼펜으로 일일이 수첩에 기록한다. 시간만 나면 수시로 보고 매일 밤 하루 2시간씩 운동할 때도 보면서 외운다. 이 내용들은 생활의 지침도 되지만 강연을 할 때 주요한 소재로 쓰인다고 한다. 도 회장은 인터뷰 중간중간 생활 철학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직접 한자로 일일이 써가며 설명할 정도로 동양고전과 한문에도 밝았다.

아마추어 성악가 및 피아노 연주자인 그는 요즘은 여행과 음악, 인문학에 대한 인기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요청이 쇄도해 국무총리실을 비롯한 전국 공공기관과 서울대 등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한 달에 15∼20회 정도의 강연을 다니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 교장 선생님 2000여 명을 대상으로 부산 벡스코에서 대형 강의를 한 적도 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지만 그는 젊었을 때부터 하루 4시간 취침에 낮에 잠시 조는 것으로 잠을 보충하며 시간을 아껴 쓰기에 여러 가지 활동이 가능하다고 했다. 지금도 약을 먹긴 하지만 고엽제 후유증을 이겨내면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그의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도 회장은 70대 후반의 나이에도 주한 엘살바도르 명예영사, 대구한의대 특임교수, 부경대 초빙교수, 부산문화예술진흥회 이사장, 부산재즈클럽 고문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부산=김기현 기자 ant735@munhwa.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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