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론주의 망령이 아르헨 배회
국민은 포퓰리즘 마약에 중독
긴축 거부로 경제 또 곤두박질
내년 예산 선거용 퍼주기 의혹
공짜복지 유혹 국민 거부해야
선동에 지면 아르헨보다 심각
‘엄마 찾아 3만 리’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익숙한 이탈리아 단편 동화는 소년 마르코가 대서양을 건너 아르헨티나로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렇듯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만 해도 유럽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 정도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잘사는 경제 강국이었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변곡점을 맞은 건 지난 1946년 포퓰리즘의 대명사 ‘페론주의’로 대표되는 후안 페론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다. 반(反)기업·친(親)노조·무상복지로 상징되는 페론주의 망령은 73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정치권과 국민 뇌리에 똬리처럼 틀고 앉아 아르헨티나를 지배한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장친화 개혁정책을 펼쳐오던 아르헨티나가 오는 10월 말 대통령선거를 2개월여 앞두고 국가신용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지고 돈과 외국인 투자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2019년 8월 아르헨티나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후안 페론 집권 이후 지난 70여 년간 냉·온탕을 오가던 아르헨티나 경제를 더욱 수렁으로 몰아넣은 건 2003년부터 2015년까지 연속 집권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다. 페론주의를 신봉하는 부부가 펼쳤던 좌파 포퓰리즘 정책은 당시엔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경제에는 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입히고 말았다. 이들은 공공부문이 선도해 실업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12년간 공무원 수를 230만 명에서 390만 명으로 70% 늘렸다. 일자리 4개 가운데 1개가 공무원 몫이다 보니 증원된 공무원은 하는 일 없이 ‘뇨키’로 불리는 월급도둑이 돼버렸다. 연금까지 너그럽게 베풀면서 연금 수급자는 360만 명에서 800만 명으로 두 배도 넘게 증가했다. 서민 생활 안정을 내세워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모든 학생에게 노트북을 무상 지급하는 ‘공짜 시리즈’도 난무했다.
아르헨티나 국내총생산(GDP)에서 정부 지출의 비중은 2004년 17.4%에서 2015년 37.8%로 불어났다. 재정 적자는 통화 남발로 메웠고, 드러나는 문제는 통계 조작으로 은폐했다. 급기야 2014년 7월 다시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2015년 취임한 기업인 출신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은 친시장 개혁과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지만 땀과 눈물이 수반되는 그의 긴축정책은 달콤한 공짜 복지 향수에 젖어 있던 아르헨티나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됐다. 지난 12일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선 예비선거에서 또다시 무상복지 페로니즘을 내세운 야당 후보가 압승하자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국가신용은 투기등급으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그동안 친시장 긴축정책을 펼쳐왔던 마크리 현 대통령마저 예비선거 참패 직후 복지 보조금 등 1조 원의 추가 재정지출이 수반되는 서민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고 하니, 포퓰리즘의 치명적 유혹을 떨쳐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의 대척점에 위치한 아르헨티나의 면면이 문재인 정부와 데칼코마니처럼 겹치는 데 전율마저 느껴진다. 가진 자에 대한 분노를 부추기면서 ‘대기업 때리기’가 ‘경제 정의’로 통용된다. 정치세력화한 강성 노조가 정부 정책에 무소불위 영향을 미치는 것도 판박이다. 현금 복지와 포퓰리즘은 한번 맛을 들이면 끊기 힘든 ‘마약’과도 같다. 마약 조달에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건 물론이고, 국민을 마약 의존증 환자로 전락시키며, 결국 국가도 국민도 황폐해진다.
나랏빚을 올해보다 64조 원 이상 늘린 정부의 내년 초(超)슈퍼 예산안이 2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 국회에 제출된다. 경기 진작이니 극일이니 하는 온갖 미사여구가 동원됐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현금 뿌리기식 포퓰리즘 정책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읽힌다. 표(票)를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키스한다는 게 정치의 속성이라는 걸 감안할 때, 국회 심의 과정에서 포퓰리즘과 절연해주길 바라는 건 기대난망이다. 관건은 국민이 달콤한 유혹에 ‘노(NO)’라고 외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집단적 선택’은 포퓰리즘 선동 앞에서 상당히 무력했던 게 사실이다. 손에 쥐여 주는 돈 몇 푼과 공짜복지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대한민국은 ‘한때 10대 무역대국으로 위세를 떨치다가 포퓰리즘으로 몰락한 나라’로 기억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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