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9일 홍콩인을 중국으로 보낼 수 있는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에 100만 명이 참여하면서 본격화한 홍콩 사태가 2일로 86일째를 맞았다. 2014년 9월 28일부터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79일간 이어졌던 ‘우산 혁명’을 뛰어넘어 홍콩 역사상 최장, 최대 규모의 반중(反中) 민주화 시위로 전개되고 있다. 비폭력 평화,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폭력, 총파업, 국제공항 점거, 동맹 휴업, 60㎞ 인간 띠 잇기 등 모든 투쟁 수단이 동원됐다.
홍콩 사태는 30년 전 중국 현대사 최대 비극이었던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사건(사태)’과 닮아가고 있다. 톈안먼 사건은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쟁취하기 위해 중국 대학생과 시민들이 벌인 반정부 민주화 시위다. 반면 이번 홍콩 시위는 ‘홍콩의 중국화’를 막고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려는 반중국 민주화 시위로 볼 수 있다. 홍콩의 시민들은 지난 30년간 6월 4일마다 톈안먼 사건 기념집회를 열며 ‘중국의 홍콩화’를 기원했다. 일국양제(一國兩制) 약속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중국’만 강조하는 중국에 의해 민주주의를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다. 두 사건은 또 중국 정부가 초기부터 민주화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며 외부 세력의 개입에 의해 체제 전복을 노리는 ‘색깔 혁명’으로 규정한 점에서 비슷하다. 1989년 당시에도 중국 공산당은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를 미국 등 서방 세력이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를 흔들려는 ‘평화적 전복’으로 봤다. 현재 홍콩 시위 사태에 대해 중국 공산당과 관영 매체가 미국과 영국 등의 ‘검은손’이 개입한 색깔 혁명으로 보는 것과 같은 구조다. 마지막으로, 이 같은 중국 공산당과 시위대 간 인식의 간극으로 인해 정치적 해법 마련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톈안먼 사태 당시에도 자오쯔양(趙紫陽) 당시 총서기가 ‘동란(動亂)’ 규정 철회 등을 놓고 중재에 나섰지만 강경파 논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유혈 진압을 낳았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 공산당은 당시의 진압 결정을 옹호하며 재평가 요구에 귀를 닫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홍콩 사태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송환법 완전 철폐와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경찰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적 조사 등에 대한 줄기찬 요구에도 홍콩·중국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 등에 의한 중국의 무력 개입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홍콩 정부 역시 시위대의 요구에 진정한 대화를 통한 해결책 마련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홍콩 정부 뒤에 이번 사태에 강경한 입장인 중국 공산당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송환법 반대 진영은 우산 혁명 실패를 교훈 삼아 끝까지 나갈 태세다. 중국 공산당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협한다면 국제사회 비난과 홍콩 경제 붕괴 등 최악에도 불구하고 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무력 개입에 나설 수 있음을 계속 경고하고 있다. 홍콩의 한 친중파 입법회 의원은 최근 “중국은 홍콩 상황이 악화한다면 무력 개입에 나설 수 있다”며 “시위대는 중국 공산당이 얼마나 무자비한지에 대해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홍콩 사태가 제2의 톈안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홍콩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때다.
[ 홍콩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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