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홍콩 사틴 지역에 있는 홍콩중문대 학생회관 앞마당 한쪽에 ‘광복홍콩 시대혁명’ 구호가 적힌 깃발을 든 동상이 서 있다.
지난 1일 홍콩 사틴 지역에 있는 홍콩중문대 학생회관 앞마당 한쪽에 ‘광복홍콩 시대혁명’ 구호가 적힌 깃발을 든 동상이 서 있다.


■ 슬로건으로 읽는 ‘홍콩 시위’

‘反送中’으로 시작된 홍콩시위, 행정장관 직선제 등 5대 요구사항으로 확대… 中은‘체제전복 색깔혁명’규정

휴대전화로 사진 찍으니 순식간에 시위대가 에워싸… 중국어로 된 기자증 보여주니 더 험악해져


홍콩 시위가 14주째 진행 중인 4일 캐리 람 행정장관이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공식 철회를 발표한 뒤에도 시민들의 저항운동은 계속되는 기류다. “속임수” “가짜 양보” “임시처방”이라는 반응이다. 시위대의 5대 요구사항은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인데 겨우 하나만 수용했기 때문이다. 왜 시위가 계속되는지에 대한 답은 이미 현장에 있었다. ‘광복(光復) 홍콩’을 향한 행진의 시위 현장 곳곳에서 분노가 확인됐다.

첫 홍콩행은 봉변으로 시작됐다. 8월 31일 오후 1시쯤 공항에서 홍콩섬 중심부 완차이(灣仔) 지하철역 바로 옆에 있는 ‘서던 플레이그라운드’ 경기장으로 곧바로 향했다. 종교단체 행사를 빌미로 송환법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송환법 반대를 주도하는 재야단체 연합 민간인권전선 측이 이날 예고한 대규모 집회는 경찰의 불허 결정으로 취소됐었다.

시위대가 질서정연하게 앉아 구호를 외치는 스탠드 쪽으로 갔다.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두리번거리면서 시위대를 향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광둥(廣東)어로 된 ‘헝캉런/카야오(香港人 加油·홍콩인 힘내라)’ 구호가 도저히 안 들려 녹음을 했다. 그때 갑자기 대학생으로 보이는 검은 마스크 복장의 청년 몇 명과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다가와 에워쌌다. 순간 당황했다. 청년 중 한 명이 험한 표정으로 왜 시위대 얼굴을 찍느냐고 따졌다. 한국 기자인데 취재하러 왔다고 했다.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해 중국 외교부에서 발행한 기자증부터 꺼냈다. 중국어로 된 기자증을 보더니 오히려 분위기가 더 험악해졌다. “왜 한국 기자가 중국 외교부가 발행한 기자증을 갖고 있냐”는 격앙된 질문이 쏟아졌다. “중국 (입장)을 대표해 취재하는 거냐”는 목소리도 들렸다. 아차 싶어 다시 명함과 취재수첩을 꺼내 보여주며 “베이징(北京)에만 상주할 뿐 한국 언론사를 대표해 기사를 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러 차례 해명한 뒤에야 상황이 종료됐다. 홍콩에 첫발을 들이자마자 강렬한 반(反)중국 정서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집회를 마치고 센트럴 차터가든 공원으로 향하는 시위대를 따라갔다. 집회는 불허됐지만 홍콩 시민들은 끊임없이 몰려나와 거리 행진을 벌였다. 누군가 ‘헝캉런’을 선창하면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카야오’를 외쳤다. ‘파이트 포 프리덤/스테이 위드 어스(Fight for freedom/Stay with us·자유를 위해 싸움을/우리와 함께 있어줘)’ 등의 구호도 들렸다.

홍콩섬 시내의 한 버스정류장 광고판에 급진적인 주장을 담은 낙서가 적혀 있다. 오른쪽은 홍콩 정부청사 인근 콘크리트 벽에 관료들을 비난하는 내용의 벽보.
홍콩섬 시내의 한 버스정류장 광고판에 급진적인 주장을 담은 낙서가 적혀 있다. 오른쪽은 홍콩 정부청사 인근 콘크리트 벽에 관료들을 비난하는 내용의 벽보.

시위 현장의 구호와 포스터, 플래카드, 손글씨 쪽지, 페인트로 쓴 그라피티 등은 3개월째 계속된 홍콩 시위 사태의 모든 것을 웅변해주고 있었다. 반정부 민주화 시위대의 1차 분노의 대상은 홍콩 경찰이었다. 사실상 시위대 지휘부 역할을 하고 있는 SNS에서 홍콩 경찰은 중국 및 홍콩 정부의 ‘쩌우거우(走狗)’라는 의미에서 개로 불린다. 경찰서는 ‘거우우(狗屋·개집)’로 통한다. 거리 곳곳 벽면에 검은색 페인트로 적힌 낙서에는 경찰을 비판하는 내용이 제일 많다. 애드머럴티역 부근에서는 ‘내 눈을 돌려 달라(還眼), 눈에는 눈, 나쁜 경찰(黑警) XX(성기를 지칭)’가 쓰인 낙서도 보였다. 8월 11일 한 시위 참가 여성이 경찰이 쏜 빈백건(알갱이가 든 주머니탄)에 맞아 오른쪽 눈이 실명 위기에 처하자 경찰에 대한 감정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송환법 시위를 야기하고 중국 중앙정부의 눈치만 보는 람 장관과 정부 관료들을 조롱하는 ‘거우관(狗官·중국 정부의 앞잡이라는 의미)’이라는 표현도 많이 쓰였다.

홍콩 정부청사 건너편 건물 담벼락에는 거우관에게 ‘중국 공산당 통치가 그렇게 좋으면 대륙으로 돌아가라’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이날 차터가든에서 조금 못 미친 육교에는 ‘나는 민주를 원한다(我要民主)’고 적힌 플래카드가 펼쳐졌다. ‘나는 진정한 보통선거를 원한다(我要眞普選)’는 검은색 글씨를 노란색 바탕에 써넣은 플래카드를 전동 휠체어에 붙이고 다니던 한 여성 장애인은 외신 기자들의 사진 세례를 받았다. ‘우리의 미래를 보호하자/아이들의 미래를 함께 수호하자’는 손팻말이 정류장 난간에 걸려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주변의 벽에는 그라피티로 ‘자유가 없으면 차라리 편하게 죽겠다(不自由 毋寧死)’는 말이 쓰여 있었다.

홍콩 정국에서 시위대의 최종 타격 방향은 중국 중앙정부다. 현재 홍콩의 권력은 그곳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홍콩 시민의 모든 발언과 행위는 ‘우리는 홍콩인이니 중국 정부는 간섭하지 말라’는 요구다. 시위대의 이런 극단적인 감정이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불태우거나 바다에 빠뜨리고, 중국 국가 휘장을 훼손하는 행위로 나타났다.

홍콩 시위 기간에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는 초기 홍콩인의 중국 인도를 반대한다는 뜻의 ‘반송중(反送中)’ 구호에서 ‘광복홍콩/시대혁명(光復香港/時代革命)’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최근 1개월여 사이 가장 친숙한, 특히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구호가 됐다.

지난 1일 찾아간 홍콩 사틴(沙田) 지역의 홍콩중문대 학생회관 앞에는 높이 3m 정도의 동상이 서 있었다. 홍콩 시위대의 상징인 헬멧과 방독면을 쓴 남학생 동상은 오른손에 우산을, 왼손에는 검은색 깃발에 흰색 글씨로 ‘光復香港 時代革命 Free Hong Kong Revolution Now’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있었다. 동상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30대 초반의 한 남성은 “경찰의 폭력에 피를 흘리는 홍콩 학생들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시내 중심 버스정류장 광고판에도 보였다. 한 남성에게 업힌 여성이 ‘여보, 광복홍콩 시대혁명이야’라고 하자 남성이 ‘당신, 5대 요구사항 관철도 중요해’라고 말하는 식으로 적혀 있었다.

이 구호는 의미상으로는 급진적인 주장이다. 홍콩에 적용되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와 고도의 자치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면서 홍콩 독립을 주장하고, 민주화 시위가 아닌 ‘혁명’을 원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람 장관은 “이는 국가 주권에 대한 도전이자 혁명 시도”라고 비난했다.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들도 일국양제 원칙을 흔들고 홍콩 체제를 전복하려는 이른바 ‘색깔 혁명(Color Revolution)’으로 규정했다.

홍콩 야당은 일국양제를 인정하는 가운데 홍콩의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는 민주파가 주류다. 2014년 ‘우산 혁명’의 주역 조슈아 웡(黃之鋒·23)이 이끄는 데모시스토당 등이 대표적이다. 홍콩 독립을 강령으로 내걸었다가 지난해 강제 해산된 홍콩민족당과 에드워드 렁(梁天琦·28)이 이끄는 본토민주전선 등도 있다. 2016년 초 홍콩 입법회(국회) 선거에 출마했던 렁이 선거 구호로 만든 게 바로 광복홍콩이다.

렁은 현재 홍콩 젊은이들의 중국과 홍콩 정부를 향한 분노를 상징하고 있다. 그의 생각은 젊은이들에게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 홍콩을 다시 찾자는 주장은 중국의 침해로 훼손된 홍콩인의 ‘정체성’을 되찾자는 의미다. 민주파의 람척팅 의원은 “홍콩의 전통과 문화, 법치 등의 시스템은 중국 본토와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홍콩대 학생회를 찾아가 ‘브레인’이라는 이름을 쓰는 한 간부를 만났다. 그는 광복홍콩에 대해 “우산 혁명 당시만 해도 홍콩의 민주와 자유가 필요하지만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지난 5년간 홍콩의 중국화가 빨라지면서 이제는 민주와 자유가 정말 중요할 뿐만 아니라 이를 되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발전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맥락에서 100만∼200만 명의 홍콩 시민이 거리에 나와 송환법 반대를 외쳤다는 설명이다. ‘중국화를 원하지 않는다’가 광복홍콩에 대한 홍콩 내 컨센서스(共識)라고도 강조했다.

김충남 기자 utopian21@munhwa.com



■ 용어 해설

光復香港·時代革命 : 일국양제와 고도의 자치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해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고 민주화 시위가 아닌 ‘혁명’을 하자는 매우 급진적인 주장

香港人 加油 : ‘홍콩인 힘내라’는 뜻으로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외치는 구호. 누군가 ‘헝캉런’을 선창하면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카야오’를 외친다.

走狗·狗官 : 거리 곳곳에 적힌 ‘쩌우거우’는 홍콩 경찰을 개에 빗댄 말이고, ‘거우관’은 중국 정부의 앞잡이라는 뜻으로 중국의 눈치만 보는 홍콩 관료들을 조롱하는 말이다.
김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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