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열 ‘화려한 날은 가고’

영화관에 왜 가는가. 그 배우가 나오니까, 그 감독의 영화라서, 내가 좋아하는 장르니까, 누적 관객 수가 엄청나서. ‘유열의 음악앨범’은 좀 달랐다. 라디오 프로그램이 영화 제목인 것도 이채로웠지만 수많은 진행자 중에서 하필이면 유열(본명 유종열·사진)인 게 신기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아니고 왜 ‘유열의 음악앨범’일까. 감독은 영리하다. 멜로가 아름다우려면 현재 진행형보다 과거 완료형이 낫다는 거다.

‘히치콕의 새’는 그 많은 새 틈에 감독인 히치콕이 카메오로 언제 나오는지 찾는 재미가 있다. 1963년 영화니까 이제 스포일러의 공소시효가 지난 거로 보고 밝힌다. 그는 새가 아니라 개를 데리고 가는 신사로 잠깐 등장한다. ‘유열의 음악앨범’이란 제목을 보고 노래가 많이 나올 거라는 건 짐작했지만 과연 진행자인 유열은 화면에 얼굴이 등장할까. 나는 극장에서 확인했으니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함부로 밝힐 순 없다. 관객의 소소한 재미 하나라도 가로채선 안 되니까.

유열은 1986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누구나 상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긴 노래다. ‘투명한 그대의 미소는/ 나의 욕심을 비워버려요/ 사랑하는 그대/ 더 이상의 말도/ 더 이상의 눈길도/ 원하지 않아/ 내겐 필요치 않아’. 제목조차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다. 과연 사랑의 유통기간은 언제까지일까. 이듬해 히트한 그의 노래 제목은 ‘이별이래’다. 핵심적인 가사는 두 줄이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이것이 이별이래’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이것이 이별이래’. 그리고 마침내 1988년 그의 최대 히트곡이 탄생한다. 가사가 이렇게 끝난다. ‘눈부신 기억들은/ 모두 반짝이는 불빛이 되어/ 나의 화려한 날은 가고’. 제목은 ‘화려한 날은 가고’다. 진정 그의 화려한 날은 가버린 걸까. 아니다. 1994년에 라디오 진행자로 그는 화려하게 부활한다. 영화의 배경과 비슷한 시기인 2007년까지 그는 음악앨범의 선장이었다.

‘어렸을 때(When I was young)/ 라디오를 들었죠(I’d listen to the radio)/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길 기다리면서(waiting for my favorite songs)’(카펜터스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 중). 나도 한때는 ‘라디오 키드’였다. 음악프로는 마음을 전달하는 통로이자 메신저였다. 스무 살 무렵에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프로에 엽서로 음악을 신청했는데 운 좋게도 DJ와 생방송으로 전화 통화하는 기회를 잡았다. 그때의 신청곡을 평생 잊을 수 없다. 형제 듀엣 에벌리 브러더스의 ‘난 오직 꿈꿀 뿐’(All I Have To Do Is Dream)이었다. 젊었을 땐 노래처럼 몽상가란 소리도 가끔 들은 것 같다.

누군가에게 과거는 현재의 반대가 아니라 자산이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과거가 현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를 계속해서 질문하는 영화다. 배경음악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나는 보이즈 투 맨의 노래가 떠올랐다. 그 젊은이들은 살아가면서 매우 어려운 것이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 어려움이란 바로 과거와 결별하는 일이다(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 그런데 린다 론스태트의 노래 제목(It’s So Easy)은 그 정반대다. 그가 아주 쉬운 일이라고 속단한 건 우리도 경험했던 바로 그것이다. 사랑에 빠지기란 너무 쉽다(It’s so easy to fall in love). 하지만 그 사랑에서 빠져나오는 일에도 우린 익숙하다.

보이즈 투 멘의 노래 중 ‘막다른 길’(End Of The Road)도 명곡이다. 제목만 보면 카펜터스의 ‘세상의 끝’(Top Of The World)과 유사한 교훈을 준다.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끝까지 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끝을 본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끝내주던 그 사람이 어느 순간에 끝나버린 걸 우리는 많이 보았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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