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흔 살 생일. 회사에서 받은 선물들을 두 손에 들고 근처에 사시는 엄마한테 달려갔다. 기쁜 마음으로 길을 재촉했지만 엄마에게 들은 두 글자에 몸은 얼어붙는 듯했다. 폐암.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슬픔으로 밤새 오열하며 뜬눈으로 지새웠다. 워낙 증식 속도가 빠른 암이라 고식적인 치료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슬픔에 잠겨 있을 겨를이 없었다. 엄마와 항암 치료를 바로 시작했다.
엄마는 자존감이 강한 분이셨다. 딸인 나한테조차도 틀니 낀 모습은 절대 보이지 않으셨다. 하지만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틀니를 닦아 두는 건 나의 일과가 됐다. 엄마의 그런 모습이 익숙해지면서 틀니를 뺀 상태에서 말씀하실 때면 귀여운 발음이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지금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엄마의 모습이기도 하다.
돌아가시기 두 달 전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엄마는 유머와 호탕한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엄마의 소원대로 웃으며 안녕하듯 2018년 11월 23일 편히 눈을 감으셨다.
맥박이 뚝뚝 떨어지면서 마지막 긴 숨을 토해 내고 영면에 들어가신 엄마의 표정은 정말 편안해 보였다. 의사는 정상 범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혈압을 보며 다른 사람 같았으면 하루를 버티기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자식들에게 한으로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모진 병마와 싸우면서도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을 사흘 동안 붙잡고 계셨던 것 같다. 자식들이 죽음이란 인생의 마지막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화장장 하얀 재 위에 틀니 하나 남기고 마지막 인사를 하신 엄마. 언젠가 나에게도 그날이 온다면 환하게 웃으며 마중 나와 있을 엄마를 꼭 안아드리고 싶다. 엄마 두고 간 틀니 내가 갖고 왔어∼.
막내딸 이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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