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연극 ‘에쿠우스’ 연습장에서 말 마스크를 한 배우들이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아래 사진은 주연 배우 안석환(오른쪽)과 서영주가 대사 연습을 하는 장면.
지난 4일 연극 ‘에쿠우스’ 연습장에서 말 마스크를 한 배우들이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아래 사진은 주연 배우 안석환(오른쪽)과 서영주가 대사 연습을 하는 장면.

가을무대 오르는 연극 ‘에쿠우스’ 연습현장

‘초연 배우’ 이한승 6번째 연출
안석환·서영주 깊이있는 연기
말 마스크 쓴 7인 혼신의 열연
움직임 하나하나 박진감 넘쳐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 연극 ‘에쿠우스’에 들어맞는 말이다. 영국 극작가 피터 셰퍼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이 연극은 1975년 국내 초연 이후 마니아 관객을 거느려 왔다. 44년 동안 꾸준히 무대에 올랐고, 그때마다 화제가 됐다. 올가을에도 이한승 실험극단 대표의 연출로 재공연한다. 그 연습 무대를 지난 4일 찾아봤다.

서울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진행된 이날 연습은 배우 안석환-서영주를 주역 커플로 한 것이었다. 일곱 마리 말의 눈을 찌른 사건을 벌인 후 정신과 치료를 받는 17세 소년 알런 스트랑 역을 서영주가, 소년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이성과 광기의 갈등을 겪는 정신과 의사 마틴 다이사트 역을 안석환이 맡았다.

이날 연습은 중간에 쉬지 않고 극 전체를 이어 가는 런스루(Run through)로 진행됐다. 두 사람의 첫 공연이 11일로 임박한 만큼 실제 무대에서처럼 호흡을 맞춰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대표의 디렉팅은 제한적이었으나, 말(馬) 연기의 박진감을 살리는 부분 등에서 섬세함이 드러났다. 초연 때 배우로 참여했던 그는 그동안 다섯 번이나 무대 연출을 한 바 있다.


중견 배우 안석환의 내공은 연습 무대에서도 빛났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집중하면서도 후배 서영주가 실내 열기에 힘들어 할까 봐 “웃옷을 벗고 하면 어떠냐”며 배려했다. 그가 길고 긴 대사를 독백으로 전할 때의 호흡과 감정 처리를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났다. 극 중 의사 마틴의 대사는 작품 주제, 즉 인간의 본능과 성(性), 순수·열정과 사회적 억압, 종교와 신, 정상과 비정상 등의 문제를 성찰하게 만드는 키워드를 던진다. 안석환의 친근하면서도 고뇌가 서려 있는 듯한 음색은 그 성찰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정상이란 어린이 눈 속의 밝은 웃음이며 또한 백만 어른들 속에 도사린 죽음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위대한 신처럼 말입니다….”

알런 역의 서영주는 시종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가 이런 대사를 할 때는 그 불안이 보는 이에게 전염되는 느낌이었다. “에쿠우스! 네쿠우스의 아들인 플레쿠우스의 아들인 에쿠우스! 참되고 성실한 신의 종인 그대! 걸어가라….”

서영주는 이날 연습에서 무대 바깥으로 나와 있을 때도 알런 캐릭터에 집중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가 쉬는 내내 숨소리가 거칠어서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대 안으로 들어서면 온몸으로 광기를 다시 폭발시켰다.

알런 아버지 역의 유정기, 어머니 역의 이양숙은 세계관이 다른 부부의 갈등을 미묘하게 드러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그 미묘함은 알런의 담당 판사 헤스터 살로만 역을 맡은 이은주의 연기에도 있었다. 이은주는 무대 밖에서도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가끔 웃음을 보이기도 했는데, 옆에 자리한 후배 김예림(질 메이슨 역) 등 동료 배우들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날 연습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말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열연이었다. 제목 ‘에쿠우스(Equus)’가 라틴어로 말을 뜻하는 데서 알 수 있듯 말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작자 피터 셰퍼가 일곱 마리 말의 형상과 동작 표현 방법 등을 희곡에 구체적으로 제시해놨을 정도다. 국내 말 산업 관련 잡지가 최근 이 연극을 소개한 것은, 이례적이지만 엉뚱한 것은 아니다.

말 역할 배우들(조민호, 조한결, 서정훈, 최호원, 김진호, 김명진, 한정희)은 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커튼콜에 가서야 얼굴을 드러내지만, 그 동작의 박진감으로 충분히 표정을 전했다. 말들의 움직임은 압도감과 함께 에로틱한 분위기까지 띠고 있어서 배우들의 연습량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이날 연습이 끝난 후 관객으로서 절로 박수를 쳤는데, 그 칠 할은 말 역할을 한 코러스 배우들 몫이었다.

‘에쿠우스’는 마틴 역에 안석환 이외에 장두이, 이석준이 함께 캐스팅됐다. 알런 역은 류덕환, 오승훈이 서영주와 함께 트리플 캐스트로 연기한다. 이석준-류덕환 커플이 지난 7일 개막 테이프를 끊었다. 서울 대학로에 있는 서경대 공연예술센터 스콘 1관에서 오는 11월 17일까지 공연.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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