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문화부장

다시 ‘복고’다. 가요부터 영화, 게임과 패션까지 문화 전반에서 복고 바람이 거세다. 이번에 다시 불려 나온 시간은 1990년대다. 최근 유튜브에서 서비스되기 시작한 1990년대 가요 프로그램은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애칭과 함께 순식간에 구독자가 15만 명을 넘었고, 오프라인에선 당시 사회자와 가수들이 나오는 ‘가요 톱 10’ 콘서트도 열린다. 스트리밍 시대에 중고 음반시장에선 HOT, 솔리드, 쿨의 카세트테이프를 찾는 수요가 놀라울 정도다. 삐삐, PC 통신에 핑클의 ‘영원한 사랑’ 같은 1990년대 가요가 흐르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과 1994년, 열두 살 소녀의 성장담을 그린 ‘벌새’가 차례로 개봉돼 1990년대를 소환했다. 20년 전 유행한 게임이 새롭게 출시되고 패션에선 트레이닝복, 후드티, 배꼽티 같은 1990년대 아이템들이 복귀했다.

언제부터인가 복고(Retro)가 아니라 옛것을 새롭게 즐긴다는 의미에서 뉴트로(New Retro)로 불리지만 ‘복고’는 꽤 익숙한 트렌드이자 마케팅 툴이다. 추억을 통한 위로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이고, 소비자 세대를 순식간에 확대하는 데에 복고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다만 복고 코드는 심리적으로는 사회적 스트레스 지수가 높을 때, 경제적으로는 불황기에 등장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복권 판매가 역대 최고를 기록할 정도로 ‘대박’ 외에 기댈 곳 없는 불황인 지금, 이곳에서 부는 복고 열풍은 ‘복고의 법칙’을 재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추억의 위로는 언제나 강렬하지만, 문화는 늘 새롭고 창의적일 때에 발전 가능하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 삶 역시 과거로의 퇴행이 아니라 앞으로 한걸음 내디딜 때 새 시대가 열린다. 많은 평론가가 지금의 1990년대 복고 열풍에 대해 그때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문화적으로 풍성한 황금기였기 때문에 그리워한다고 해석하곤 하지만, 한국사회는 1997년 외환위기로 개인도, 사회도 고통스러웠던 시기였다. 기억의 마법으로 지난 시간은 아름답지만, 고통이 거세된 추억은 현실에서 위로 이상의 힘이 되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주변에 넘쳐나는 ‘복고’의 소비 방식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영화 ‘벌새’이다. 가족에게 보호받지 못하고, 학교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친한 친구로부터도 상처를 받는 주인공 은희는 유일하게 버팀목이 돼 준 영지 선생님께 자신이 싫어질 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때 영지 선생님은 “자신이 싫어질 땐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도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이다 보면 세상은 신비롭고 아름다워진다고 이야기한다. 은희는 1994년 그 시간을 추억하기보다 추억하되 거리를 두고 자신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갈 힘을 얻는다. 은희는 그렇게 성장한다. 그런 은희의 성장에 겹쳐 ‘뉴트로’에 이어 최근 등장한 ‘퓨트로’라는 신조어가 떠오른다. ‘미래’(Future)와 ‘복고’(Retro)의 합성어로 분야마다 조금씩 다르게 쓰이지만, 전반적으로는 과거와 현재를 딛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2019년 우리 사회의 복고 열풍이 그저 옛 시절을 추억하는 당의정 마케팅으로 소비되지 말고 그 시절과 그 시절의 자신을 보고 다시 미래로 나가는 퓨트로가 되었으면 한다.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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