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를 예우하는 건 국가의 기본 책무다. 안보 일선에서 헌신한 분들을 최대한 지원하는 게 국가보훈처가 할 일이다. 그런데 보훈처가 보훈이 아닌 정치를 하는 게 아닌가 의심케 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2015년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수색작전 중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에 양다리를 잃은 하재헌 중사를 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가 최근 전상(戰傷)이 아닌 공상(公傷)으로 격하 판정했다는 사실이 16일 뒤늦게 알려졌다. 보훈처는 “관련법에 근거가 없다”고 둘러대고 있다. 그러나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에 전상군경이란 ‘군인이나 경찰 공무원으로서 전투 또는 이에 준하는 직무수행 중 상이를 입은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목함지뢰 사고 당시 국방부와 유엔군사령부는 합동 진상조사를 통해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몰래 넘어와 매설한 도발이라고 밝혔는데, 이게 ‘전상’이 아니라니 이해할 수 있겠는가. 특히, 군(軍)에서 북한과의 전투 상황이라고 판단해 전상 결정을 내린 것을, 국가유공자 예우에 앞장서야 할 보훈처가 굳이 공상으로 격하한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하 중사는 21차례 수술을 견디고 장애인 조정 국가대표 선수로 국민 앞에 다시 서면서,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을 보여준 젊은이의 표상이다. 보훈처의 이번 결정에 그는 “다리를 잃고 남은 건 ‘전상군경’이란 명예뿐이었는데,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던 국가가 저를 두 번 죽이고 있다”고 절규한다. 보훈심사 과정에서 “전(前) 정권에서 영웅이 된 사람을 우리가 굳이 전상자로 인정해줘야 하느냐”는 발언까지 나왔다고 하니 이번 결정은 문재인 정부 들어 노골화한 이념 편향 코드가 영향을 미친 게 분명하다. 북한의 명백한 도발마저 축소하고, 국가 영웅을 ‘교육·훈련 또는 그 밖의 공무로 부상당한 사람’으로 폄훼하는 건 국군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식이면 누가 국가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려 하겠는가. 문 정부는 이번 심사 처리 과정을 조사해 관련자를 문책하고, 국군과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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